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기사건의 뻔한 공식

잊을 만하면 대형 금융사기사건이 터진다. 사기꾼들은 첨단 금융기법을 가장해 주가를 조작하거나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다. 그 과정에서 한푼 두푼 모은 서민들의 쌈짓돈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최근 게이트급으로 비화하고 있는 IDS홀딩스 금융사기사건도 마찬가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탐욕이 만들어낸 금융사기사건의 공식을 해부했다.

▲ 역대 금융사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비슷한 공식이 확인된다.[사진=아이클릭아트]

‘1조원대 금융사기’로만 알려진 IDS홀딩스의 여파가 눈덩이처럼 커질 전망이다. 사건의 핵심인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가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서다.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전직 경위, 국회의원 전 보좌관 등이 수사 타깃에 올랐다. 본격 수사는 지금부터다.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 IDS홀딩스와 관계를 맺었던 정치권 및 법조계 인사, 고위 공무원 등으로 수사가 뻗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가 대체 어떤 기술을 썼기에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수사 선상에 오른 걸까. 흥미롭게도 김 대표의 수법은 신통한 게 아니었다. 오래된 수법인 ‘폰지(이전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수익을 돌려주는 금융 다단계 방식)’를 활용했고, 이 낡은 방식으로 벌어들인 돈이 1조원이 넘는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한 수법으로 엄청난 사기행각을 벌였다면, 금융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고 봐도 무방해서다. 실제로 IDS홀딩스 사태를 뜯어보면, ‘늑장 수사’ ‘감독기관의 부실 감시’ ‘정ㆍ관계 인사 연루 의혹’ ‘추가 피해’ ‘솜방망이 처벌’ 등 대형 사건의 공식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더스쿠프가 역대 금융사기 공식의 분석했다. 탐욕이 빚은 한국경제의 고질병이다.

부실수사로 얼룩진 조희팔 게이트 = 조희팔 게이트는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로 불린다. 조희팔 일당이 2004~2008년 7만여명의 투자자를 끌어 모아 5조원이 넘는 돈을 챙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건강보조기구 대여업 등으로 연 35% 확정금리를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으로 투자자를 꼬득였다. 이 소문은 금세 전국으로 퍼졌고, 조희팔 일당은 전국으로 사업망을 확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폰지 사기였다. ‘돌려막기’를 통해 사기를 계속 치다가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다. 하지만 조희팔과 핵심 주범들은 유유히 중국으로 밀항했다. 초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 담당자가 조희팔 일당에 매수된 탓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당시 경찰 내부 인사가 압수수색 시점과 수사 정보를 조희팔 측에 알려줘 수사에 대비하고 도피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몸통을 놓친 수사는 ‘수천억원’으로 추정되는 조희팔 일당의 은닉재산을 찾아내는 데도 실패했다. 수사에 대한 불신은 “2012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조희팔이 살아있다”는 목격담으로도 이어졌다.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장님 된 금감원 = 금융감독원은 금융 산업의 파수꾼이다. 하지만 2011년 2월 부산 지역경제를 망가뜨린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는 예외였다. 은행의 대주주가 7조원대의 불법대출과 분식회계를 자행하는 사이 금감원은 감사 대상인 저축은행의 부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2010년에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등이 대규모 현장실사를 포함해 138일 동안 정밀검사를 했는데도 말이다.

“부실을 알고도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던 찰나에 이들의 끈끈한 유착관계가 드러났다. 검사를 잘 봐준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간부, 대출을 알선해주고 돈을 받은 직원, 불법을 눈감아준 대가로 고급 승용차를 요구한 직원, 심지어 이사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요구한 간부까지 유형도 다양했다. 결국 선량한 예금자들만 큰 피해를 입었고, 금감원은 힘 빠진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한보게이트 인맥 또 인맥 = 1997년 1월 23일. 당시 재계 서열 14위 한보그룹의 주력사인 한보철강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단순한 대기업의 몰락이 아니었다. 이 부도에도 금융사기의 공식과 그대로 들어 있다. 당시 금융권이 한보그룹에 쏟은 부실대출의 규모는 5조7000억여원. 곧 쓰러질 기업에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입될 수 있었던 건 대출 과정에서 정태수 한보그룹 당시 회장과 정계, 금융계 핵심간부가 서로 유착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여야 국회의원, 전직 은행장 등 10여명이 구속됐다. 설상가상으로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와 정태수 회장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났다. 한보의 부도는 1997년 외환위기의 신호탄이 됐다.

이용호 게이트와 솜방망이 처벌 = 대규모 금융사기는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민들의 한푼 두푼 모은 쌈짓돈을 유혹해서다. 그런데 사기 행각을 벌인 주범은 혹여 잡혀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2000년 초반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이용호 게이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게이트는 이용호 G&G 구조조정 회장(당시)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발굴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해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다른 사건, 같은 공식들

이 희대의 사기 사건에 검찰ㆍ국세청ㆍ금융감독원ㆍ국가정보원ㆍ정치권 등 핵심 권력기관 인사 상당수가 직간접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이용호 전 회장은 대법원→파기환송심→재심 끝에 징역 2년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일부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사건에 연루된 검찰 관계자들 역시 사표를 제출하는 선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 대형 금융사기의 이면에는 정치권력이 등장한다.[사진=뉴시스]
이런 뻔한 공식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금융산업은 정치권력이 손을 대기 쉬운 영역이라서다. 수많은 공직자들이 금융업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건 또다른 이유다. 손창완 연세대(법학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정부의 규제가 많은 산업에서 게이트형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며 “각종 대출이나 인허가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사될 수 있게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런 범죄가 잊을 만하면 또 터진다는 점이다. 남의 뒤통수를 때려 돈을 벌려는 사람들, 뒤를 봐주는 높으신 양반들은 여전히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관치금융 타파’를 반복해서 외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를 80위로 평가했다. 우간다(77위)보다 낮은 순위다. 우리는 무엇을 바꿔나가야 할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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