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중국 찾는 자동차 업계

“경쟁력을 강화해 ‘제2의 사드 사태’가 없도록 하겠다.” 10월 31일 한ㆍ중 합의 이후 국내 자동차 업계가 모처럼 웃었다. 판매 실적이 반등했고, 시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또다시 한국차를 위기에 몰아넣을 변수가 당장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활의 콧노래’를 부르기에는 이르다. 대내외 리스크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언제까지 중국에 의존할 순 없는 시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돌아온 유커 시대 한국 자동차의 어두운 현주소를 취재했다.

▲ 중국 자동차 시장은 이제 상수가 아니다.[사진=뉴시스]

‘일희일비一喜一悲’. 2017년 중국시장을 바라보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시선이 이랬다. 올해 상반기는 울었다. 극심한 부진에 빠진 탓이었다. 업계 맏형 현대차의 대중對中 판매량(42만9000대)은 전년 대비 47%나 줄었다. 업계 사람들은 그 원인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에서 찾았다.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국 제품 불매 운동 기류가 확산됐다는 얘기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드 추가 배치가 이뤄지던 9월 중엔 베이징현대 공장 4곳이 협력사인 베이징루제의 부품 공급 중단으로 일주일 넘게 멈춰 섰다. 베이징현대 창저우 공장도 같은 이유로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 현지 완성차 생산공장 설립을 위해 산시기차그룹과 합자 의향서(LOI)까지 체결한 쌍용차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했다. 완성차 업체의 이런 위기는 고스란히 부품사에 이어졌다. 현대모비스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나 빠졌다.

업계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큰 위기에 빠졌다”고 한탄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마켓인 중국이 부진에 빠지자 산업 전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대수는 422만8536대로, 2015년(455만5957대)보다 7.2% 감소했다. 세계 완성차 생산국 순위는 인도에 밀려 6위에 그쳤으며, 올해는 멕시코의 추격으로 그 자리마저 위태로운 실정이다.

고개 드는 자성론

익명을 원한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의 한탄을 들어보자. “현대차는 중국 시장 의존도가 20%를 넘는다. 판매뿐만 아니라 공급에도 차질을 빚으면서 업계 전체가 연쇄적인 타격을 받았다. 모두 사드 배치 이슈가 본격화되면서 터진 불행이다. 덕분에 중국의 정치적 리스크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체감했다. 이런 불안한 시장에는 차라리 철수하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현실론을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시장의 부진은 사드 이슈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열풍에 제때 올라타지 못한 탓이 크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고품질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일본 자동차 브랜드에 한국차가 밀리기 시작한 건 사드와 무관하다.

그래서 고개를 든 게 ‘자성론’이다. 유럽, 동남아 등 신흥 시장을 공략해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자는 게 자성론의 골자다. 품질 향상을 바탕으로 중국 시장의 주도권을 다시 탈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주장에는 힘이 실렸다. 사드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자, 자성론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통계도 자성론을 밀었다.

3분기 실적에서 의외의 반등을 꾀했다. 올해 3분기 베이징현대의 순이익은 92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순이익 규모(1884억원)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올해 2분기 388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선방한 수준이다. 기아차의 중국 합작법인의 적자(-1662억원)도 2분기(-1818억원)에 비하면 소폭 줄었다. ‘이게 모두 사드 탓’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수치다.

실제로 현대차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시장 재정비를 서둘렀다. 브랜드 고급화와 함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신흥 시장을 공략하는 글로벌 판매 전략 재편에 나섰다.

그런데 반전 타이밍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10월 31일 양국이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양국 외교부는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조속히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회복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양국 관계 회복 조짐의 신호를 알린 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귀환이었다. 사라진 유커 탓에 골머리를 앓던 관광업계 사람들은 반색했다.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유커대박론’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업계는 다시 중국시장에 ‘올인’을 외쳤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협의 발표 다음 날인 11월 1일 급히 베이징北京으로 날아갔다. 현대차 브랜드 체험 공간인 ‘현대 모터스튜디오 베이징’ 개관 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현대차가 그만큼 중국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다. 정 부회장은 한ㆍ중 합의를 두고 “좋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번 기회에 양국 관계가 좋은 쪽으로 갔으면 한다”며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15일에는 신형 SUV ‘ix35’를 내놓았다. ‘중국 고객 맞춤형’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하고 웃을 때가 아니다. 사드 이슈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다. 우리 정부는 공짜로 중국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중국에 사드를 추가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거라는 등 ‘3불不’ 약속을 했다. 정치와 경제를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연계시킬 수 있는 게 중국이다.

대북 리스크를 둘러싼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을 두고 사사건건 트집 잡을 거리는 많다. 중국차의 선전도 우리나라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 현지 업체들이 선전이 거세다. 올해 상반기 중국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40%를 넘는다. 자국 시장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선진 자동차 시장 진출도 노크할 정도다.

 

중국 정부의 ‘전기차 굴기’가 본격화하는 것도 부담이다. 최근 중국은 “2025년까지 신에너지 자동차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까지 단계적으로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막대한 자금과 정부 지원이 동원될 예정인데, 한국 자동차 업계는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할 공산이 크다. 한국 전기차 경쟁력은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끊임없는 혁신이 답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무엇일까.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2012년 중국과 일본이 영토분쟁을 벌이면서 중국 시장 내 일본 자동차업체도 피해를 받았다. 우리나라처럼 실적이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 업계는 손쉽게 부진을 털어냈다. 중국 소비자 기호에 맞는 요소를 고려한 전략 제품을 개발한 게 주효했다. 거셌던 반일 감정을 품질로 이겨냈다는 거다.”

업계 맏형 현대차 총수의 발언에도 해답이 들어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해외 법인장을 모아 “어려운 외부 환경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경제 보복은 이제 상수다.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할 게 아니다. 끊임없는 혁신이 정답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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