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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사진관] 발달장애인 휘수의 꿈, 편견을 반죽해 꿈을 굽다편견의 벽 앞에 선 휘수 “나 여기 서있다고 외치고 싶어요”
[266호] 2017년 12월 04일 (월) 09:54:09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

▲ 발달장애인 휘수는 꿈이 많은 청년이다. [사진=천막사진관]
5살 때 뇌전증, 13살 때 뇌종양…. 신神은 거칠었고, 사람은 무서웠다. 머리를 빡빡 깎은 아이, 그래서 뇌수술 자국이 선명했던 아이.
고약한 친구들은 이 아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툭하면 모자를 벗겼고, 걸핏하면 공을 던졌다. 어른도 다를 게 없었다. 아이의 가슴에 ‘장애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은 사람들이 숱했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꿈을 접지 않았다. 나이가 찰수록 편견과 모순에 부닥쳤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맛난 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발달장애인 휘수를 만났다. 여덟번째 주인공이다.

▲ 휘수의 꿈은 제빵기능사다. 제빵기능사의 첫 관문인 필기시험을 통과하는 게 1차 목표다. [사진=오상민 작가]

# 1장. 엄마의 상처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풀렸다. “아드님의 뇌에 악성 종양이 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엄마의 가슴은 사정없이 긁혔다. “13살, 고작 13살 아닌가.” 체념하기 힘든 억울함이 밀려왔지만 엄마는 주저앉을 수도, 절망할 수도 없었다. 아픈 아들 앞에선 당당해야 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나빴다. 뇌종양도 문제였지만 자리가 더 심각했다. 뇌종양이 하필 뇌하수체 옆에 뿌리를 내린 탓이었다. 엄마는 윤기 잃은 눈동자로 먼산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별일 아니야”라고 말한 뒤 비상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눈물샘이 터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가슴을 때리면서 자책했다. 그러다 눈물이 나오면 한 계단, 통곡을 할 것 같으면 한 계단 더 내려갔다. 아픈 아들에게 슬픔을 보여줄 순 없었다. ‘숨죽인 곡哭’을 한 지 20여분. 엄마는 1층에 서있었다. 눈물샘은 말라 있었다.

▲ 13살에 뇌종양 수술을 받은 휘수는 엄마를 포근하게 안아줄 정도로 성장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2장. 아들의 상처

“네 머리에 공 던져도 돼?” 중학교 1학년 또래 아이들은 아들에게 툭하면 장난을 걸었다. 빡빡 깎은 머리 탓이었다. 그렇다고 힘을 쓸 수도 없었다. 뇌수술에 항암치료까지 받은 아들은 완력腕力이 셀 리 없었다.

체념하기 힘든 억울함이 솟구쳤지만 아들은 주저앉을 수도, 절망할 수도 없었다. 스스로를 죄인罪人이라 부르는 엄마 앞에선 당당해야 했다. 아이들이 모자를 벗기고, 공을 던진 고약한 날에도 엄마 앞에선 어깨를 폈다.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아들은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짓눌렀다. 옆에는 공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 휘수는 엄마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는 엄마를 더 이상 실망시킬 순 없다”고 말했다. [사진=나휘수 제공]

# 3장. 그날의 이야기❶


몹시 뜨겁고 따끔했다. 사각형 누룽지를 동그랗게 만드는 일은 예민한 작업이었다. “예쁘게 뜯어내야 사람들이 좋아할텐데….”
뇌수술 받은 지 10년이 흐른 2016년 4월. 23살이 된 아들(발달장애ㆍ지적장애 3급)은 장애인보호사업장 ‘샘물자리(지적장애인 36명 근무)’에 취업했다.

샘물자리는 국수·누룽지·현미과자를 생산·판매하는 장애인 재활시설이다. 제빵기능사의 꿈을 키워오던 아들이 원한 곳이었다. 몸은 성치 않았지만 혼자 설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거다. 아들은 과욕을 부렸고, 예민해졌다. 누룽지를 뗄 때 지적장애인 동료들이 농弄을 멈추지 않으면 평정심을 잃었다. 그러다 짜증이 엉키면 목청을 세웠다. “엄마! 내 편이 없어요, 내 편이….” 아들의 잠꼬대가 엄마를 깨운 건 그 무렵이었다.

내심 자립을 바랐던 엄마의 가슴엔 가시가 박혔다. 2016년 11월 어느날, 아들을 불러 앉힌 엄마는 조용히 입을 뗐다. “그만 하자. 아직은 벅찬 모양이구나.”
엄마의 입에선 탄식이 새어나왔고, 아들은 고개를 떨궜다. 집안 벽시계는 세상이 모두 잠든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펐던 그날 엄마도, 아들도 뜬눈이었다.

