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투자자문 | 겸손의 경영학

사람들은 흔히 성공의 중요한 요건으로 ‘자신감’을 꼽는다. 자신감이 있어야 목표를 높게 잡고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다. 그게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난다. 자신감도 마찬가지다. 자신감의 늪에 빠지면 결정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알리바바를 능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IT기업 러에코(LeECO)의 몰락은 이를 잘 보여준다.

▲ 지나친 자신감은 되레 독이 될 수 있다.[사진=뉴시스]

# 미국을 대표하는 가정용품 제조업체 P&G의 A.G. 래플리 회장은 훌륭한 경영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소박한 자신감(Humble Confidence)’을 강조했다. 그는 14세 소년이 CEO(최고경영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겸손한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의 능력을 믿되 절대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자신감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무엇을 성취했는지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겸손함은 자기 약점이 무엇인지, 과거에 실패한 게 무엇인지, 약점과 실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인식하는 것에서 얻어진다.” 래플리 회장은 능력 이상의 자신감을 갖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신감이 과도하게 높으면 배우려하지 않고,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 1999년 미국 코넬대학의 데이비드 더닝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자신감이 높다는 걸 증명한 ‘더닝-크루거 효과’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무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남의 능력을 인식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높은 자신감 때문에 남보다 뛰어나다는 착각에 빠져 노력을 안 한다는 얘기다.

 

결국은 능력이 계속 정체되거나 퇴보해 무능한 상태로 남게 된다. 자신감과 겸손함은 상반된 의미로 생각하기 쉽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겸손하기 어렵고 과하게 겸손하면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겸손함은 어떤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음에도 말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지 능력이 없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감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를 ‘평균 이상 효과’라고 한다. 이는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노동자 중 90% 이상은 자신이 일반노동자보다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90% 이상은 자신의 운전 실력을 평균 이상이라 믿는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이 평균 이상의 우수한 인재’라고 답한 직장인이 68.7%에 달했다. 우수한 인재가 아니라고 답한 직장인은 2.5%에 불과했다.

무능할수록 자신감 높아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자신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위의 평판을 무시한 채 환상에 빠져 산다. 특히 대기업 오너는 이런 환상에 취하기 쉽다. 오너의 잘못된 경영을 지적하는 사람이 적은 데다 자신이 이룬 성공을 ‘내 덕분이다’면서 자화자찬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런 환상은 정치와 만나면 독재로, 기업에서는 독단 경영으로 나타난다. 두 경우 모두 불행한 결과를 낳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A.G. 래플리와 같은 성공한 사업가와 전문가들이 ‘겸손한 자신감’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공한 리더일수록 위기감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A.G 래플리 P&G 회장은 훌륭한 경영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소박한 자신감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일반적인 조직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자신감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위기의 골이 깊어질수록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겸손한 사람보다 자신감이 과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한 사람에게 건 기대가 실망으로 막을 내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어쩌면 너무 많아서 우리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도한 자신감에 무리하게 신규 사업을 진행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운이 따른다면 한두번은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번의 성공에 취해 무리한 결정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던 러티비(LeTV)의 러에코(LeECO)가 공격적인 경영 탓에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건 대표적 사례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성공한 러에코의 창업자 자웨팅은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 유명했다. 2014년 스마트TV 시장에 진출했고 2015년에는 스마트폰 제조에도 손을 댔다. 애플을 따라 잡겠다는 강한 자신감의 발로였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2위의 TV 제조업체 비지오를 20억 달러(약 2조2000억원)에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 기업을 사지로 내몰았다. 벌어들이는 돈보다 투자 등에 사용되는 돈이 늘어나면서 기업의 돈줄은 말라갔다. 차일피일 미루던 비지오 인수도 지난 4월 무산됐다. 결국 자웨팅은 지난 5월 사업부진의 책임을 지고 러에코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과한 자신감이 부른 화禍였다.

자신감 탓에 무너진 러에코

소비자는 겸손한 기업, 겸손한 CEO를 선호한다. 겸손한 기업은 소비자의 평판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쟁사나 소비자에게 위협으로 인식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감이 지나친 기업은 제품ㆍ기술력ㆍ성장성 등에 취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보다는 경영자가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우를 범한다. 어쩌면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갑의 횡포도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리더와 기업이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와 사회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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