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박론의 허상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돌아온다. 관련 업계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어떤 선물을 줄까 벌써부터 고민 중이다. ‘유커가 사라져서 죽게 생겼다’면서 볼멘소리를 늘어 놓은 게 엊그제 같은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러다 유커가 또 빠지면 웃음기 쏙 빠진 얼굴로 ‘나 죽겠소’를 외칠까 걱정된다. 한국경제가 일희일비하고 있다. 대안은 사라진 채 중국만 바라보면서 울고 웃는 ‘유커 희喜 유커 비悲 ’ 세상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유커 대박론의 허상을 취재했다.

▲ 유커는 대박인 동시에 리스크다.[사진=뉴시스]

“그동안 빈 객실을 중동과 동남아 지역 관광객들로 채웠다. 국내 마케팅도 병행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미 썰렁하게 기울고, 내수도 안 좋으니 한계가 있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시름 놓게 됐다. 내보냈던 직원들에게도 다시 연락해 복직을 권유하고 있다. 기대감이 큰 게 사실이다.”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비즈니스 호텔 대표 A씨의 설명이다. 그는 올해 2분기 실적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직원 5명을 한꺼번에 내보냈다. 당시 A씨는 “새 대통령이 나오면 좋은 일만 생길 줄 알았는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하나 때문에 엉망이 됐다”면서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유커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는 “직원들을 다시 부를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이런 일이 또 없으리란 법이 없는데, 그땐 또 어찌 해야 하나 그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커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들뜬 건 A씨만이 아니다. 관광, 호텔, 유통, 항공, 자영업 할 것 없이 돌아오는 유커를 맞을 준비로 한창이다. 백화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준비 중이어서 내용을 밝히긴 어렵지만, 유커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적절한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풀리자마자 업계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유커는 대박’이라는 속설 때문이다. 유커는 중요한 손님임에 틀림 없다. 그 수가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가량(2016년 기준 47.55%)을 차지하는 데다 이들을 통해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만 연간 16조원(한국관광공사 2015년 기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침체를 겪던 업계 분위기가 ‘유커 잡기’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조언들이 힘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A씨처럼 사업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는 노력도 맥이 끊기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단기간에 매출을 확 늘려주는 유커는 좋은 손님이다. 하지만 이는 유커가 한국을 방문할 때의 얘기다. 유커가 한국행 발걸음을 끊으면 부메랑은 여지없이 날아온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유커의 발길이 뚝 끊겼을 때를 돌이켜보자. 유커 의존도가 컸던 탓에 당시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해 5월 133만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6월 75만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유커가 62만명에서 31만명으로 줄어든 탓이 컸다. 관광수입은 15억1500만 달러에서 9억4400만 달러로, 7월엔 8억 달러대로 떨어졌다.

유커만 쳐다보는 천수답 시장

그러자 ‘유커는 리스크’라는 인식이 싹텄다. 중국 의존도가 너무 크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동과 동남아 관광객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들을 겨냥한 마케팅도 속속 나왔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자 관광객 다변화 주장도 쏙 들어갔다. 업계는 너도 나도 유커 받들기에 나섰다. 유통업계는 수천만원대의 고가 경품을 내걸었고, 푸짐한 할인행사를 펼쳐 유커의 지갑을 열었다. 쇼핑 편의를 돕는다면서 중국까지 무료 택배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서울시는 2016년 5월 유커를 대접한다면서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에 400여개의 테이블, 4000명분의 삼계탕, 4000개의 캔맥주를 공짜로 제공했다. 메르스 사태가 끝나고, 중마이과학발전유한공사의 임직원 8000여명이 한국을 방문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들을 푸짐하게 대접한 거였다.

사드배치로 인한 보복이 중단되고 유커가 돌아오려는 지금, 국내 분위기는 메르스 이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분주한 건 면세점 업계다. 신라면세점은 중국 대표 메신저인 위챗과 손잡고 위챗을 통해 송금과 결제가 가능하게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택시호출 서비스와 대중교통 이용 안내 서비스도 도입했다.

중국 내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해 유커 마케팅을 해온 롯데면세점은 이번에 방탄소년단을 발탁, 대대적인 마케팅을 준비 중이다. 중국 현지 여행사 관계자와 함께하는 팸투어도 검토하고 있다. 여행사를 통해 유커를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유커가 다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유커 잡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커 리스크 대비는 온데간데없다. 언제까지 리스크를 끌어안고 전전긍긍할 거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한국여행 금지령과 비슷한 조치들이 앞으로 더 없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관광 관련 업계의 관심과 마케팅 자원이 유커에 집중될수록 이런 리스크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올해 초 한국관광공사가 밝힌 ‘방한訪韓 중국인의 지출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공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약 222만명이었고, 그에 따른 관광수입은 약 4조6000억원이었다. 생산유발 효과는 약 8조5000억원, 부가가치유발은 약 3조7000억원, 취업유발은 약 6조7000억원으로 조사됐다.

4년 후인 2015년은 메르스가 지나간 해였음에도 방한 중국인은 598만명에 달했다. 관광수입은 약 15조7000억원이었다. 생산유발은 약 27조6000억원, 부가가치유발은 약 12조5000억원, 취업유발은 약 19조4000억원이었다. 방한 중국인 수가 늘수록 경제적 파급력은 점점 커진다는 얘기다. 거대한 경제 파급효과가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스크 없이 성장만 있다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유커가 발길 한번 돌린다고 한국경제가 심하게 요동친다면 ‘유커의 유턴’은 마냥 반길만한 일은 아니다. 여차하면 한국경제가 유커의 뒤꿈치만 보는 ‘천수답 시장’이 될 수도 있어서다. 대중국 외교나 무역에서 한국의 입김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 당시 제기된 전문가들의 조언을 다시금 되새겨 오히려 다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중요한 건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 하는 거다. 한국관광공사가 축적해놓은 데이터(2016년 기준)들을 잘 보면 그 속에 해답이 있다. 먼저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한 목적이 뭘까. 여가ㆍ위락ㆍ휴가(59.8%)를 위해 온다는 이들이 상당수다. 일부는 사업차(15%) 방문한다. 쇼핑(12.7%) 목적은 그다음이다.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쉬거나 즐기러 오는 것이지 쇼핑을 하러 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주요 방문지는 명동(63.2%)이나 동대문시장(48.6%) 등이다. 더 이상 싸구려 여행상품으로 유커에게 쇼핑을 독려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여행 결정 시점은 주로 1~2개월 전(66.7%)이다. 오래 전부터 계획해서 “한국을 반드시 가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지 않는다. 관광지로서 한국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방문 지역은 서울(78%)에 집중돼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평균 체류 기간은 러시아(14.6일), 중동(12.2일), 인도(11.6일), 독일(10.6일), 미국(9.8일), 말레이시아(7.1일) 순이다. 한국 방문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일본은 각각 6.1일, 3.9일이다.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이 지출할 거라는 건 당연한 이치다.

쇼핑 말고 대안 내놔야

종합하면 단순히 이벤트나 프로모션만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보다는 풍성한 경험거리들을 통해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이훈 한양대(관광학) 교수의 조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수는 “시장의 균형을 고려할 때 어느 한 시장이 30%를 넘는다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려면 관광객들이 오래 머물고 지방까지 갈 수 있는 경험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저가 여행상품으로 쇼핑만 부추기는 식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상품 구성을 다양화하면서 내수 관광에도 신경을 더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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