▲ 어린 시절 휘수는 많은 곡절을 겪었다. 복도에 비친 한줄기 빛이 휘수를 위로하는 듯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 4장. “엄마! 다시 해볼래요”

아들이 샘물자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참에 모든 걸 내려놓으라. 맘이 편해질 거다”고 조언했다. 속 모르는 소리였다. “아픈 아들의 마음을 알아 달라고 바라는 건 욕심 아닐까. 희망을 품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른다.”

엄마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을 만난 아이처럼 막막하고 두려웠다.  “댕댕댕댕댕.” 다음날 새벽 5시. 엄마는 눈을 떴다. 벽시계의 둔탁한 울림 탓이 아니었다.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었다. 잠을 한숨도 못 잤는지 눈동자가 빨갰다.

아들은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다시 해볼래요. 할 수 있어요.”
아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 엄마는 벅차오름을 느꼈고, 눈물을 훔쳤다. 아들은 수줍게 웃었다. 빨간 눈동자에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 휘수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자전거를 탈 때 휘수는 자유로워 보인다. [사진=오상민 작가]

# 5장. 몰래 찾아온 뇌전증

빛날 휘暉, 강 수洙. 이름처럼 빛나는 아이였다. 팔과 다리가 유난히 길어 먼발치에서도 눈에 띄었다. 엄마는 아들을 ‘농구선수’로 키우고 싶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으니, 못 이룰 꿈도 아니었다.

엄마는 강물(洙)처럼 깃든 행복이 좋았다. 섬세한 첫째 아들(화수·28)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얄궂은 인생은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의 가슴에 불행이 꽂힌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1998년 5월, 더위를 품은 바람이 불던 어느날이었다.

“다 왔다, 휘수야. 일어나!” 엄마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곤히 자는 아들을 불렀다.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직후였다. 조용했다. 아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엄마는 섬뜩한 ‘낯섦’과 마주했다. 아들의 입은 힘없이 벌어져 있었고, 반쯤 감긴 눈엔 초점이 없었다.

입 언저리엔 메마른 거품이 붙어 있었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아들을 둘러업고 병원을 향해 뛰었다. 아들의 이곳저곳을 살핀 의사가 말했다. “뇌전증(간질)입니다. 심하진 않아요.” 심하지 않다…, 뒷말이 들릴 리 없었다. 뇌전증이라는 말이 뇌리에 박힐 뿐이었다. 휘수 나이 5살, 엄마와 아들에게 찾아온 첫번째 시련이었다.

▲ 휘수네 가족. 왼쪽부터 엄마, 형, 아빠, 휘수. [사진=나휘수 제공]

# 6장. 나쁜 병, 고약한 삶

불행 중 다행이었다. 뇌전증은 심각하지 않았다. 약을 복용한 뒤에도 1~2초 정신을 잃은 일이 두어번 있었지만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10년여가 흘렀고,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됐다. 훌쩍 큰 키만큼 몸도 튼실해졌다. 말과 행동이 더뎠지만 그만하면 괜찮았다.

병원에서도 좋은 소식만 들려왔다. “이제 약을 끊어도 되겠는데….” 얼음장 같던 의사도 그제야 안심한 듯 농을 툭툭 던졌다. 하지만 뇌전증이 사라질 무렵, 더 무서운 병이 아들을 찾아왔다.

중1 여름방학 기간, 아들이 ‘뇌전증 검사’를 받은 직후였다. “따르릉 따르릉~” 엄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담당 간호사였다. “나트륨 수치가 높게 나왔어요. 재검해야 할 것 같아요.”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트륨 수치? 왜?” 어쩌다 물을 2L 넘게 마시는 아들의 낯선 행동이 떠올랐지만 ‘설마 그 때문이랴’ 싶었다.

“뇌전증 약을 끊을 때가 돼서 그런가?” “혹시 몸에 또 이상이 생겼나?”
얕은 우려와 깊은 걱정이 엄마 속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후자’였다. 아들의 뇌에선 잔인한 병이 자라고 있었다.

▲ 휘수는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브이’자를 그린다. 꿈을 찾은 휘수는 웃음이 많아졌다. [사진=오상민 작가]

# 7장. 뇌가 성장을 멈추다

심상치 않았다. 아들은 제대로 서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없는지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물은 이전보다 더 많이 들이켰다. 재검 결과는 최악이었다. ‘나트륨 수치’가 160을 찍었다. 몸에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수치 145보다 15포인트나 높았다.

병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검사란 검사는 모조리 다했다. 자기공명영상(MRI)도 찍었다. 얼마 후 날벼락 같은 소견이 나왔다.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부위는 더 안 좋았다. 호르몬 분비를 관장하는 뇌하수체 바로 옆에 종양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크기는 3.5㎝에 달했다. 아들이 물을 벌컥벌컥 마신 것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털썩털썩 쓰러진 것도 그 때문(호르몬 분비 이상)이었다.

