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개인’으로 돌아가려는 역트렌드

▲ 서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시대. 익명의 개인으로 돌아가려는 역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서로가 거미줄처럼 얽혀가는 시대다. 헌데 다시 ‘익명의 개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역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모든 게 다 보이는 온라인에서 나를 감추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SNS 플랫폼 초기에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면대면 상황에서 오는 민망함과 피곤함을 줄여주는 간편하고 효과적인 도구였지만 이제는 관리해야 할 위험이자 또하나의 부담이 돼버린 탓이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제2의 삶의 현장이 된 시대다. 정보를 검색하거나 업무를 수행할 때는 물론이고 쇼핑과 교육, 엔터테인먼트도 온라인과 모바일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소셜 메신저와 네트워크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관리 플랫폼인 훗스위트(Hootsuite)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약 28억명의 소셜 미디어 사용자가 한개 이상의 SNS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가 약 73억명이니 38%의 세계인구가 웹상에서 서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반대 흐름도 포착된다. 사람들의 ‘온라인 끈’이 형성되는 시기에 ‘익명의 개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웹상의 아이덴티티를 관리하기 쉽지 않아서다. 온라인 아이덴티티는 SNS에 어떤 사진을 올리고 어떤 글을 게시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나 댓글의 숫자가 게시자의 평판이나 게시자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공격을 받거나 비난을 당하기도 한다. 오픈된 공간에서 공개적 평가를 받고 비판을 받는 셈이다.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지만 개인적인 공격을 당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익명성 안으로 숨으려고 하는 거다.

익명성이 그리워지는 또다른 이유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불리는 컴퓨터 안의 그림자 같은 스토커 탓이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갖가지 활동을 하는 동안 컴퓨터는 사용자의 위치나 과거의 클릭 동작, 검색 이력 등에 기반해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정보를 선별하고 불필요한 정보를 골라내 개인맞춤형 정보를 만든다. 개인의 정보탐색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는 이런 필터 버블은 유용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보를 필터링하는 알고리즘에 정치적 혹은 상업적 논리가 개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필터링을 거친 정보만 받아보는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보 편식’을 하게 된다. 사람과 달리 개개인의 필터버블을 만드는 알고리즘은 가치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인종 고객의 예약을 거절한 에어비앤비의 사례나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고객을 차별했다는 의혹을 받은 우버와 리프트의 사례도 ‘익명으로의 회귀’ 트렌드를 가속화하는 또다른 원인이다. 필터 버블을 만들기 위해 제공한 사용자 정보가 특정 개인의 차별과 왕따의 기준으로 오용될 여지가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익명으로의 회귀를 바라는 심리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장밋빛 세상에 장애물이다. 인공지능의 혜택은 개인에게 제공할 정보의 양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첨단과 기술의 이미지로 어필했던 ‘화학’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케미포비아’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모든 소비자의 공적이 돼버린 것을 기억하라.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사람들이 익명을 그리워할 상황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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