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만나다 展

▲ ❶ 정현, 서있는 사람, 2015,침목, 가변설치 ❷ 백연수, 크레파스, 2015, 엄나무에 아크릴 채색, 30x30x70㎝ ❸이수홍, ,2006, Inside_Outside_Interside, 느티나무, 40x44x51㎝
나무는 인간과 가장 닮은 재료다. 돌이나 금속과 달리 살아있는 자연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조각 행위의 본질이 ‘깎는 데(Carving)’ 있다면, 나무는 조각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재료이기도 하다. 

정으로 치면 떨어져나가는 돌과 다르다. 나무는 휘고 갈라지는 본연의 저항성이 강하다. 그 자체의 생명력이 강해, 조각가를 압도하거나 조각가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조각(Sculpture)’의 어원이 라틴어 ‘나무 조각가(Scuiptores)’에서 비롯된 것처럼, 나무는 조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조각가는 나무와 만나고 부딪치고, 나무에 이끌리거나 제어하고, 나무를 기다리거나 몰아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작업한다. 애초에 나무로 무언가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조각가는 열린 마음으로 나무를 대한다. 그 자체의 생명력을 인정할 때 작품이 다양해진다는 게 조각가들의 말이다. 이런 관계 방식은 한국 조각사의 한 흐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특정 시대나 인물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나무를 대하는 조각가의 태도를 중심으로 한다. 굴복, 동화, 발견, 존중, 대결, 극복, 지배 등 ‘동사형 주제어’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대와 작가의 작품을 해석한다. ‘늘 나무를 앞에 끌어다 놓는 작가’ ‘나무로 새로운 생각을 구현한 작가’ ‘나무에 자신을 이입하는 작가’ ‘조형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나무를 통제하는 작가’ 등 한국 현대 조각가들의 각기 다른 성향과 태도가 어떻게 작품으로 구현됐는지 살펴본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정현은 나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침묵은 그 자체가 작품이며, 자갈에 찢기고 위에선 기차가 짓누르는 가운데,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수십년을 버텨온 침묵 자체가 이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재료가 가진 자기 이야기,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전시가 열리는 ‘블루메미술관’도 살아있는 나무를 그대로 품고 있다. 100년 된 나무를 베지 않고 감싸 안은 채로 지은 건물이다. 나무와 인간의 삶이 맞닿은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태초부터 존재해온 하나의 물질로서의 나무와 이를 마주하는 인간으로서의 조각가를 돌아본다. 한국 현대 목조각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1월 5일까지 열린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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