바람이 조금씩 차지던 2006년 10월, 아들은 차가운 수술방에 들어갔다. 대수술이었다. 비강鼻腔(코안의 빈곳)을 뚫고 수술하겠다는 1차 계획을 접고 머리를 열었다. 12시간의 사투死鬪. 수술은 잘 끝났지만 종양을 뿌리째 제거하는 덴 실패했다. 뇌하수체 탓이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성장은 멈췄다. 뇌는 더 자라지 않았다.

▲ 휘수는 중1 때 뇌수술을 받았다. 뇌종양 뿌리가 뇌하수체 옆에 있었던 탓에 아직도 호르몬 분비가 안 된다. 휘수가 하루에도 물을 2L씩 꼬박꼬박 마셔야 하는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 8장. 공생, 통곡의 벽

그럼에도
: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큰 수술을 받았지만 아들은 꿋꿋했다.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몽땅 빠졌는데도, 학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겠다’ … 이 마음은 휘수에게 본능이 됐다.

정작 문제는 사회의 눈이었다. 어른들은 아들을 아픈 아이로만 봤다. 어떤 엄마는 ‘함께 할 수 없는 아이’라는 주홍글씨를 써댔다. 살아준 것만으로 고마웠던 부모의 가슴엔 대못이 박혔다. “휘수가 고2 때 장애인 등급을 받았어요. 그 이후 학비가 면제됐지만 학교에 후원금으로 냈죠. 그렇게라도 비장애인과 공생共生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편견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장애인 판정을 받은 아들과 장애인 자식을 둔 엄마는 약자弱子였다. 또래 아이들의 괴롭힘, 부모들의 비뚤어진 눈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와 아들은 ‘통곡의 벽’에 갇혔다.

▲ 뇌종양 후유증 탓에 휘수는 매일 호르몬 분비액을 맞아야 한다. 이 분비액의 1병(이틀분) 가격은 3만7000원에 이른다. 하루에 먹어야 할 알약도 수십개다. 약값만 월 15만원에 이른다. [사진=오상민 작가]

# 9장. 그날의 이야기❷

고등학교를 곡절曲折 끝에 졸업한 아들은 또다른 벽을 만났다. ‘뚝 끊긴 길’이었다. 세상에 뻗어 있는 숱한 길 중에 아들에게 허락된 건 없었다. 그럼에도 아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밟을 길은 없었지만 꿈은 있었다. 제빵기능사였다.

하지만 이 길도 녹록지만은 않았다. 꿈을 좇아 김포에 있는 제빵전문학교를 다녔지만 거기까지였다. 제빵기능사의 첫 관문인 필기시험에서부터 아들은 벽에 부닥쳤다. ‘반죽의 마찰계수를 계산하는 공식’ ‘반죽에 사용할 물의 온도를 계산하는 공식’이 나올 정도로 문제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필기시험 합격률도 30%를 밑돌았다.

▲ 휘수는 일주일에 두번씩 심리발달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들은 삶의 좌표를 잃어갔다. 땅을 얻지 못한 씨앗이 말라죽듯 희망도 잃었다. 엄마가 아들을 ‘직업재활센터’에 보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들은 벼랑에 몰렸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년,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국수·누룽지를 만드는 샘물자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직업재활센터 재활사가 묻자 아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손은 희망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은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샘물자리에서 2주 동안 테스트를 마친 후였다.
엄마: “잘 할 수 있겠어?”
아들: “당연하지.”
엄마: “왜 가려 하는데?”
아들: “음식을 만드는 곳이잖아요.”

엄마는 울컥 하는 걸 참았다. 자신은 내팽개쳤던 그 꿈(제빵기능사)을 아들은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6년 4월, 아들은 샘물자리의 훈련생이 됐다. 그토록 바랐던 출근, 아들은 들떴다. 누룽지를 예쁘게 자르고, 누룽지의 원재료인 밥을 짓는 게 아들의 일이었다.

난생처음 아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에게 “나 여기 있어”라고 소리 치고 싶었다. “고약한 친구들이 모자를 맘대로 벗기고, 공을 마구 던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그 아이들에게 ‘나 여기 똑바로 서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 휘수는 수술 후 약 부작용 등으로 급격히 체중이 늘었다.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식단 관리와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체중 조절이 잘 안 된다. [사진=나휘수 제공]

욕심은 화禍를 키웠다. 작업장에서 아이들과 툭하면 언쟁을 벌였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 편을 들지 않는다며 샘물자리 복지사들에게 성을 내기도 했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발달장애 아이에겐 혼란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들이 밤마다 “나는 혼자야”라면서 잠꼬대를 한 건 그 때문이었다. 엄마가 “이젠 그만하자”라며 선을 그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날 밤에도, 그 다음날 밤에도 아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엔 침묵이 흘렀다.

