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작은 의리와 배신
[윤영걸의 有口有言] 작은 의리와 배신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63
  • 승인 2017.11.1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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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은 대악, 대선은 비정 닮아
▲ 진정한 의리는 자신을 버려 더 큰 뜻을 지키는 것이다. 슈뢰더 전 총리의 배신은 이를 잘 보여준다.[사진=뉴시스]

김승연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사훈은 ‘신용과 의리’다. 20대 어린 나이에 경영을 맡아 숱한 고비를 넘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시킨 배경에는 그의 선 굵은 의리경영이 뒷받침했다. 김 회장은 몇번 검찰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부하들부터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회사에는 그 흔한 배신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의리義理란 말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하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뉘앙스가 좀 다르다. 밸런타인 데이에 직장상사와 같이 마음에 없는 사람에게 의례적으로 건네는 선물을 ‘의리 초콜릿’이라고 부른다. 진짜 연인에게는 마음을 담았다는 뜻으로 ‘혼네 초콜릿’이라고 부른다. 

부하의 흉탄으로 아버지를 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신자 응징이 곧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리 없는 사람을 경멸했다. 국무회의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는 눈빛으로 배신의 정치 응징을 공언했고, 실제로 당시 집권당 원내대표이던 유승민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 찍어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위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서청원, 최경환 의원을 제거하려고 하자 이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발한다. 친박 지도자들은 박 전 대통령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살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고 나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오랜 인연으로 순장조라고까지 불렸던 문고리 3인방의 배신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검찰의 문턱을 넘자마자 입을 모아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책임을 모두 주군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떠넘겼다.

지금 보수가 국민에게 외면 받는 이유는 도대체 소신도 없고, 정체성도 불분명하고, 반성하지도 않는 탓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통령 선거 전에는 친박과 손잡았다가 이제 와서는 얼굴을 싹 바꾸었다.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친정으로 돌아온 김무성 전 대표는 그때 그때 시류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행보가 엇갈린다. 보수가 다시 정권이 잡기 어려운 이유는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배신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의리’라는 DNA는 아예 없는 듯하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이런 배신은 어떤가. 독일은 통일 후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는 최대 지지 세력인 임금생활자와 노동조합과의 의리를 저버림으로써 나라를 살렸다. 그는 세금을 올리고 사회보장을 삭감했다. 단체협약을 느슨하게 풀고, 해고의 유연성을 높이자 노동조합단체가 거리로 나섰다. “슈뢰더씨, 지구를 떠나시오”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연금 사기꾼’ ‘거짓말쟁이’ ‘국민 기만자’라는 비난이 꼬리 표처럼 따라붙었다. 결국 슈뢰더 총리는 권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지지 세력에 대한 배신은 개혁의 기관차가 되어 독일경제를 회생시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문재인 정권은 그를 지지한 세력에 대한 의리를 강조할 뿐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진정한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청와대가 입법부가 아닌데 직접 민주주의라며 입법청원을 받고 사법부가 아닌데 적폐청산을 앞세워 심판을 주도한다. 여론만 보고 달리는 정치는 폭주하는 열차처럼 위험하다. 야당이나 반대세력에 대한 관용의 틈이 별로 없으니 협치는 사라졌고, 편 가르기식 싸움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개혁은 쓴 약과 같이 고통을 수반한다. 지지층과 함께 달콤한 꿀만 나눠먹으려 하니 한국의 미래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일본항공(JAL)을 부활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이 처음 회사를 찾았을 때 직원들은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급여 인상 같은 선의보다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선택했다. 그는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의리는 자신을 버려 더 큰 뜻을 지키는 거다. 작은 의리 대신에 차라리 배신을 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 나라에 그런 배신자는 없는가.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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