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유통기한 사각지대

먼저 한국소비자원의 자료를 보자. 지난해 식품(건강식품 제외) 분야의 피해구제 접수건은 총 366건이었는데, ‘품질ㆍAS’ 관련 피해가 121건(33.1%)으로 두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여기엔 유통기한 관리 소홀 문제가 포함돼 있다. 신선식품이든 가공식품이든 유통기한은 꼭 지켜야 할 규칙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편의점에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관리ㆍ점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법적 공백이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편의점에 납품된 유통기한 넘은 가공식품이 관리되지 않는 이유를 취재했다.

▲ 편의점은 지자체로부터 위생관리 점검을 받을 의무가 없다.[사진=뉴시스]

10월 11일 늦은 저녁.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김광훈(가명ㆍ31)씨는 집 앞에 있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들렀다.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피곤함을 날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껌 한통 값을 지불하고, 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어?” 그는 평소와 다른 점을 느꼈다. 평소보다 더 딱딱한 데다 단맛이 거의 없었다. 껌 패키지에 쓰여 있는 유통기한을 확인했더니, 이게 웬걸. 2017년 10월 6일까지라고 적혀 있지 않은가.

이상한 건 또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아무런 문제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김씨는 “유통기한이 지난 모든 제품은 계산대에서 걸러지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다”고 털어놨다.

‘삑~’. 많은 이들이 편의점의 바코드 스캐너에서 울리는 이 소리를 들어봤을 거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자동으로 걸러주는 소리다. 주요 유통채널 중 편의점에서만 적용하고 있는 타임바코드 시스템이다. 바코드에 제품의 유통기한 정보가 입력돼있어 유통기한이 지났다면 결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을 믿고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편의점 업체들도 타임바코드 시스템 덕에 식품의 위생관리 수준을 한층 높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의 이면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타임바코드가 가려낼 수 있는 대상은 모든 식품이 아니다. 바코드 스캐너가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건 편의점 상품 중 10%가량에 불과한 도시락ㆍ김밥ㆍ샌드위치 등 신선식품 뿐이다. 빵ㆍ과자ㆍ음료수ㆍ라면ㆍ껌 등 대다수의 식품은 유통기한 안전장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심지어 다른 유통채널에서 판매하는 동일 제품보다 조건이 더 열악하다.

신선제품에만 적용되는 타임바코드

이유는 법적 공백에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39조에 따르면 영업장 면적이 300㎡(약 91평)를 넘는 업소는 기타 식품판매업에 포함되고 그 이하 규모의 업소는 자유업으로 분류된다. 쉽게 말해, 백화점ㆍ마트ㆍ대형 슈퍼마켓ㆍ면세점 등은 기타 식품판매업에 속하고 편의점은 자유업에 속한다.

이 규칙은 상당히 중요하다. 지자체가 식품위생관리의 실태를 감시ㆍ점검하는 근거 규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타 식품판매업에 속하는 백화점ㆍ마트ㆍ대형 슈퍼마켓ㆍ면세점 등은 식품위생관리와 관련해 지자체의 감시ㆍ점검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신선식품,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거다. 반면, 자유업인 편의점은 감시ㆍ점검을 받을 필요가 없다.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이 사각지대에 놓인 이유다.

서울시 식품정책과 관계자는 “편의점과 같은 자유업은 민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별도로 점검을 나가지 않는다”면서 “규모가 작은 편의점들까지 일일이 감시ㆍ점검하면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반발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부회장(동덕여대 교수)은 “편의점 업체들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브랜드이미지를 위해 가맹본부가 알아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유통기한 관리 부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맹점주의 개인 문제나 가맹본부의 감독 소홀로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편의점 측은 “편의점은 규모가 크지 않아 위생관리가 까다롭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신선식품은 유통기한이 짧아 놓치기 쉽기 때문에 타임바코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지만 가공식품은 유통기한이 길어 점주들이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편의점 업체 BGF리테일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냉동식품은 70~80%이상 유통기한이 남아있어야 출고할 수 있다는 식의 기준이 나름 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이 들어갈 일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 아울러 모든 식품에 타임바코드를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편의점의 가파른 성장세를 감안하면 이런 주장들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작은 편의점은 관리가 수월하다’는 관념도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편의점은 국내 유통채널의 중심이다. 경기침체 장기화,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편의점의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수는 지난 2010년 1만6937개에서 지난해 7월 3만2946개로 급격히 늘었다.

매출 성장률(산업통상자원부ㆍ2016년 1월 전년 동기 대비)도 백화점과 SSM이 각각 9%, 2.6%에 머무르는 동안 편의점은 31.5%에 육박했다. 편의점의 위생관리에 뚫린 구멍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타임바코드가 부착된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결제되지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신선식품 유통기한만 관리하면 된다’는 주장도 반박거리가 많다. 노봉수 서울여대(식품공학) 교수는 “유통기한이 중요하지 않은 식품은 없다”면서 “도시락, 김밥 등 신선식품은 식중독 균이 생기기 때문에 안전관리가 더욱 중요할 수 있지만 가공식품도 맛이 변하거나 경우에 따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은 위생점검 의무 없어

실제로 가공식품을 소홀하게 관리한 탓에 발생한 피해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건강식품 제외) 분야의 피해구제 접수건은 총 366건이었다. 이 중 유통기한 관리 문제가 포함된 ‘품질ㆍAS’ 관련 피해가 121건(33.1%)으로 두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김익성 부회장은 “편의점도 변질 우려가 높은 가공식품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같은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면 관리 소홀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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