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독서」책 읽지 않는 시대, 급증하는 난독증

▲ 정보의 홍수 시대에선 글을 차분하게 읽지 않아 난독증이 급증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그대로 살았다면 나 잘난 맛에 살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지지하고, 경제적으로는 가진 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아저씨가 됐을 것이다. 태극기 집회를 옹호하면서 촛불을 든 젊은이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 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독서였다.”

단행본ㆍ칼럼ㆍ논문ㆍ서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고 있는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 그가 특유의 유머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모두 책을 읽지 않는다면 바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경고한다. 바보가 똑똑한 사람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바보라 바보들 중에서 지배자가 나온다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다. 책과는 거리가 먼 이가 대통령이 돼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엔 난독증도 급증한다. 한 예를 보자. “하정우, 뺑소니에 치인 후 200m 추격 ‘맨손으로 제압’.” 한 언론의 2012년 11월 14일자 기사 제목이다. 자신을 치고 도망간 차를 하정우가 쫓아가 붙잡았다는 내용이다. 헌데, 기사 아래 달린 몇몇 댓글들이 황당하다. “하정우 좋아했는데 뺑소니치고 도망가다니 양심이 없네.” “하정우는 그 사람한테 도주하다 잡혔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역대 최고로 비참한 연예인이 아닐까.” “뺑소니를 치고 어떻게 도망갈 생각을 하지? 어쨌든 피해자분이 크게 안 다쳤으면 좋겠네요.”

 

엉뚱한 댓글 몇개에 피해자인 하정우는 졸지에 가해자로 둔갑했다. 황당한 게 어디 이뿐이랴. 뺑소니라는 단어의 뜻도 모른다. 뺑소니는 사람을 치고 도망가는 것인데, “어떻게 뺑소니를 치고 도망갈 생각을 하냐”는 댓글이 달린다.

난독증이 급증하는 이유는 글을 차분하게 읽지 않아서다. 읽을 게 많지 않을 땐 다시 읽는 게 가능했지만,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선 마음이 급해져 대충 훑어버리고 만다. 그러다보니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다. 바다의 왕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장보고가 아닌 박명수라고 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데도 어떤 이들은 인터넷에 정보가 널려 있는 마당에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인터넷엔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넘실대고, 근거도 부족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얻는 이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대체될 수 없다”며 모든 해결책은 책 속에 있다고 말한다.

책을 언제, 어떻게, 어떤 걸 읽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이 선정한 책의 좋은 점들만 늘어놓고, 각종 독서법을 소개하는 여느 독서 책과 다르다. 이 모든 방법은 저자만의 기발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어린 시절 책에 빠져 살다가, 어느날 책과 단절됐다가, 다시 서른 즈음 책에 빠져든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바보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세 가지 스토리

「악당의 명언」
손호성 지음 | 생각정리연구소 펴냄


저자는 나보다 잘 나고, 내 위에 있는 사람이 모두 악당이라고 말한다. 흥부에게 놀부, 살리에르에게 모차르트가 그렇다. 이 책은 명사의 명언집이나 현대판 영웅들의 성공담에선 볼 수 없는 거짓과 사기, 담합과 음모 등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1등도 해본 사람이 계속한다” “어렵고 힘든 일은 외주로 돌려라” 등 불편한 진실이지만 왠지 공감 가는 내용에 이내 빠져든다.

 

「데이터 사회 비판」
이광석 지음 | 책읽는수요일 펴냄


4차산업, 빅데이터, 인공지능…. 인간을 위한 기술이 차고 넘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진다. 포털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결과만 나타날 뿐 저쪽 너머 기술의 작동 과정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기술은 중립적일까. 빅데이터 및 테크놀로지 문화연구가인 저자는 기술 과잉의 현실을 방관해온 우리들의 무기력증을 비판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한다.

「아는동네, 아는연남」
아는동네 편집부 지음 | 어반플레이 펴냄


동네를 경험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동네잡지 ‘아는동네’가 창간호로 연남동을 소개한다. ‘연트럴파크’ ‘화교거리’ 등 연남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부터 ‘1975’ ‘휴먼타운’ 등 토박이가 아니고선 알아차리기 어려운 키워드까지, 연남동에 대한 19가지를 한데 엮었다. 단편적인 정보만 즐비한 요즘, 동네 구석구석을 발견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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