# 10장. 그날 이후의 이야기

“다시 해볼래요. 할 수 있어요.”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아들은 엄마 곁으로 가서 입을 뗐다. 그제야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다, 아들아. 새롭게 시작하자.” 다시 샘물자리로 가기로 한 날. 아들은 자전거를 탔다. 아침 바람을 맞으며 꽉 막혔던 길을 뚫고 싶었다. 엄마도 응원했다. “다른 이를 사랑하고, 이해해라. 그게 뭐든 네가 먼저 바꿔라.”

▲ 휘수가 만든 과자를 손에 든 샘물자리 동료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예민함을 힘껏 억눌렀다. 자신만큼 아픈 아이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감정의 여울’을 막는 법도 터득해 나갔다. 그러자 얼굴이 환해지고, 목표는 더 뚜렷해졌다. “이젠 누룽지와 국수를 포장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김정희 샘물자리 복지사는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포장은 가장 숙련된 근로자가 하는 일이에요. 휘수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얘기죠.” 아들은 두꺼운 벽을 허물고 있었다.

편견偏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그렇다고 난제難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휘수와 샘물자리 아이들이 아무리 힘을 쏟아도 ‘불편한 시선’은 여전하다. ‘장애인이 만드니까…’라는 편견이다. 실제로 샘물자리는 뼈아픈 실패를 맛본 적이 있다. 2014년 2월 샘물자리는 부천시 원미로에 국수판매점 ‘샘물국수’를 열었다.

샘물자리 장애인들이 국수를 직접 만들고 파는 매장이었다. ‘샘물자리 국수맛이 기막히다’는 입소문이 퍼졌던 터라 성공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샘물국수는 2015년 12월 매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하루에 2500원짜리 국수가 많아야 여덟그릇 팔렸으니, 도리가 없었다. “장애인이 만들고 팔아서 망한 것 아닌가”라는 아픈 해석들이 쏟아졌다.

▲ 2014년에 문을 열었던 샘물자리의 국수전문점 ‘샘물국수’는 2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장애인이 만들고 판다’는 콘셉트가 세상에 먹히지 않았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실이라면 너절한 편견의 결과물이다. 발달장애인들은 편법과 잔꾀를 모른다. 휘수만 봐도 그렇다. 잡곡·현미 등이 함유된 밥을 지을 땐 1g의 오차도 내지 않는다. 하물며 걸레도 대충 빨지 않는다. 따뜻한 물에 비누로 세척한 다음 냄새까지 맡는다.

‘장애인이 만들면 미숙하겠지’라는 생각은 공정하지 않다. ‘장애인과 공생할 수 없다’는 생각은 단견短見이다. 문제는 이런 편견과 단견이 사회를 아프게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무릎 꿇는 부모와 “이 지역에서만은 안 된다”며 맞서는 부모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自畵像이다.

임성균 샘물자리 복지사는 “잔잔한 호수의 물방울 하나가 멀리 퍼지듯 장애인 생산품을 대하는 인식이 조금씩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누룽지를 떼던 휘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웃음바다가 일렁였다.

▲ 그날의 작업량을 꼼꼼히 확인하는 휘수. [사진=오상민 작가]

# 11장. 공생, 사회의 몫

장애등급을 받기 직전인 2010년. 고1이던 아들은 어느 재활기관에 다녀온 후 엄마의 도움을 받아 리포트를 작성했다. “독거노인이 재활을 하면서 빵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빵을 파는 매장이 가파른 계단 위에 있었다. 휠체어를 탄 노인은 쉽게 갈 수 없었다. 재활과 계단은 웃지 못할 모순이었다.”

리포트를 꼼꼼하게 읽은 선생님은 아들을 일으켜 세운 뒤 학생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걸 휘수가 발견해냈다. 박수쳐 주자.” 그래, 사람은 다르기에 특별하다. 비장애인이 포착하지 못하는 걸 장애인이 보거나 느낄 수도 있다. 그 능력을 보듬는 건 사회의 몫이자 공생의 과정이다.

▲ 휘수는 밥을 미리 짓지 않는다. 귀찮더라도 주문이 들어온 뒤에야 만든다. 휘수만의 원칙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들은 요즘 책을 부쩍 많이 읽는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제빵기능사 필기시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잠시 잃었던 삶의 좌표를 다시 찾은 셈이다. 아들은 또박또박 말했다. “한번 해볼 거예요.” 그날 따라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휘수의 자전거가 바람을 뚫고 거침없이 내달렸다. 먼지가 사라지자 길이 나타났다. 희망이 싹텄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 휘수는 소탈하고 엄마는 깐깐하다. 엄마는 “사람 좋아하는 건 아빠를 꼭 닮았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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