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생활화학제품 논란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촉발된 화학물질 공포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에만 물티슈, 생리대, 계란까지 화학물질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기업도 정부도 믿지 못하는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덜 유해한 성분을 찾아 나섰다. 그러자 업계는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으며 소비자 잡기에 나섰다. 문제는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가격은 올랐는데 안전성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프리미엄 제품에 숨은 논란거리를 취재했다.
▲ 화학물질 공포가 커지면서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자, 이들을 겨냥한 프리미엄 제품이 잇따라 출시됐다.[사진=뉴시스]
H&B(Health&Beauty) 스토어에서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직장인 이윤지(가명ㆍ28)씨는 최근 수입제품에 손이 가는 경우가 늘었다. 인체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치약이나 생리대 등 생활화학제품을 구입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씨는 “제품에 표기된 화학성분을 꼼꼼히 읽어보지만,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이 위해성 여부까지 알기는 어렵다”면서 “논란이 잦은 국산제품보다 수입제품이 더 안전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비싸도 구입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심에 성분을 따져 더 안전한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케미포비아(Chemical+Phobiaㆍ화학물질 공포증)’라고 한다. 케미포비아가 사그라들기는커녕 더 확산하는 건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태 이후 생활화학물질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다. 지난해 발암물질 치약에 이어 올해에는 다이옥신 기저귀, 살충제 계란, 메탄올 물티슈, 발암물질 생리대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가 터져 나왔다. 국내외 굴지의 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아 판매한 제품에서 잇따라 위해성분이 검출되자, 소비자 불안도 극에 달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는 사태를 진정시키는커녕 불안을 키웠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같은 대답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생리대 발암물질 논란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체에 위해성이 높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지만,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수준이다”고 밝혔다. 지난해 치약 발암물질 논란 때에도 식약처는 “검출량이 위해 수준보다 낮아 국민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검출돼선 안될 위해성분이 검출됐음에도 “그정도는 괜찮다”는 식의 모호한 대처였다. 
 
결국 기업도 정부도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생활화학제품 소비를 줄였다. 실제로 지난해 옥시불매운동이 벌어진 5월 이후 대형마트의 표백제ㆍ방향제ㆍ탈취제ㆍ섬유유연제 등의 매출이 전년 대비 20~50%(한국소비자원) 감소했다. 하지만 생활화학제품을 아예 안쓰고 살 수는 없는 일, 소비자의 눈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상대적으로 안전성과 기능성을 갖췄다고 여겨지는 해외 제품이나 천연유래성분, 유기농 등을 내세운 프리미엄 제품에 소비자의 관심이 쏠렸다. 생활용품 업체들이 프리미엄 제품을 속속 내놓은 이유다. 
 
대표적인 게 물티슈다. 물티슈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업체들은 ‘안티몬(Antimony) 프리’, ‘천연유래성분’, ‘무無화학첨가물’ 등을 내세운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했다. 저렴하게는 장당 10원씩 하는 물티슈가 장당 50~100원대로 비싸졌지만 주부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유해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월에는 대표적인 프리미엄 물티슈로 꼽히는 유한킴벌리의 하기스 아기물티슈와 그린핑거 아기물티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허용기준치(0.002%)를 초과(0.003~0.004%)한 메탄올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또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부 최미영(가명ㆍ34)씨는 “비싸도 최대한 유해물질 없는 제품을 찾아서 쓰려고 하는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배신감이 든다”면서 “조금이라도 안전할까 싶어 물을 따로 부어서 쓰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프리미엄 치약 시장도 급성장했다. 지난해 9월 아모레퍼시픽과 부광약품 등 10여개 업체 149개 제품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CMIT과 MIT이 검출돼 회수조치된 이후다. 당시 식약처는 “CMITㆍMIT가 유해생물 제거ㆍ억제를 위한 보존제로 사용됐으며, 기준치 이하의 극미량(0.000022~0.0015%)으로 국민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양치하며 가습기살균제 성분을 수차례 삼켰을지 모른다’는 우려는 프리미엄 치약의 인기로 이어졌다.
 
치약의 수입량이 급증한 건 단적인 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치약 수입액은 3493만 달러로 전년 대비 30%(2686만 달러) 늘었다. 가장 많이 수입된(의약외품 수입액 기준 4위) 치약 중 하나인 덴티스테 치약은 100g당 9900원으로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못믿을 기업 못믿을 정부 
 
프리미엄 치약 인기가 높아지자 논란을 일으켰던 국내 업체들도 시류에 편승했다. 고가의 치약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트에서 묶음으로 할인판매하던 치약이 옷을 갈아입었다. 애경산업은 수면 구강관리 전문치약 ‘덴티스트리’를 100g당 1만2000원대에 출시했다. 계면활성제(SLS), 파라벤, 타르색소 등을 빼 기능성과 안전성을 갖췄다고 홍보했다. LG생활건강도 오랄케어 전문 브랜드 ‘리치버블치약(45g당 1만5000원대)’을 내놨다. 일반 치약과 달리 거품 타입으로 칫솔질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가글로 양치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업체측 설명이다. 이들 제품은 일반 치약보다 2~3배 비싸다. 치약 제조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공포심을 갖는 화학성분을 빼고, 구강관리 기능을 더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 생활화학제품 논란이 잦아지면서 제품의 전성분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언뜻 ‘소비자 건강을 고려한 업계의 자정 운동’처럼 보인다. 그런데 반대 목소리도 있다. 케미포비아를 이용해 은근슬쩍 가격 올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팀장은 이렇게 꼬집었다. “기존 치약도 미백, 구취제거, 충치예방 기능성 등 여러 기능성을 강조하고 홍보했다는 점에서 프리미엄 치약과 다를 게 없다. 업체들은 왜 더 안전하고 기능성이 뛰어난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치약은 의약외품으로 성분을 모두 공개(12월 3일 이후 전성분 공개)하거나 안전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시류에 편승해 가격을 올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생활용품에 안전을 강조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건 업계도 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생활용품업계 한 관계자는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해서 성분에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면서 “어차피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화학물질을 뺄 수는 없어서다”고 인정했다. 그는 “결국 제한적인 내수시장에서 경쟁하는 생활용품 업체들이 프리미엄 전략을 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프리미엄 제품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경호 서울대(보건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특정 유해물질이 없다고 광고한다면, 소비자는 그 물질만 없으면 안전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또 프리미엄 제품임을 내세워 여타의 안전성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소비자 피해를 막으려면 제도적으로 화학제품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부의 안일한 관리와 기업의 탐욕이 엉켜있는 가운데 ‘안전’을 찾는 소비자의 지갑만 비어가고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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