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❸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는 탁상공론의 비극을 그린다. CIA 중동지방 총책임자인 호프만은 워싱턴의 책상머리에서 이라크 현장에 나가 있는 페리스 요원을 원격조정한다. 그의 지시에서 현장에 대한 이해나 고려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무수히 많은 정책들이 쏟아지지만 현장을 모르거나 무시한 채 그럴싸할 뿐이다. 
 
오늘(10월 30일)도 뉴욕에서 소위 ‘이슬람 국가(IS)’의 ‘묻지마 테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모양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하는 이슬람의 테러 소식은 거의 일상적인 느낌이다. 9ㆍ11테러처럼 많게는 수천명, 적어도 수백, 수십명이 희생되다 보니 오늘처럼 ‘사망 8명’짜리 테러는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우리는 이슬람과 크게 원수진 일이 없어서 이슬람 테러는 그야말로 ‘강건너 불구경’이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슬람 테러에 매일매일 전전긍긍하는 서구 사람들의 형편이 딱하기는 하다. 그들이 느끼는 이슬람 테러 위협은 우리가 느끼는 북한의 위협을 능가할 듯하다.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두통거리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이슬람’이 있다. 북한 2500만은 우리 북쪽 특정지역에 몰려있지만 ‘20억 이슬람’은 지구상 없는 곳 없이 퍼져 있으니 딱하다. 북한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라면 이슬람은 사방에 널려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활화산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더 딱하다.
 
9ㆍ11 테러를 당하고 테러방지에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다시피한 세계 최강 미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곳저곳 폭탄을 터트리고 돌아다니는 무슬림들이 경이롭다. 하지만 사막의 어느 폐차장에서 훔쳐 온듯한 낡은 픽업 트럭을 몰고, 흙반죽 움막집을 옮겨다니는 테러리스트 하나 소탕하지 못해 번번이 당하는 미국의 세계 최강 정보조직 CIA의 무기력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다. 21세기의 ‘불가사의不可思議’라 할만하다.
 
▲ 호프만은 워싱턴의 책상에 앉아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지시를 마구 내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리들리 스캇 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는 미국과 이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21세기 불가사의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 제아무리 놀랍고 불가사의한 마술도 알고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트릭에 불과하다.
 
영화의 도입부에 CIA 중동지방 총책임자인 호프만(러셀 크로우)이 CIA 고위관리들에게 그가 수행하고 있는 중동지역 대테러 정보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아날로그’ 방식과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CIA의 최첨단 정보전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무용지 물로 만들어버렸다고 하소연한다. 미국은 대테러전 수행을 위해 고도 3만㎞ 상공에 띄운 수백개의 정보위성을 통해 테러용의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최고의 도ㆍ감청盜ㆍ監聽 장비와 해커들을 동원해 그들의 통신을 모두 훑어낸다.
 
최첨단 정보전에 맞선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대응은 아날로그 시대로의 회귀다. 중요한 내용은 전화나 이메일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나 주고받는다. 모래먼지 속에서 미라처럼 온몸과 얼굴을 칭칭 감고 돌아다니는 그들은 제 아무리 고해상도를 자랑하는 미국의 첨단 위성도 고철덩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호프만은 아날로그에는 아날로그로 대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현지 사정에 통달하고 아랍어에 능통한 요원 로저 페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현장 요원으로 파견하고 전통적인 ‘인적 정보전(Human intelligence)’에 승부수를 띄운다. 이라크와 요르단 현지의 구체적인 상황에는 깜깜한 채 워싱턴의 안락한 사무실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호프만에게는 자신이 머릿속에 그리는 모든 작전과 지시가 너무나 그럴듯하고 실현가능한 듯 느껴진다. 
 
호프만이 현장 상황에 대한 고민없이 내리는 지시 하나하나에 현장의 페리스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 더구나 워싱턴 책상머리에서 원격조종하는 호프만은 그가 내리는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페리스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나, 페리스가 저질러야 하는 살인과 폭력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 최빈국 북한 하나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군사력은 쏟아부은 예산을 무색케 한다.[사진=뉴시스]
양심의 가책은 온전히 페리스의 몫이다. 페리스가 그토록 사랑하는 오르단 여인 아이샤도 호프만에게는 아무런 가치 없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희생시킬 수 있는 체스판의 졸卒에 불과하다. 페리스는 점차 회의에 빠지고, 분노하고, 결국 진저리치고 조직을 떠난다. 낙타 젖이나 짜는 이슬람 전사들이 최첨단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CIA를 상대로 또다시 미스터리한 승리를 거둔다.
 
오늘도 현장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수많은 그럴듯한 정책이 저 높은 어디선가 어느 높은 분의 머리에서 나와 입안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의 현장으로 하달된다. 현장은 대개 난감해진다. 제아무리 난감해도 정책은 수행해야 한다. 조금 우직한 현장요원은 ‘맨땅에 헤딩’하다 과로사하거나 순직한다. 조금 요령있는 현장요원은 아랫사람을 등치거나 쥐어짠다.
 
조금 간 큰 요원은 눈속임이나 허위보고서 ‘창작’에 맛들인다. 간이 크다못해 배 밖으로 나온 현장요원은 자금 착복과 유용까지 서슴지 않는다. 위에서 현장을 모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십년간 매년 북한보다 수십배의 국방예산을 투입하고도 우리 군사력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라는 북한에 비해 항상 열세라는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21세기의 또다른 불가사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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