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마케팅의 상흔

‘자동차데이.’ 숫자 8이 자동차 타이어 두개를 겹쳐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이커머스 업체인 위메프가 매달 8일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다. 위메프는 8일이 되면 자동차 관련 상품을 특가로 판매한다. ‘십일절’은 11번가가 11월 1~11일 최저가 수준의 상품을 선보이는 행사다. 기찬 아이디어라는 평도 있지만 ‘콩으로 메주를 쒀도 최저가는 안 믿는다’는 비아냥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저가 마케팅의 상흔을 취재했다.

▲ 지난해 이마트에서 시작된 ‘최저가 전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때만큼 치열하진 않다.[사진=뉴시스]

자칭 ‘똑순이 주부’인 정재선(34)씨.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그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의 기저귀를 사기 위해서다. 검색창에 ‘기저귀’라고 입력하니 순식간에 주르륵 43만건의 상품이 뜬다. 일일이 다 볼 필요는 없다. 평소 구매하던 브랜드와 아이에게 맞는 단계를 체크하니 이내 2800여건으로 좁혀진다.

다시 ‘낮은 가격순’으로 검색. 오늘은 대형마트 온라인몰이 가장 싸다. 다른 온라인몰에선 무료배송에 3만1920원(하기스 매직팬티 4단계 대형 여아용 92개 기준)인데, 정씨가 기저귀를 구매한 온라인몰에선 배송비 3000원을 내고도 3만780원이다. 로그인 후 결제. 이제 내일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신선식품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사야 안심이 돼요. 하지만 기저귀나 생필품들은 딱히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브랜드마다 다른 거지, 유통업체들마다 품질이 다른 건 아니니까요. 아이 데리고 마트에 갔다가 들고 오기 무거운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급하게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온라인 최저가로 구매해요. 고맙게도 업체들이 알아서 최저가 전쟁을 해주니까 더 싸기도 하고요.”

지난해 2월, 난데없는 ‘기저귀’ 전쟁이 터졌다. 가격에 민감한 주부들이 대형마트에서 사던 기저귀를 온라인몰에서 구입하기 시작한 게 전쟁의 발단이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온라인에 빼앗긴 고객을 찾아오겠다며 ‘최저가 전쟁’을 선포했다. 그 첫번째 품목이 기저귀였던 거다. 이마트가 테이프를 끊었고, 뒤를 이어 롯데마트가 마진을 포기한 출혈경쟁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업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오프라인 업체들의 공세에 가격을 다시 조정하며 대응했다. 쿠팡을 필두로 위메프와 티몬이 추가할인 정책을 내놓으며 총성 없는 전쟁을 이어갔다.

최저가 전쟁은 기저귀에서 그치지 않았다. 행사 첫날에만 기저귀가 4700여개 팔려나가자 재미를 본 이마트가 아예 ‘가격의 끝’이라는 최저가 프로젝트를 정착시켰다. 이후 이마트는 분유, 생리대, 커피믹스, 참치캔, 세제 등으로 역마진 최저가 행사를 이어갔다. 결과도 좋았다. 이마트에 따르면 ‘가격의 끝’에 포함된 상품군은 지난해 매출이 평균 10.3% 올랐다. 이마트 전체 매출신장률이 5.7%였던 것과 비교하면 2배가량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이 전쟁, 아직도 유효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효하다.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이 지난해보다 더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다.

쿠팡을 비롯한 위메프, 티몬 등 이커머스 업체들은 현재 ‘투데이 특가’ ‘실시간 특가’ ‘역대 최저가’ 등 셀 수 없이 많은 할인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최저가’라고 홍보하는 제품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벤트명만 보면 최저가가 아닌 상품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최저가 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건 위메프다. 위메프는 아예 ‘특가’와 ‘국가대표’를 합쳐 ‘특가대표 위메프’라는 걸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시간ㆍ날짜ㆍ요일별로 매월 진행하는 최저가 기획전만 15개다. 하루에도 ‘모닝특가’ ‘투데이특가’ ‘타임특가’ ‘심야특가’ 등을 진행한다. 고객 반응이 좋았던 것만 따로 모은 ‘명예의전당’ 이벤트도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최저가 이벤트는 날짜를 이용한 ‘데이(Day) 마케팅’이다.

최저가 경쟁은 출혈만 남기고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매월 3일은 ‘삼시세끼데이’다. 하루 세끼를 위메프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매월 3일마다 식품을 할인한다. 5일은 5월 5일 어린이날에서 힌트를 얻어 ‘어린이데이’, 13일은 13이 영문 ‘B’와 같다고 해 ‘뷰티데이’다. 비슷한 이유로 21일은 ‘리퍼데이’로 정해 리퍼브 제품을 판다. 위메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특가기획전에 데이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매월 반복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데이마케팅만 15개”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저가, 특가 마케팅을 하면 할수록 온라인 업체들의 실적은 악화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1위인 이베이코리아(옥션ㆍG마켓)를 빼고는 모두 적자 운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64조9134억원으로, 전년 대비 20.5% 증가했다. 모바일쇼핑 거래액도 34조7031억원으로 41.9% 늘었다. 그러는 사이 쿠팡은 5653억원, 티몬과 위메프는 각각 1585억원ㆍ636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아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고객 확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출혈경쟁을 했다”면서 “가격경쟁력은 이커머스의 존재 이유여서 최저가 기조를 놓을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공격적인 최저가 마케팅으로 온라인 업체들의 적자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오프라인 업체들에도 최저가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 지난해 최저가 전쟁의 총포를 쏘아올린 이마트는 지난 2월 ‘가격의 끝’ 1주년을 기념해 또 한번 기저귀를 최저가에 판매하기도 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도 여전히 최저가 상품들을 내놓으며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전만큼 활발하진 않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출혈만 남기는 최저가 전쟁 대신 이커머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신선식품’으로 전략을 바꾸는 중이다. 이를 두고 이커머스쪽에선 “실시간으로 가격 대응을 할 수 있는 우리와 경쟁할 수 없으니 포기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업체들은 “이커머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일부상품에 대해선 최저가 정책을 계속 펴고 있지만 예전만큼 최저가에 큰 비중을 두진 않는다”면서 “대신 유통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추는 로컬푸드 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품질 필요

문제는 소비자가 그들 계산대로 가격만 보고 이동하느냐는 거다. 이준영 상명대(소비자주거학) 교수는 “업체들이 기계적으로 ‘최저가’ ‘가격파괴’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하며 “무조건 싼 것보다는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품질을 전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계적으로 가격파괴 전략을 쓰면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 업체 간 출혈경쟁만 된다. 고객들은 불필요한데서 돈을 아끼자는 거지 1원, 2원을 아끼려는 게 아니다. 핵심가치에 집중한 제품들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의 최저가 전쟁은 그걸 간과하고 있다.” 달라진 소비자를 읽지 못한 채 경쟁에만 몰입하면 결국 제살만 깎아먹을 거라는 일침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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