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헬로비전 개인정보 관리 실태

일이 터지자 위탁업체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고객이 “본사의 잘못”이라고 명확하게 따지자 이번엔 돈다발을 제시했다. ‘책임전가→돈으로 해결→개선 약속→나몰라라’로 이어지는 대기업의 고질병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 사건은 CJ헬로비전에서 터졌다. CJ헬로비전은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뤘다는 사실을 고객이 눈치채자 ‘돈’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CJ헬로비전의 구멍 뚫린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취재했다.

▲ CJ헬로비전의 고객정보 관리 절차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사진=뉴시스]

계약서에 서명을 한 적이 없는데, 사인이 돼 있다. 회사 측은 “고객이 서명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씁쓸하게도 그 고객은 ‘문맹文盲’이다.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CJ헬로비전에서 일어난 묘한 사건이다.

때는 지난해 3월. 서울에서 근무하는 정진석(가명)씨는 어머니를 위해 본인 명의로 CJ헬로비전의 인터넷TV 서비스를 신청했다. 어머니가 지방에 계신 탓에 어쩔 수 없이 전화로 신청했다. 며칠 후 인터넷TV 셋톱박스 설치기사가 정씨 어머니 집을 방문했고, 설치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이후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정씨는 시시때때로 울리는 CJ헬로비전의 광고문자에 시달려야 했다. CJ헬로비전 인터넷TV 서비스를 전화로 신청했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을 한 적도, ‘광고문자를 받겠다’고 동의를 한 적도 없었지만 끊이지 않았다.

정씨의 항의를 받은 CJ헬로비전 측은 이상한 답만 계속해서 늘어놨다. “설치기사가 현장에서 개인정보 활용 내용을 충분히 고지하고 직접 사인을 받은 걸로 확인했습니다. 정씨 어머니가 대신 서명했을 겁니다.” 사실이라면 규정 위반이 아니다. CJ헬로비전은 내규상 위탁업체인 셋톱박스 설치기사를 통해 계약과 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동의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씨 어머니의 기억은 달랐다. “개인정보를 활용한다는 둥 그런 설명을 들은 적도 없고, 직접 사인한 적은 더더욱 없다.” 공교롭게도 정씨의 어머니는 문맹文盲이다. 아들의 이름도 적을 줄 모른다. 인터넷TV 설치기사가 직접 서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본인 동의를 받지 않은 대리서명은 엄연한 불법이다.

조정규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절차상 하자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대리요구’ 없는 임의서명은 형법상 사문서 위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곳이 CJ헬로비전이라는 점에서 관리ㆍ감독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정씨가 항의를 한 이후에 발생했다. 정씨가 계약 등의 절차를 문제 삼자 자신을 설치기사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CJ헬로비전이 위탁업체에 책임을 전가했다는 얘기다.

대리서명 했다면 사문서 위조

정씨가 “설치기사는 고객정보를 삭제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체 누구로부터 정보를 받고 전화를 걸었냐”고 따지자 CJ헬로비전 측은 “다시 알아보니 설치기사가 전화를 한 게 아니다”면서 변명했다. 설상가상으로 CJ헬로비전 측은 돈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정씨는 “내 정보가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흘러갔는지 본사 차원에서 확인해 달라면서 피해보상을 요구 했더니 현금을 제시했다”고 털어놨다.

CJ헬로비전 측은 “애당초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면서 “차후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CJ헬로비전의 대응 과정을 볼 때 과연 약속을 제대로 지킬지는 의문이다. ‘위탁업체로 책임전가→돈으로 해결→개선 약속→나몰라라’로 이어지는 구태舊態는 대기업의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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