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또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2014년 KB국민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가 1억400만건의 고객정보를 유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카드 3사는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행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해배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 앞에서 ‘악어의 눈물’을 흘렸던 그들은 또 탐욕을 좇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2014년 카드3사 고객정보 유출사건의 3년 후를 취재했다.  

▲ 카드 3사의 고객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한지 3년이 지났지만 보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2014년 1월 사상 최대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다. 당시 KB국민카드(5300만건), NH농협카드(2500만건), 롯데카드(2600만건) 등 3곳의 카드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는 1억400만건. 유출된 개인정보의 내용은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고객이름, 주민번호, 휴대전화번호, 주소는 기본. 카드번호, 주거상황, 카드신용한도금액, 카드신용등급, 카드결제일, 카드결제계좌, 카드 유효기간 등 19종의 개인정보도 함께 유출됐다.

원인은 부실한 내부단속에 있었다. 부정사용방지시스템(FDS) 개발을 위해 카드사에 파견 근무를 나갔던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직원이 USB를 이용해 개인정보를 무작위로 내려받았다. 사건이 터지자 카드3사는 발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경영진이 사퇴하는 것은 물론 카드3사 사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 고개를 숙였다. “개인정보 유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고객 여러분께 거듭 사과드립니다.”

정보유출 사건이 알려지자 고객의 원성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정보유출 사실이 알려진 한달 사이 300만건에 달하는 고객이 해지신청을 하는 등 카드사를 빠져나갔다. 정보유출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소송도 이어졌다. 카드3사는 그렇게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17년 11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던 카드3사는 책임을 다했을까.

우선 진행 중인 카드 3사 정보유출 소송건수를 살펴보자. 올 2분기 기준 KB국민카드의 정보유출 관련 소송건수는 119건으로 소송인원과 소송액은 각각 8만3000명, 103억9200만원에 이른다. NH농협카드는 126건, 소송인원 5만5354명, 소송액은 103억6000만원이다. 롯데카드는 3만1509명이 82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송액은 50억2900만원이다. 카드3사의 소송건수 등을 모두 합치면 다음과 같다. ‘전체 소송건수 327건, 소송인원 16만9863명.’ 정보유출 고객이 1억400명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송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카드3사의 꼼수가 숨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판결이 난 카드사 정보유출 손해배상 1심 재판에서 법원은 고객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카드사는 조용히 항소로 맞섰다. 용서를 구하며 고개를 숙이던 2014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멸시효 완성하려 재판 끌었나

카드3사가 재판을 질질 끌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2015년 1월 정보유출소송을 맡은 변호사 19명이 발표한 공동성명의 내용을 보자. “카드사가 피해자에게 피해사실과 구체적인 유출 경위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행위다.”

카드3사 측은 “소송인원이 많고 증빙해야 할 서류가 많아 확인 과정을 거친 것 뿐”이라고 반론을 폈지만 “재판을 지연해 손해배상 소멸시효인 3년을 넘기려 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접히지 않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카드사들이 대형 로펌을 앞세워 이런저런 이유로 재판을 연기한 건 사실”이라며 “시간을 끌어 소멸시효를 완성하고 사건이 여론에서 잊히게 하려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지난 1월 7일로 끝났다. 그게 자의였던 타의였던 카드3사의 지연전략이 통한 셈이다.

정보유출 피해자들의 보상이 늦어진 또다른 이유는 제도적 허점이다. 이 소송은 현재 ‘공동소송’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함께 소송을 하는 모양새지만 실질적으론 개별소송이다.

카드사 정보유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소송당 수백에서 수천명의 원고가 함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개별적으로 피해를 입증하고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시간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공동소송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집단소송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아서다. 집단소송제는 한사람이라도 승소하면 비슷한 사례도 모두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일부 증권 관련 소송에서만 인정하고 있다.

2013년 6월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해 기대를 모았던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다면 지금과 같은 소모성 재판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20대 국회에서도 집단소송제 도입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지난해 6월 ‘소비자집단소송법안’을 발의한 서영교 의원(더불어민주당)을 시작으로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5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들은 아직까지 위원회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사법부가 사실상 방관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카드3사에 지난해 7월 1심 1000만~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언급했듯 카드3사는 즉각적인 항소로 맞섰고, 그 항소심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재판 기일도 정하지 못해 항소심이 언제 열릴지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 소비자의 권리 확대를 위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법원 관계자는 “사건을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구체적인 재판 일정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색다른 문제는 아니다. 1심을 승소하고도 2심이 진행되지 않거나 1심조차 끝나지 않는 소송건은 수두룩하다. 조남희 대표는 “금융사건의 경우 재판이 3~4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 사건일수록 사법부의 빠른 판단과 결과 도출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금융소비자의 무관심도 문제로 꼽힌다. 2014년 사건이 터진 지 1년 만에 여론은 수그러들었다. 복잡한 재판 과정과 긴 소송기간에 비해 많지 않은 배상액도 크지 않아 소송을 포기하는 피해자가 속출했다. 카드사 고객정보유출 사건에서 법원이 인상한 배상액은 10만원에 불과하다. 소송비용과 인지대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도 탓에 소송 늘어져

강형구 국장은 “1억400만건의 고객정보를 유출하고도 카드 3사가 받는 제재는 영업정지 3개월과 1000만~1500만원의 벌금이 전부였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 실질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의 솜방망이식 제재를 개선해야 하는 만큼 소비자의 의식도 나아져야 한다”며 “소비자가 나서 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묻고 추궁해야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