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업계 저항하는 이유

정부 정책으로 탄생한 아이템은 늘 똑같은 운명에 처한다. “잘 되면 정부 덕, 안 되면 업체 탓”이라는 거다. 요즘 알뜰폰이 그렇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정책에서 빠진 알뜰폰 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면서 어려움을 호소하자 “그만큼 받았으면 된 것 아닌가”라는 눈총이 쏟아진다. 이 눈총은 타당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통신시장에서 소외된 알뜰폰 업계를 취재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수많은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을 발표했다. 그중 알뜰폰 활성화와 관련된 정책은 없었다.[사진=뉴시스]

“가계통신비 절감할 방안을 찾자.” 올해 7월 21일, 정부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동통신3사는 물론 학계, 시민단체 등 관계자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그런데 방청석에 앉아 이들의 열띤 토론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알뜰폰 사업자였다. 6년 전 ‘가계통신비 절감 대책’의 일환으로 사업을 꾸린 이들이 이 토론회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건 아이러니였다. 알뜰폰을 대하는 정부의 시선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런 미지근한 태도는 정부 정책에서 먼저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놓은 수많은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 중 ‘알뜰폰 활성화’ 정책은 전무했다. 정부가 6월 발표한 통신비 절감대책에도 알뜰폰 사업자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도리어 이동통신 3사 요금제를 낮추는 방안에만 집중돼 알뜰폰 사업자의 강력한 무기인 ‘가격 경쟁력’을 끌어내렸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알뜰폰 사업자를 이동통신시장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탄했다.

정부가 처음부터 알뜰폰에 무심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알뜰폰은 정책 사업의 일환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통3사의 독과점이 심해 국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장 경쟁 활성화 차원에서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육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통3사의 망을 저렴하게 빌려 여러 사업자가 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거였다. MVNO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알뜰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대국민 공모 캠페인’을 벌인 정부의 선택이었다.

파격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11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알뜰폰 활성화 가이드라인’을 선포했다. 알뜰폰 사업자가 통신망을 빌리는 대가로 내는 도매대가를 매년 50~60% 줄이는 게 골자였다. 이듬해 전파법을 고쳐 전파사용료도 면제했다. 유통망 확보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우체국에서 대신 알뜰폰을 팔아줬다. 정책은 적중했다. 2011년 24개에 불과하던 알뜰폰 사업자는 올해 41개로 늘었다.

알뜰폰 부흥 총력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업자들은 여전히 ‘이러다 알뜰폰 시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돈을 버는 회사가 많지 않다. 알뜰폰 업계는 지난해 317억원 적자를 봤다. 2011년 이후 누적적자만 3309억원에 달한다. 올해도 ‘흑자전환은 무리’라는 게 업계 의견이다.

알뜰폰 업계가 정부에 섭섭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는데, 손을 떼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런 불안은 통계로 잘 나타난다. 최근 알뜰폰 가입자가 이통3사로 이탈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9월 366명에 불과하던 이탈자 수는 정부가 선택약정할인율 인상을 적용한 10월 1648명으로 5배나 늘었다.

이탈자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65세 이상 어르신 요금제 감면’ ‘2만원대 보편요금제’ 등 정부가 추진 중인 인하대책의 타깃이 알뜰폰이 노리는 틈새 시장이라서다. 특히 이통3사가 ‘데이터 1GBㆍ음성 200분ㆍ문자 무제한’ 서비스를 월 2만원대에 제공하는 보편요금제는 알뜰폰 사업자에게 치명타다. 알뜰폰 업체 대부분의 인기 요금제가 월 2만원대인데, 이들은 이통3사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어서다.

알뜰폰 업계가 최근 새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지원 정책을 요구하는 이유다. 그런데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다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게 아니냐”는 역풍을 맞았다. ‘요금이 파격적으로 낮지 않다’ ‘AS가 불편하다’ ‘스마트폰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 ‘결제서비스를 이용하지 못 한다’ 등 여러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도 시장의 판을 바꾸지 못한 건 결국 업계의 잘못이라는 거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이런 비판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송종휴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확실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강력한 요인이 막대한 보조금, 비싼 단말기 등 돈이다. 알뜰폰 사업자가 출범한 2011년은 이미 서비스 보급률이 105%를 넘어선 상황이었다. 이통3사의 고객을 뺏어야 하는데, 정부 지원만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알뜰폰은 애초부터 자생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다. 정부가 ‘시장 경쟁 활성화’라며 그린 청사진이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거다. 실제로 우리나라 알뜰폰 사업자 대부분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지 않고 ‘단순 재판매’ 사업으로 출발했다. 정부가 보낸 ‘지원할테니 참여하라’는 시그널을 믿었던 결과였다. 문턱도 낮았다. 30억원 이상의 자본금과 기술계 3명 이상, 기능계 2명 이상의 인력만 갖추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통신비 인하 첨병 기대

문제는 모든 설비를 시장 경쟁자인 이통3사에 의존하게 됐다는 점이다. 알뜰폰 사업자가 망 도매대가 협상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웠던 이유다. 김진교 서울대(경영학) 교수는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자체 설비를 갖춘 부분ㆍ완전 MVNO로 발전해 번호이동이나 부가서비스, 요금제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알뜰폰 육성 기조는 단순 지원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해결책은 없을까.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알뜰폰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책 방향이 분명해야 위태로운 알뜰폰 사업자도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다. 알뜰폰을 통신 시장에 끌어들인 건 정부다. 지금 와서 따돌리기에는 파급력이 커졌다. 올해 3월 기준 알뜰폰 이용자가 700만명. 시장점유율도 두 자릿수(11.7%)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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