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가계부채 대책

문재인 정부의 첫 가계부채 대책이 나왔다.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다주택자의 돈줄을 조이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내년 1월부터 기존 주택담보대출 원금도 부채 원리금에 포함하는 ‘신新 총부채상환비율(DTI)’ 제도를 시행한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모든 대출금의 원리금 상환액과 장래 예상소득까지 고려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도입된다. 빚을 갚기 어려운 장기 연체자의 채무 재조정과 채권소각 방안도 포함됐다.

전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돈을 빌리고 갚도록 시스템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가 엿보인다. 옳은 방향이다. 마땅히 진즉 취해야 할 정책 방향인데 이제야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는 투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썼다. 대출 건전성을 관리하는 수단인 DTI와 담보인정비율(LTV)까지 완화했다. 그 결과, 성장률은 2%대로 경제가 침체 상태인데도 가계부채는 해마다 두자릿수로 불어나는 비정상이 빚어졌다. 14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가계부채는 GDP의 95.6%에 이른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OECD 평균(70%)을 뛰어넘어 선두권이다.

한국은행 등 국내 기관은 물론 국제기구에서도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근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미적댔다. 문 대통령이 “8월까지 만들라”고 지시한 게 6월이다. 그런데 추석 민심 악화를 우려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면서 두달 늦은 10월 24일에야 대책이 나왔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위험한 뇌관이다.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악화하고 있다. 가계부채 총액은 GDP를 넘보는 위험수위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 때 150%를 넘나들던 것이 2015년 169%, 2017년 179%로 치솟았다. 과도한 빚 부담에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간 이어져온 세계적인 저금리 유동성 파티가 끝나가고 있다. 미국이 연내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고, 한국은행도 금리인상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연 5%선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대출금 상환이 어려운 가계가 126만 가구에 이른다. 2년 새 16만 가구가 늘었다.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면 위험가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가계대출 부도 위험이 높은 계층이 자영업자다. 지난 6월말 160만명이 521조원의 빚을 졌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반년 새 40조원 넘게 불어났다. 부채규모가 1인당 3억원을 넘는다. 자영업자 다섯 중 한명은 연소득이 1000만원에 미달하고, 자영업 10곳 중 6곳은 3년을 못 버틸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금리가 오르면 부채를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수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10ㆍ24 가계부채 종합대책에서 자영업자 부채 관리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1조2000억원 규모의 ‘해내리 대출’ 상품을 내놨다지만 이 정도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자영업자 부채 관리 대책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보완하자. 무조건적 지원보다 사업성이 있는 자영업을 선별하고 자체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제가 성장하면 부채도 어느 정도 늘어나게 돼있다. 하지만 소득보다 더 급격히 불어나는 부채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거품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도 가계부채의 비정상적인 증가였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우리로선 금융 시스템이 위협받는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가계부채에 관한 한 어떤 정치적 고려도 하지 말고 원칙대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

가계도 상환 능력을 벗어난 빚을 지는 것을 무섭게 인식해야 한다. 실수요자가 대출 끼고 집을 사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전ㆍ월세가 뛰는 틈을 노려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사들이는 ‘부동산 쇼핑’은 이참에 그만둬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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