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스톤 당산 사건 또 다른 이야기

주택조합아파트의 분양대행사는 ‘할인 분양’을 공공연히 떠들었다. 하지만 가계약이 되자 “할인은 없다”며 말을 바꿨다. 계약자들은 조합과 분양대행사,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런데 조합장과 분양대행사만 유죄, 시공사는 불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났다. 이 건설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브라운스톤 당산 사건을 취재했다. 시공사는 이수건설이다.

▲ 이수건설은 ‘브라운스톤 당산’의 ‘사기 할인 분양’ 관련 민사소송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사진=천막사진관]

2014년부터 ‘사기 할인 분양’ 논란을 빚은 서울 당산동 제2지역 주택조합아파트 브라운스톤 당산(더스쿠프 통권 118호 ‘애먼 투자자 벼랑으로 몰았나’ 참조). 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할인 분양’이란 말에 속아 사기를 당했다는 이들은 2015년 12월 조합장과 조합, 분양대행사(대표와 직원), 시공사 등을 상대로 민ㆍ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8월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법원은 애초부터 할인 분양을 해줄 생각도, 능력도 없었던 분양대행사가 ‘할인 분양’을 조건으로 아파트 구매자들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조합장과 분양대행사가 소비자를 ‘기망(사기)’했다고 판단했다. 민사에서 형사에 해당하는 사기를 근거로 판결을 내렸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조합장과 분양대행사의 사기행각이 분명했다는 방증이다. 조합장이 유죄를 받은 만큼 향후 조합에도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기 행각을 공모한 것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이해당사자는 이 판결에서 쏙 빠졌다. ‘브라운스톤 당산’의 시공사인 이수건설이다.

이수건설은 ‘브라운스톤 당산’을 선분양제 방식으로 지었다. 분양을 통해 구매자가 나타나면 이들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그 돈으로 아파트를 지었다. 이수건설의 관심은 당연히 분양이었다. 문제는 당시 이 아파트를 사려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자 이수건설은 40명의 이수건설 직원을 동원했다. 조합원 자격이 없던 직원들을 조합원으로 둔갑시켜 아파트를 분양받도록 했다.

직원들이 원치 않을 때는 ‘전매 전략(이미 분양받은 사람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입주자를 변경하는 것)’을 썼다. 분양대행사가 실구매자를 모집해오면 분양권을 넘길 수 있는 혜택을 직원들에게 줬다는 얘기다. 가성조합원을 진성조합원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분양대행사에 맡기는 계약도 체결했다. 조합원 수만 편법으로 채워 놓으면 금융결제원이 조합원 자격심사를 완료하기 전이라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수건설 측은 “책임준공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종합해보면 이수건설과 분양대행사, 조합의 목적은 ‘분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조합장이 ‘할인 분양’ 사실을 알고도 방조 혹은 부추겼다”는 점을 인정해 조합장을 유죄판결했다. 그렇다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이수건설은 ‘할인 분양’을 몰랐을까.

수사 결과 2년째 감감무소식

그렇지 않다. 당시 분양대행사는 ‘할인 분양’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인터넷으로 활동한 공인중개사들의 물건 소개자료, 심지어 ‘브라운스톤 당산’ 홍보관 주변 현수막에도 ‘할인 분양’이 등장한다. ‘할인 가격’까지 명시돼 있었다. 분양사무실에는 조합 관계자와 이수건설 직원도 상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원도 이런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이수건설에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수건설 소속 직원이 분양사무실을 출입했던 사실, 이수건설 임직원 40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사실, 분양대행사와 협의해 가성조합원을 진성조합원으로 교체하려 한 사실들을 다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수건설이 불법행위에 가담했다고 할 수 없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얘기다.

법원이 이렇게 판단한 데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민사의 한계다. 다수의 법률전문가들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사기는 형사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민사다. 민사에서 형사 사건의 진위여부를 깊이 들여다보기는 힘들다. 이 재판에서 사기를 전제로 피고의 유죄를 판단했다는 건 그래서 이례적이다. 사기행각 자체가 워낙 명확했기 때문인 듯하다. 다만 누가 얼마나 불법행위에 가담했는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다른 하나는 담당 검사와 경찰의 수사 의지다. 이번 민사소송에서 ‘사기 행위’에 관한 수사는 필수였다. [※참고 :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하지만 2015년 12월 피해자들의 최초 고소 이후 2년이 다 되도록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을 맡았던 경찰이 분행대행사를 오가던 이수건설 관계자 한명을 조사한 게 수사의 전부다. 가성조합원이던 40명의 이수건설 임직원들을 단 한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이송移送도 유난히 많았다. 분양대행사 측 관계자들이 제주에 주소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남부지검과 제주지검은 사건을 7번이나 주고 받았다. 이용희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면서 “보통 한번 이송하면 이송받은 곳에서 마무리를 하고, 이렇게 핑퐁하듯 넘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이번 민사소송에서 유죄를 받지 않은 이수건설은 수사대상에서 빠지느냐”는 질문에 담당 수사관은 “그렇지 않다”면서 “형사와 민사는 다르니까 충분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건설은 이번에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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