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세컨드 라이프 ➓ 안남섭 전문코치

안남섭(62) 전문코치는 “예순이 되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슬로 라이프를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자문해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또 끊임없이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라고 권했다.

▲ 안남섭 전문코치는 “정성이 담긴 영양가 있는 밥을 제때 가족ㆍ이웃과 먹지 않아 만병이 생긴다”고 주장했다.[사진=안남섭 코치 제공]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지식 추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미 결론이 나지 않았나요? 지금은 공부보다 저마다 건강한 삶을 살아낼 때입니다.”

안남섭 전문코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는 빤한데 미디어 등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폭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공유경제의 시대를 평생학습으로 대비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개방적이고 유연해야죠.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삶의 목적에 대해 성찰하고 삶의 기술을 습득해야 합니다. 뭣이 중한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염원하면서도 일상에서는 불행해지는 짓을 열심히 합니다. 원하는 삶을 살려면 그 목표를 이루려 그와 관련된 활동에 하루하루를 투자해야죠.”

라이프코치로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후ㆍ두ㆍ염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현재를 두려워하며 미래를 염려한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에 대한 그의 코칭 처방전은 ‘감ㆍ기ㆍ주ㆍ사’이다. 일상에 대해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을 하는 한편 남들과 서로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너나 없이 중년의 나이에 공부에 몰두하고 인생 2막에 강의를 하려 드는 풍조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의 모델로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우선입니다. 변화의 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강의를 해도 별 영향력이 없어요.”

그는 종합상사맨 출신이다. 한국외국어대 독어과를 나와 삼성물산 독일 주재원으로 5년 간 일했다. 삼성항공 카메라를 독일 등지에 팔았고 동구권 붕괴 특수 때 삼성전자 제품을 이 지역에 수출했다. 줌카메라의 경우 마켓셰어를 제로에서 시작해 20% 가까이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 시절 총 74개국을 무대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탱크 소대장으로 복무한 그는 추진력이 좋았다. 좋으면 바로 실행에 옮겼고 될 때까지 밀어붙였다. 자연히 가족은 밀려났다. 두 아들과의 대화도 부족했다. 회사인간으로 살면서 놓치는 게 많았다.

▲ 안남섭 전문코치는 북한강변을 따라 열리는 벼룩시장 문호리리버마켓에도 종종 참여한다.[사진=안남섭 코치 제공]

삼성물산을 퇴사해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독일이 강한 환경기술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호텔신라 물처리 시설, 삼성전자 폐가전 리사이클링 센터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안정될 만하자 IMF 체제가 덮쳤다.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독일 사무소 문을 닫고 귀국해 e-러닝 교육사업을 벌였다. 귀국 결정엔 사춘기를 맞은 두 아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사업 방향은 정확했고 사업성은 확고해 보였다. 빨리 가야겠다는 욕심에, 이 길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라는 사명감까지 작용했다. 이 사업은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공동대표였던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좌절을 딛고 2003년 코칭으로 눈을 돌렸다. 적성에 잘 맞았다. 국내에 도입되는 코칭 프로그램마다 참여했다. 코치협회 결성을 주도해 2년 전까지 부회장을 지냈다. 15년 경력의 코치인 그는 코칭이 한국의 조직문화를 바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코칭 전도사가 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의 조직문화는 수직적입니다. 코칭 문화를 뿌리내려 조직도, 구성원도 수평적으로 변해야 돼요. 그래야 잠재력이 발휘됩니다.”

그는 캐롯글로벌ㆍ바인그룹의 고문 코치를 맡고 있다. 캐롯글로벌은 코칭을 도입하기 전 이직률이 20%를 상회했다. 지금은 10%대다. 이직률이 낮아지며 기업의 생산성이 올랐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업무에 몰입해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들이 이직을 하는 건 일하는 기계로 살기 싫어서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은 거죠. 코칭을 도입한 기업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서포트합니다.”

코칭을 도입하면 조직의 회의 문화도 바뀐다. 자기 중심적이었던 구성원이 고객 중심적으로 변한다. 협력업체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이래저래 조직의 생산성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는 코칭이 가장 필요한 현장으로 학교를 꼽았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고 공감해 주고 저마다 원하는 삶을 살도록 준비시키는 코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통제력을 잃을 때 두려움에 빠집니다.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코칭을 배워 이 두려움을 사랑의 에너지로 바꿔야 합니다. 교사의 시선과 눈빛이 바뀌면 학생이 바뀝니다. 더 이상 대상화도 줄세우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부모도 코칭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녀를 인격체로 존중할뿐더러 자녀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밥상대화를 나누고 이들이 가족회의를 주도하게 하라고 권했다. “코칭은 마중물 같은 겁니다. 한 바가지 물을 펌프에 부어 지속적으로 물이 나오도록 하는 거죠. 멘토링이 경험의 전수라면, 코칭은 경험 여부를 떠나 존재로부터 가능성을 끌어내는 겁니다.”

10년 만에 독일에서 돌아온 그는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정착했다. 독일서 눈뜬 자연친화적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필로티 위에 올린 집은 독일 집으로 불렸다. 이웃과 미래美來 마을을 만들었다. 라이프스타일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반장을 자임하며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청소년 코칭도 시도했다. 가까운 북한강변 문호리리버마켓에도 참여했다.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벼룩시장이다. 3년째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린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손님도 행복해 한다. 슬로 푸드를 팔고, 지역 예술가도 참여한다.

그는 “정성이 담긴 영양가 있는 밥을 제때 가족ㆍ이웃과 먹지 않아 만병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들 병을 고치려 돈 쓰고 병원 크게 짓느라 어마어마한 투자를 합니다. 악순환이죠. 밥의 효용은 칼로리로 따질 수 없습니다. 밥 짓고 설거지하는 건 모두가 해야 할 수련의 과정입니다. 삶의 스킬이고 그 과정을 통해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에게 인생 2막을 사는 지혜를 구했다. 그는 ‘천ㆍ연ㆍ조ㆍ미ㆍ료 무ㆍ우ㆍ국’을 권했다. 천천히, 각종 연결을 끊지 말고 조심조심 미리미리 요령껏 준비하라고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인생 후반전은 어른스러운 국민으로 살 생각을 하라고 부추겼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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