규제의 벽 허무는 유통 변종 채널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영업을 쉰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규정이 생긴지 5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무용지물이다. 유통 대기업들이 허술한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변종이 ‘규제의 벽’을 농락하고 있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규제벽을 허무는 유통 변종 채널을 취재했다.  

▲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SSM)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포함된 이 시행령이 유통업계를 뒤집었다. 온갖 말이 나왔다. “시장 경제에 역행한다” “소비자 편익이 줄어든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매출이 동반 하락했다” “오히려 유통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혹시 법의 취지가 ‘유통산업 발전’에 빗나간 건 아닐까. 제정 목적을 보자.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

그럴듯하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유통업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유통 대기업들이 대형마트를 통해 매년 플러스 성장을 이루는 사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경기불황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고 있었다.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은 그 일환이다.

그런데 결과가 신통치 않다. 5년이 지났지만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여전하다. 반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상인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이유가 뭘까. 양창영 변호사(법무법인 정도)의 말을 들어보자. “법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유통 대기업들은 규제 문턱이 낮은 새로운 유통 채널을 뚫었다. 이들에게는 손쉽게 수익을 꾀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 굳이 대형마트를 고집할 까닭이 없는 이유다.”

 

쉽게 풀어보자. 이 법이 규정하는 규제 대상의 조건은 크게 두 개다. “매장 면적이 3000㎡(약 900평) 이상인 대규모점포”. 이마트ㆍ롯데마트ㆍ홈플러스 등이 속한 대형마트다. 이마트에브리데이ㆍ롯데슈퍼ㆍ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 기업형슈퍼마켓(SSM)도 규제 대상이다. 둘째 조건이 ‘3000㎡ 미만 이더라도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기업 등이 운영하는 점포로 음ㆍ식료품을 위주로 하는 종합판매 소매점’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얘기다. 대형마트보다 규모가 큰 복합쇼핑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규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규모점포의 범위를 ‘대형마트’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복합쇼핑몰을 ‘매장 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인 점포의 집단으로 쇼핑, 오락 및 업무기능 등이 한곳에 집적되고, 문화ㆍ관광시설 역할을 하며, 1개의 업체가 개발ㆍ관리 운영하는 점포의 집단’으로 규정하면서도 규제 대상에서는 뺐다. 법의 맹점은 유통 공룡들의 복합쇼핑몰 진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ㆍ경기 지역에만 16개의 복합쇼핑몰이 문을 열었다.

기울어진 유통 산업

일부 대형마트의 온라인몰은 의무휴업일에도 당일 배송이 가능하다. 유통 대기업들이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세우고 주문상품을 어디서나 당일 배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서다. 양 변호사는 “대형마트의 온라인 당일 배송은 법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난 요소”라면서도 “현재의 법 조항에선 온라인 배송의 정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아 위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변종 SSM도 문제다. 사실상 SSM인데도 다른 사업자로 등록한 유통 기업을 말한다. 대표적인 게 신세계의 ‘이마트24’다. 이마트가 직영 형태로 운영하는 대형 점포다. 이마트에서 볼 수 있는 자체 브랜드인 노브랜드와 피코크 등의 상품도 판다. 사실상 ‘골목에 있는 이마트’로 SSM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편의점업’으로 등록돼 규제 화살을 피했다. 농수산물 매출 비중이 55%를 넘어도 규제 대상에서 빠진다. 농협 하나로마트가 대표적이다. 하나로마트는 일반 대형마트와 상품 구성이 다르지 않다.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이뿐만이 아니다.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매장만 아니라면 법망을 가뿐하게 피하는 게 가능하다. 대표적인 게 이케아다. 이케아 광명점의 연면적은 13만1550㎡(약 4만평)로 복합쇼핑몰과 견줄 만큼 대형 매장을 갖추고 있다. 푸드코트는 물론 식품을 비롯한 다양한 생필품도 팔고 있다. 그런데도 업종을 전문유통사(가구전문점)로 등록해 영업규제에서 벗어났다.

상권에 미치는 영향력을 따지면 다이소도 만만치 않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조3055억원을 기록했지만 규제 대상에는 빠졌다. 이런 전문점들은 오프라인 유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화장품과 건강용품을 판매하는 CJ의 올리브영, 가전제품 전문점인 롯데하이마트 등이 대표적이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은 “유통업체가 자율적으로 업태를 정해 등록하는 등록제이기 때문에 유통 형태가 비슷해도 등록 업태는 제각각”라면서 “규제를 새롭게 만들더라도 이를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채널을 만들면 그만이다”고 꼬집었다.

소상공인 울리는 숱한 허점들

대형 유통업체들이 법망을 유유히 피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살아날리 없다. 이는 거꾸로 대형 유통업체들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며 영업규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양창영 변호사는 “소상공인들의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 논리만을 내세우는 건 현실을 간과한 주장”이라며 “유통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확실히 통하는 영역인 만큼 골목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촘촘한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 아래서도 지난해 주요 대형마트 3사의 영업이익은 9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자영업자 대출은 520조원에 달했다. 법이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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