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어폰의 비밀

‘갤럭시S8’을 사면 특별한 이어폰이 딸려온다. 명품 오디오 브랜드 AKG의 프리미엄 이어폰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하고 난 뒤에 생긴 변화다. AKG는 하만의 계열사다. 그런데 이 이어폰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제조를 담당한 회사가 삼성의 친족기업 ‘알머스(옛 영보엔지니어링)’이었다. 어설픈 협업이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를 가로막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갤럭시S8 이어폰에 숨은 비밀을 취재했다. 

▲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사진은 디네쉬 팔리월 하만 CEO.[사진=뉴시스]

2016년 11월 14일. 글로벌 IT 업계를 뒤흔드는 소식이 들렸다. “삼성전자가 미국의 오디오 기업 하만인터내셔널의 인수를 결정했다.” 인수가격만 80억 달러(약 9조원). 국내 기업이 실행한 인수ㆍ합병(M&A) 중 최대 규모였다.

으레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M&A에는 ‘승자의 저주’ ‘무리수’ 등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달랐다.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들었다. 시장이 하만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셈이다. 시장이 JBL, AKG, 뱅앤올룹슨 등 고급 오디오 브랜드를 보유한 하만의 잠재력을 높이 산 결과였다.

더구나 하만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장부품 사업에 잔뼈가 굵다. 전장부품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전자 장치를 말한다. 애플, 구글, LG전자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모두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분야다. 이들이 전장부품 사업에 탐을 내는 이유는 무인차에 있다. 미래 무인차가 각종 첨단 전장부품의 집약체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2015년 1월 ‘전장사업팀’을 만들면서 전장부품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진출 시기도 늦은데다 진입장벽까지 높았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센서, 동력 등 수많은 부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보통 기술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애플은 차량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인 ‘카플레이’를 이미 출시해 진영을 구축했고, 구글도 ‘안드로이드오토’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체 연합세력을 모으던 시기였다. 가만히 있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았다.
 

삼성전자가 이를 단숨에 반전시킬 카드가 하만 인수였다. 하만은 지난해 매출 중 전장부품 부문 비중이 65%에 달한다. 글로벌 카오디오 시장점유율은 41%, 텔레매틱스 시장점유율은 10%로 수위권을 다툰다. 더구나 하만은 이미 완성차 고객을 다수 확보한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하만 덕분에 단숨에 글로벌 전장 업체로 도약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에 고사양 음향기능을 탑재하면 단말기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시너지 효과는 금세 드러나는 듯 했다. 인수가 마무리되던 3월 중 ‘갤럭시탭S3’에 하만의 명품 오디오 기업 AKG의 기술력이 들어갔다. 첫 협업이었다. 다음 협업은 스케일이 더 클 것이라는 소문이 시장에서 돌기 시작했다. 타깃은 삼성전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8’이었다. 이 제품은 전작 ‘갤럭시노트7’의 충격적인 발화 이슈를 만회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소문은 출시 행사에서 현실이 됐다. 갤럭시S8의 번들 이어폰 ‘EO-IG955’의 튜닝(소리 조정)을 AKG가 맡았기 때문이다. 갤럭시S8을 사면 공짜지만, 따로 매장에서 살 때는 99달러(약 10만원)를 내야 하는 ‘프리미엄 제품’이었다.

실망스러운 협업 결과물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S8을 마케팅하면서 AKG가 튜닝한 이어폰을 번들로 마련한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뒤이어 출시한 ‘갤럭시노트8’에도 같은 이어폰이 제공됐다. 두 스마트폰은 흥행에 성공했고, 삼성전자와 하만의 협업은 ‘잘 끼운 첫 단추’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협업 결과물만 두고는 의외의 평가가 나왔다. “번들로 제공하는 이어폰 중에는 인상적인 게 맞지만 가격 대비 프리미엄 품질은 아니다”는 거다. 사실 평가가 야박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나 AKG가 만든 게 아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생산 공장이 있는 여러 업체에 OEM을 맡겼다. 흥미로운 건 그중 하나가 ‘영보비나전자’라는 점. 이 회사는 알머스(옛 영보엔지니어링)의 베트남 현지 법인이다. 알머스의 지배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셋째 누나인 이순희씨와 그의 아들 김상용 알머스 대표다. 친족회사 일감몰아주기로 시민단체로부터 종종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같은 지적을 받을 공산이 크다. IT 업계 관계자는 “기술유출 우려가 있고, 품질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주력상품은 직영공장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면서 “AKG를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을 했지만 결국 제품을 만든 건 삼성전자의 친족회사”라고 꼬집었다.

야심찬 협업이 꼬인 탓일까. 하만 인수를 발표한지 1년이 지났지만,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 하만 산하 브랜드 오디오 제품이 삼성전자 디지털플라자 매대에 걸리기 시작한 점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외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무엇보다 핵심인 전장부품 협업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전장사업팀 직속으로 ‘시너지 그룹’을 신설했지만 성과가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무인차가 미래 기술인 만큼 하만 인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한 M&A”라면서 “눈에 띄지 않을 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너지 효과 어디에…

문제는 이렇게 느긋하게 움직일 시간이 없다는 거다. 경쟁사들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이미 출시 시점을 확정한 기업들도 있다. 구글의 무인차 개발 자회사인 웨이모는 혼다와 손잡고 도쿄 하계 올림픽이 열릴 2020년부터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차량용 AI 컴퓨터 솔루션인 ‘드라이브 PX 페가수스’를 탑재한 자율주행 택시를 2020년부터 운행할 예정이다. BMW는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아이넥스트’를 2021년 출시한다.

주목해야 할 건 삼성전자가 품은 이후의 하만 실적이다.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된 3월 11일 이후부터 1분기 말까지 하만은 매출 5400억원, 영업이익 20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2분기에는 매출 2조1500억원, 영업이익 100억원을 거둬들였다. 그러다 최근 3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300억원이다. 삼성전자와 하만과의 시너지 모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