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전략의 소유자 … 트럼프의 기술

▲ ‘모든 게 거래’라고 생각하는 트럼프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면 안된다.[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1월 7~8일 한국방문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불안해한다. 북한과의 전쟁을 불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지까지 거론하는 그의 ‘말 폭탄’ 때문이다.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는 절친 사이가 된 일본 아베 총리와 달리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은 데면데면한 사이이니 정상회담을 통해 현안 해결은커녕 오히려 혹을 붙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의 자서전 「거래의 기술」을 읽어보면 그는 마냥 허풍치고 위협하고 억지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이 책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그의 집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그냥 장사꾼이 아니라 거래를 만들어내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탁월한 전략의 소유자다.

한국에선 기업인 출신 정치인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대권까지 도전했지만 도망치듯 정치권을 떠나며 지나치게 타산적이라는 부정적 뒷모습을 남겼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 특유의 리더십보다는 스스로 쌓아놓은 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유약한 이미지에 그쳤다. 이 전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지휘를 받는 COO(최고 운영책임자ㆍChief Operating Officer)라고 봐야 옳다. 그는 지휘자가 아니라 연주자에 불과했다.

트럼프는 전형적인 CEO 출신 지도자다.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할아버지는 식당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다 일찍 세상을 떴고, 11살에 혼자 된 아버지는 과일배달ㆍ구두닦이ㆍ공사장막일 등을 전전하던 목수출신 집장사였다. 미국 기업문화는 자유스러워 보이지만 때론 독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경영자의 카리스마가 강하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한국에 들렀을 때 한국 지사장이 묻는 말에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리자 화가 난 잭 웰치는 “내일 아침 홍콩으로 전화를 걸어보라”고 지시했다. 다름 아닌 사직통보였다. 트럼프는 자신이 내각이나 비서진보다 협상을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는 완전히 톱다운(top-down) 식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는 리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미국 지도자보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게 우리에게는 행운일 수 있다. 잘만 하면 북핵 문제 해결은 물론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라는 말 뒤에 숨어 북핵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방북 의사를 꾸준히 타진하고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이나 중국과의 빅딜을 주장하는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한국으로선 꺼림칙한 인물이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자신의 방북으로 북핵동결과 남북정상회담을 끌어낸 카터는 “북한 핵 용인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럴 듯 해보이지만 한국을 핵 인질에 빠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과 협상을 통해 북한 핵 포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자”는 키신저의 주장은 음험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미국이 한미동맹이 굳건하다고 약속하고 전략자산 배치를 늘려도, 유사시에 북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으로부터 미국의 LA나 뉴욕이 위협을 받아도 한국을 지켜 주리라는 믿음이 없으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자유월남과 캄보디아는 미국을 철석같이 믿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우리라고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트럼프가 비무장지대(DMZ)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 보다 양국간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더 중요하다. 트럼프와의 거래는 한국의 사활이 달린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 스타일이라면 트럼프는 미국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있는 비즈니스맨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트럼프를 섣부르게 가르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문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미간 통 큰 거래를 해야 한다.

어차피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니 생색내며 좀 던져주고 실속 있게 더 많이 챙기면 된다. 자기 주장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창의적인 역발상으로 뒤집기를 시도하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나 사업, 국가경영은 모두 거래’라고 생각하는 트럼프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며 거래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악수惡手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게 좋다. 나는 거래에서 삶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있어 하나의 예술이다(도널드 트럼프 저 「거래의 기술」 중에서).”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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