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소송은 ‘사후적’이다. ITC가 결론을 내려야 불복 등이 가능해서다. 문제는 사후 조치에만 의존하기엔 ITC 결정의 파괴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혹여 ITC의 예비결정이 끝났더라도 번복되기 전까진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ITC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TC의 덫에 걸리기 전에 사전 전략을 잘 짜라는 얘기다.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두배로 늘었다.” “한국과의 무역협정으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은 1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과 당선 직후 공식석상에서 했던 말들이다. 미국이 ‘공정무역(Fair Trade)’을 앞세워 강력한 보호무역을 펼칠 것이라는 징후는 이미 한참 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최근 미국 내 기업들이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에 나서고 있는 건 그 일환이다. ITC 무역규제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도 된다. ITC의 결정이 즉각적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ITC가 ‘자국 내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구제’를 위해서는 미국 내에 수입되는 모든 제품을 대상으로 관세문제, 불공정 무역행위,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기반해 즉각적인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어서다.

흥미로운 점은 ITC의 결정은 ‘판결’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제소를 하면 그 자체로 원고와 피고가 나뉘는 것도, ITC 관련 논의가 법률전문가들의 소관으로 비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ITC가 단순히 ‘물건을 훔치면 벌금 얼마’라는 기준에 따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ITC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있다. 불공정한 무역으로 인한 산업피해구제 조치가 취해지기 위해선 산업피해의 긍정판정(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이 있어야 한다. 또한 관세법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려면 수입제품 수량의 증감이 있었는지, 같은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쳤는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자에게 영향이 미쳤는지 등도 따져야 한다.

미국 통상법 201조에 따른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할 때도 ‘심각한 피해(serious injury)’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위협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해당 산업의 생산설비가 현저하게 가동되지 않았는지, 기업들이 합리적 이익을 내는 수준의 생산활동을 못했는지, 노동자들이 실업 또는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는지, 기업의 경영지표(매출ㆍ시장점유율ㆍ재고ㆍ생산량ㆍ이윤ㆍ임금ㆍ생산성ㆍ고용 등)은 줄었는지, 그외 제3시장의 무역장벽으로 인해 손해를 봤는지 등을 ITC는 기본적으로 들여다보도록 돼있다는 얘기다.

법적인 대응은 그런 요인들을 제대로 들여다봤는지, 그 근거는 틀림없는지를 따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ITC 소송은 사후 전략이 중심이다. 문제는 사후 조치를 취하기에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ITC의 결정이 강력하다는 점이다.

예비판정에 따라 관세가 곧바로 부과될 수 있고, ITC의 결정이 번복되기 전까지 예비판정은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비판정만 나오면 피고가 된 기업은 시작부터 한수 접고 가야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사전적 대응’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홍률 동서대(국제통상학) 교수는 “ITC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을 잘 분석해서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문제는 ITC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치적 요인, 제소국의 국력과 협상력, ITC 위원의 개인성향 등으로 다양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법적으로만 완벽하게 대응한다고 해서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 차장은 “올해 기준으로 ITC가 불공정무역 조사를 실시한 건수를 보면 중국이 21건으로 가장 많다”면서 “이건 ITC 조사가 중국을 핵심 타깃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중국과 겹치지 않는 수출 전략을 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 차장은 “기업들이 현지 소비자인 기업들과 공조해 ITC에 제소한 기업들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면서 “그러려면 바이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WTO 제소보다 급한 ‘새 규정’ 만들기

ITC의 결론에 불복해 세계무역기구(WT O) 제소하는 방법을 택할 때에도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동철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 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통상압력은 ‘공정무역’이라는 기조에서 시작됐다”면서 “하지만 ‘공정무역’의 개념 자체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실제로는 선진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 수단으로 이용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정무역의 개념 정립은 물론, 불공정 무역관행의 기준도 명확히 하는 다자간 통상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WTO에 제소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WTO에 제소했을 때 확실히 구제받을 수 있는 사전 정비작업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늘 그렇듯 사후적 대응은 한계가 있다. 비용도 비싸다. 반면 사전 대응은 비용도 적고 한계도 적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대응책을 모색하는 관행부터 없애는 게 급선무인 셈이다. 기업들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함도 당연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