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반도체 트집 잡으면…

국내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對美 수출길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자국 기업의 특허소송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허 침해가 인정되면 국산 반도체의 수입ㆍ판매가 중지될 수 있다. 경제적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불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ITC의 파급효과를 분석했다. 

▲ 국산 반도체에 수입금지조치가 내려지면 해당 반도체가 탑재된 스마트폰도 덩달아 수입이 금지될 공산이 크다.[사진=뉴시스]

이번엔 진짜 빨간불이다. 국내 최대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레이더망에 걸렸기 때문이다. ITC는 최근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에 각각 산업피해 판정, 구제조치 판정을 내렸다. 2018년 1~2월에는 두 제품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가 취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반도체를 겨냥한 ITC의 행보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선 사례에서 ITC가 힘을 과시한데다 한국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ITC가 한국산 반도체에 문제가 있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해당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에도 제재가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원목 이화여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TC는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까지 모두 막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한국경제에 닥칠 위기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난 10월 31일 ITC는 삼성전자의 불공정무역행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9월 28일 미국 반도체 패키징시스템 전문회사 테세라(Tessera)가 제기한 청원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테세라의 제소 이유는 “삼성전자가 테세라의 ‘웨이퍼레벨패키징(WLP)’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테세라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품을 비롯해 해당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 모두에 수입금지ㆍ판매중단 조치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에 탑재되고 있다.

ITC가 받은 청원은 또 있다. 한국의 또다른 반도체 회사 SK하이닉스가 불공정무역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청원이다. 청원을 낸 주인공은 미국 반도체 전문회사 넷리스트(Netlist)였다. 넷리스트 역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제품이 자신들(넷리스트)이 보유한 특허를 침해했다는 게 제소 이유였다. 넷리스트가 ITC에 SK하이닉스를 제소한 건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해 9월 1일 첫 번째 제소가 있었는데, 이 건에 관한 판결은 오는 11월 14일 나올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테세라, 넷리스트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결론이 나면 ITC는 한국산 반도체 제품의 수입ㆍ판매를 중단할 수 있다. 미 관세법 337조에 따라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의 수입금지를 명령’하는 게 ITC의 주요 구제조치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원목 교수는 “지적재산권 침해는 불공정행위가 아니라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침해한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확실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ITC가 한국산 반도체에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먼저 삼성전자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혐의를 받고 있는 WLP 기술을 보자. WLP는 반도체 생산에 근간이 되는 웨이퍼를 칩 단위로 잘라 결합하지 않고, 원형의 웨이퍼 상태 그대로 칩을 결합하는 기술이다. 칩들 사이의 거리가 밀도 있게 유지되기 때문에 수율이 오를뿐만 아니라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반도체를 더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수출 발목 잡힐 수도 …

한태희 성균관대(반도체학) 교수는 “WLP는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한 쉽지 않은 기술인데, 삼성전자가 이를 어설프게 따라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테세라가 소송을 제기한 건 시비거리가 조금이라도 보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WLP는 스마트폰, CPU, 서버 등 어디든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반도체가 적용된 제품은 광범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산 반도체의 수입이 금지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미 ITC로부터 수입금지조치를 받은 전례가 있다. 지난 2012년 8월 애플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ITC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디자인, 터치스크린 등 특허 6건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재판 결과, ITC는 애플의 손을 들어줬고, 해당 기술이 포함된 갤럭시S2, 갤럭시탭 등 삼성전자 제품에 수입ㆍ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일부에선 재판 절차가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면서 낙관론을 편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특허소송에서 결과가 나오려면 2년가량이 걸리는데, 2년이면 반도체ㆍ스마트폰 등 제품은 이미 한물간다.  때문에 판매금지조치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도 반박거리가 많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테세라가 특허소송을 제기한 기술은 갤럭시6 때부터 적용돼왔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술은 이후 제품에도 적용이 되기 때문에 삼성전자로선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ITC 소송이 일반 소송보다 절차가 짧다는 점도 문제다. 최원목 교수는 “ITC 소송은 4달에서 1년가량이면 판정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설사 재판이 길어지더라도 국내 반도체 업계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한태희 교수는 “재판이 길어진다면 국내 업체가 완전한 무혐의 판정을 받기 전까지 가처분소송 등으로 압박할 것”이라면서 “이럴 경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적당한 합의를 보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 길어져도 유리하지 않아

ITC의 힘에 가로막혀 반도체의 대미 수출길이 막힌다면 한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작지 않다.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에서 반도체가 벌어들인 수출액은 약 33억5200만 달러(약 3조7475억원)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벌써 25억 달러(1~9월) 규모의 반도체를 미국에 수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까지 수출할 수 없게 된다면 스마트폰만 따져봐도 손실은 연간 65억 달러(2016년 수출액)가 더해진다. 최원목 교수는 “세탁기ㆍ태양광에 이어 반도체마저 수입제한조치를 받으면 국내 주력 제조업종들의 손발이 묶이는 것”이라면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입을 타격은 크다”고 설명했다. ITC의 영향력을 허투루 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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