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❹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는 서방세계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슬람 테러에 맞서는 고통스러운 대테러 첩보전쟁을 그린다. 그 풍경이 매우 기이해, 요즘 유행하는 ‘타임 슬립’ 영화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마치 19세기 아랍 병사들이 어찌하다 21세기로 미끄러져 들어와 최첨단 미군과 맞서 싸우는 듯하다. 아랍의 전통복장이나 그들이 동원하는 무기가 그렇다.
 
정보조직 CIA가 최첨단의 ‘정찰자산’을 총동원해 이라크 거물 테러리스트 알 살림(Al-Saleem)을 추적하는 모습은 마치 수십대의 탱크를 동원해서 여우 한 마리를 추격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준다. 관운장關羽字이 그 무게가 자그마치 82근 나갔다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짜증나는 모기 한 마리를 향해 휘두르는 꼴 같기도 하다. 도무지 상대조차 되지 않을 듯한 어이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데, 더욱 어이없는 것은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기는 82근 청룡언월도를 비웃으며 관운장의 코에 침을 박고 배터지게 피를 빤다. 알 살림은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두 눈 부릅뜬 CIA의 코를 베어가는 폭탄테러를 감행한다. 
과학의 시대에 CIA가 자랑하는 정보수집력은 대개 최첨단 도감청(Signals IntelligenceㆍSIGINT), 인공위성 촬영(Imagery IntelligenceㆍIMINT) 그리고 측량과 흔적추적 (Measurement And Signature IntelligenceㆍMASINT) 등으로 구성된다. 컴퓨터와 인공위성을 동원한 그들의 정보수집은 거의 공상과학소설 수준에 도달한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랍 전통의상으로 몸을 휘감고 낡은 지프차로 모래먼지 날리며 돌아다니는 이슬람의 전사들을 어쩌지 못한다. 휴대전화도 안 쓰고 컴퓨터도 안 쓰는 그들에게 최첨단 도청장비는 무용지물이다. 야간에 미로 같은 샛길 처마 밑으로 숨어 다니는 그들에게는 고해상도 인공위성 촬영도 해당사항이 없다. 결국 CIA는 그들이 자랑하는 SIGINT, IMINT, 그리고 MASINT 등 기술집약적 정보수집과 정찰에 한계를 느끼고 ‘인적人的 정보수집’인 휴민트(HUMINTㆍHuman Intelligence) 전략을 도입하기로 한다.
 
▲ 이라크에 파병된 페리스 요원은 아랍에 동화되고 요르단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휴민트란 어쩌면 가장 전통적인 정찰과 정보수집 방식이다. 휴민트를 위한 첫째 조건은 상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그리고 상대의 언어와 문화, 정서에 통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적군 포로를 구슬리기도 하고 심문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고문을 해서라도 필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다. 간첩을 파견해서 정보를 훔치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저인망식 무식한 정보수집을 하기도 한다. 상대 진영에 침투해서 현지인을 간첩으로 포섭하기도 해야 한다. 
 
이라크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로저 페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가 적임자로 발탁된다. 프로야구 외국 용병 선수가 한국에 익숙해지면 한국 여자와 결혼도 하듯 페리스도 아랍에 거의 동화돼 요르단 여자와 사랑에 빠진 인물이다. 페리스는 현지인 카라미를 포섭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CIA 중동 지부장 에드 호프만(러셀 크로우 역)은 알 살림을 추적하기 위해 로저 페리스를 미끼로 던져놓고 최첨단 고성능 드론 정찰기를 띄우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여러 대의 낡은 지프차를 동원해 뭉게뭉게 일으켜대는 모래먼지에 드론은 그야말로 ‘새’가 되고 만다. 미국의 하이텍(High-tech)이 다시 한번 이슬람의 로우텍(Low-tech)에 실신 당한다.
 
▲ 국내 최고 권력기관인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보유한 최첨단 ‘정찰 장비’의 구입 논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부르는 대로 돈 내고 사야 하면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사정이 딱하기도 하지만, 최첨단 정찰장비를 갖추어 사교邪敎집단 같기도 하고 이슬람 테러조직 같기도 한 북한의 위협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선심 쓰듯 판매한다는 최첨단 정찰 장비를 완비한 미국도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에 깜깜했으니 말이다. 
 
혹시 우리가 미국의 첨단장비를 휴민트를 가미해서 운용한다면 그 실효성이 제고될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우리와 언어와 문화 용모가 판이한 북한을 대상으로 휴민트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우리에게는 가능한 영역이다. 그런데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휴민트를 구사하는 것 같은데, 북한에 대한 우리의 휴민트는 지리멸렬인 듯해서 불안하다. 휴민트의 총본산이어야 할 국가정보원과 기무사가 국내 정치 상황에 댓글 달기 바빠서일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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