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아이폰X의 믿는 구석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춘다. 첨단 기술을 탑재한 고가의 플래그십 제품부터 실용성을 강조한 중저가 스마트폰까지 여러 개다. 그런데 애플은 줄기차게 ‘아이폰’ 라인업 하나로 고가 제품만 만들었다. 그러고도 시장 점유율 2위를 고수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폰 10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아이폰Χ 역시 비싸다. 그런데 이번에는 논란이 됐다. 비싸도 너무 비싸서다. 왜 그렇게 비싼 걸까.

▲ 아이폰 1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아이폰X이 가격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사진=뉴시스]

‘속도는 두배, 가격은 절반(Twice as fast, half the price).’ 2008년 애플이 아이폰3G를 출시하면서 내걸었던 광고 문구다. 실제로 아이폰3G는 이전 모델(아이폰1세대)보다 성능이 향상됐음에도 절반 수준의 가격(199달러ㆍ21만8000원)으로 출시돼 인기를 모았다. 한줄 문구로 제품을 표현하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고려할 때, 당시 아이폰의 핵심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9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정반대의 행보다. 특히 1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신제품 ‘아이폰Χ’의 가격은 논란으로 번졌다. 64GB 모델은 142만원, 256GB 모델은 163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대형 가전제품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기본 모델의 가격이 여섯 자릿수를 넘어가면 소비자들이 확 비싸다고 느끼기 때문에 100만원은 넘기지 말라’는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당연히 소비자들도 ‘너무 비싸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이동통신 유통대리점 관계자는 “애플의 제품을 원하는 신규 수요 고객들도 아이폰Χ의 가격을 들으면 소스라치게 놀란다”면서 “오히려 이전 모델인 ‘아이폰6S’과 ‘아이폰7’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경쟁사들의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비교해도 아이폰Χ의 가격은 튄다. 지난 9월 15일 시장에 나온 LG전자의 ‘V30’ 64GB의 가격은 94만9300원으로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10월 16일 공개된 화웨이의 ‘메이트10프로(835달러ㆍ약 91만6000원)’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8’ 64GB의 가격은 109만4000원으로 100만원을 넘겼다. 하지만 같은 용량의 아이폰Χ보다 32만6000원 더 저렴하다.

아이폰Χ이 성능 면에서 경쟁작보다 월등히 뛰어나면 가격이 비싼 이유가 설명이 된다. 아이폰Χ이 이전 아이폰 모델보다 진일보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시리즈 최초로 탑재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다른 제품들도 OLED 디스플레이를 이미 탑재하고 있다는 점. 올해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 대부분은 OLED 디스플레이를 채택하면서 대세가 됐다.

100만원 훌쩍 넘는 가격

1200만 화소의 아이폰Χ의 후면카메라는 갤럭시노트8과 같다. 하지만 카메라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 아이폰Χ의 조리개 최대구경은 f1.7로 갤럭시노트8(f1.8)보다 조금 떨어진다. 카메라 구경이 클수록 렌즈의 밝기가 커지는 점을 감안하면 갤럭시노트8이 더 우수한 셈이다.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램과 배터리 용량은 각각 3GB, 2716㎃h로 경쟁사 플래그십 스마트폰 중 가장 낮다. 적어도 하드웨어 성능으로는 아이폰Χ이 비싼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혹시 첨단 기능이 추가되면서 원가가 높아진 건 아닐까. 아이폰Χ을 대표하는 혁신 기술은 ‘페이스ID’다. 지문 인식시스템인 ‘터치ID’ 대신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해 자동으로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는 기술이다. 사실 기술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보조 보안 차원에서 얼굴인식 시스템으로 잠금화면을 해제하는 제품은 많다.

그럼에도 애플이 페이스ID를 ‘혁신’으로 꼽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존 기술은 2차원(2D)으로 얼굴인식을 했다면, 페이스ID는 얼굴의 깊이까지 인식하는 3D 방식이다. 적외선(IR) 빛을 활용해 얼굴에 3만개 점을 찍어 특징을 구별하는데, 3만개 중 일정 비율 이상이 일치해야 동일한 얼굴로 인식한다. 그만큼 탄탄한 보안을 갖출 수 있다는 거다. 애플은 “페이스ID가 제3자의 얼굴로 해제될 가능성은 100만분의 1”이라고 자신했다. 애플의 설명대로라면 고가의 가격을 책정할 만하다.

그런데 9월 12일(현지시간)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발생한 촌극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페이스ID 시연 현장에서 아이폰Χ이 사용자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베트남의 한 보안회사가 3D프린터로 만든 얼굴로 페이스ID 잠금 해제에 성공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국내 금융권은 페이스ID를 모바일 인증수단에서 제외했다. 이 기술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다. I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의 생체 인증의 안전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면서 “가격 문제 때문에 최상급 센서를 탑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폰Χ의 부품원가는 비싸지 않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의 분석에 따르면 370달러(약 40만4000원)에 불과하다.

▲ 아이폰3G 당시 애플은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마케팅을 펼쳤다.[사진=뉴시스]

“아이폰은 계속 비쌀 것”

아이폰Χ이 비싼 이유를 설명할 방법은 없을까. 이정우 경북대(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베블런 효과라는 게 있다. 물건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사고 싶어는 현상을 뜻한다. 애플의 가격정책에서도 이런 현상이 보인다. 이는 샤넬ㆍ구찌 등 초고가 명품브랜드의 전략과 비슷하다. 애플이 ‘명품 스마트폰’ 이미지를 선점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아이폰은 업계의 ‘아이콘’이다. 초기 스마트폰 열풍을 주도했고 여전히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한다. 브랜드 파이낸스의 조사에 따르면 애플은 글로벌 500개 브랜드 중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아이팟’을 만들던 시절부터 충성고객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서 “이미 아이폰 수요층을 탄탄히 만들어둔 만큼 이들 중심의 판매 전략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애플은 다음 시리즈에도 ‘가격 경쟁력’을 밀어붙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밑바닥에는 비싸도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는 애플의 계산이 깔려 있다. 이 계산이 통할지 말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속칭 ‘아이폰 빠(열광자)’에게 달려 있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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