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수신 사기의 슬픈 자화상

고수익과 원금보장을 미끼로 피해자를 기망하는 유사수신 사기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법망과 제도가 유사수신 사기를 제때 막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수신 사기를 부추기는 요인은 또 있다. 고도화하는 사기 수법과 무턱대고 고수익을 좇는 투자자의 탐욕이다. 유사수신 사건은 사기꾼의 모략과 투자자의 탐욕이 빚은 괴물이라는 얘기다.

▲ 저성장·저금리 시기가 장기화하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한 유사수신 사기도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코알코인에 투자하면 100배 이상의 고수익을 낼 수 있다.” 지난 8월 가상화폐에 투자를 권유해 투자금을 가로챈 일당이 붙잡혔다. 이들이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사용한 건 가짜 가상화폐였다.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난 4~8월 가상화폐 사이트를 운영했다. 대규모 투자설명회도 열었다. 12개의 가상화폐 거래소까지 설치했다.

가상화폐가 대형마트ㆍ쇼핑몰ㆍ게임 사이트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것은 물론 화폐가 유통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였다. 투자자는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했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모집인에게 투자유치 수당으로 지급하는 등 전형적인 돌려막기로 투자자를 모았다. 그 결과, 4개월 만에 5704명, 191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 올 6월 부산에서 주유 상품권을 이용한 유사수신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상품권을 할인된 가격에 사들여 정가에 판매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원금 보장은 물론 월 7%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말로 투자자를 꼬득였다. 하지만 상품권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투자수익 없이 신규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의심을 피했다. 이런 방법으로 영세상인 88명을 상대로 308차례에 걸쳐 93억4500만원을 가로챘다.

높은 수익과 원금을 보장한다는 말로 피해자의 돈을 가로채는 유사수신 사기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181건에서 2013년 83건으로 감소했던 유사수신 신고 건수는 2014년 133건, 2015년 253건, 2016년 514건 등으로 늘어나고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8월까지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접수된 유사수신 신고 건수는 425건에 달했다. 유사수신 혐의로 형사 입건된 피의자수도 2012년 1701명에서 지난해 2284명으로 34% 이상 증가했다.

유사수신 사기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피해자를 꾀는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 지고 있다. 과거 유사수신 사건의 단골 메뉴는 제품 판매였다. 의료기기, 건강보조식품, 농수산물 등의 판매를 미끼로 피해자를 모았다. 2008년 피해자 7만여명, 피해액 5조원을 기록해 단군 이래 최대 유사수신 사기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도 안마기 등 의료기기 렌털 사업으로 피해자를 유혹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환거래, 가상화폐 투자, 비상장주식, 크라우딩펀드, 상품권,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제2의 ‘조희팔 사건’으로 불리는 IDS홀딩스 사건도 외환거래로 수익을 올리는 FX마진거래를 미끼로 사용했다. 투자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짜 프로그램을 만들어 거래가 이뤄지고 수익이 발생하는 것처럼 조작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투자자라면 깜빡 속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유사수신 사기 증가세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가상화폐 유사수신 사건의 경우 투자설명회는 물론 홈페이지 운용, 거래소 구축 등 고도화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 법인을 만들어 그럴듯한 투자 기업으로 포장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허, 앱과 홈페이지를 이용해 사업의 현황과 성장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통에 전문가라 불리는 전업투자자가 유혹에 넘어가 경우도 많다”며 “상품권(2000년대), 해외 자원개발(2009년), 가상화폐(2017년) 등 투자 트렌드를 활용해 범죄 대상을 찾는 꾼들도 늘어났다”고 꼬집었다.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원금을 보장하고 고수익을 지급한다는 꾐에 넘어가 섣불리 투자에 나서는 일이 많아서다. 저금리ㆍ저성장 시대에 불안해진 노후와 미래 준비로 고수익을 좇는 투자자들이 ‘사기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거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을 말을 들어보자. “과거 경기가 어려웠던 시기마다 유사수신 사기가 성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2009년에 유사수신 사기가 크게 증가한 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시기엔 투자자를 겨냥한 금융사기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감독 당국의 예방과 함께 금융소비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심리적인 요인이 피해 규모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사수신 사기에 당한 걸 알고도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2차 피해가 발생한다는 거다. 돌려막기 사기에서 피해자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이는 일이 왕왕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전문가들은 터무니없는 고수익과 원금을 보장하는 투자의 경우 금융사기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사진=뉴시스]
양윤 이화여대(심리학) 교수는 “사기를 당했다는 걸 인지하면 이를 만회하려는 욕구가 커진다”면서 “그 때문에 피해를 봤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 다음 사기에 가담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유사수신 사건은 선량한 투자자를 농락하는 꾼들과 쉽게 돈을 벌겠다는 투자자의 탐욕이 함께 만들어낸 씁쓸한 현상이라는 얘기다.

고수익에 혹하는 피해자


양윤 교수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적 성향을 갖고 있다”면서 “유사수신에 속는 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빠져 긍정적인 정보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로또를 사는 사람이 당첨 확률 815만 분의 1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보지 않고 ‘나라면 당첨될 것’이라는 주관적인 판단에 기대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냉정하게 판단할 자신이 없다면 일확천금을 노린 투자는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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