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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역사와 기술, ‘가치’ 만들다사장님차 그랜저 어떻게 국민차 됐나
[266호] 2017년 12월 05일 (화) 16:12:01
김다린 기자 quill@thescoop.co.kr

국민차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쏘나타다. 도로 위에서 가장 찾기 쉬운 모델 역시 쏘나타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른 모델도 눈에 띈다. 고급차의 대명사로 통하던 그랜저다. 그럴 만 하다.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쏘나타, 아반떼를 따돌리고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비결이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랜저 광풍의 이유를 분석했다.

   
▲ 그랜저가 올해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줄곧 판매량 1위를 지켰다.[사진=뉴시스]

2016년 11월 2일, ‘그랜저IG’의 사전계약 접수창구가 열렸다. 아직 베일에 덮인 차에 하루 동안 1만5973대의 도장이 찍혔다. 놀라운 기록이었다. 사전계약 첫날 최대 실적 기록을 세웠던 YF쏘나타(2009년 9월)의 1만827대를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전계약 수치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충분히 흥행을 점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실제로 그랜저IG는 출시 한달간 총 1만3833대를 팔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팔린 승용차가 총 14만1802대다. 10대 중 1대는 그랜저IG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업계는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신차新車 효과가 통했을 뿐이라며 깎아내렸다. 1월(9414대), 2월(9990대)에도 좋은 성적표가 이어졌지만 시큰둥했다. 신차 약발이 3개월은 간다는 분석에서였다. 2014년 나온 LF쏘나타가 그랬다. 출시 첫달 1만5000대를 팔았지만 4개월 차에 접어들자 판매량이 1만대 이하로 뚝 떨어졌다.

사실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그랜저 역시 LF쏘나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았다. 되레 더 빠른 추락을 예상하는 전문가도 많았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랜저가 준대형급 고급차였기 때문이다.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가솔린 3.0모델의 경우 기본 트림 가격이 35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성적 유지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었다. 그랜저가 출시될 무렵, 한국 자동차 시장은 ‘부진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2017년 자동차 시장 규모를 전년보다 2.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을 정도다.

더구나 2017년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이 마이너스로 돌아가는 첫해였다. 과거 일본에서도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가계 소비가 가파르게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랜저가 대박을 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낮았다.

   
 

2017년을 접수한 그랜저

그런데 ‘반전의 종’이 울렸다. 신차효과가 끝날 거라 봤던 2017년 3월, 그랜저IG는 업계 관계자들마저 놀랄 만한 판매량인 1만3306대를 기록했다. 출시 초반보다 반등한 판매량이었는데, 기세는 4월(1만2548대), 5월(1만2595대), 6월(1만2665대)에도 이어졌다. 8월과 10월 주춤하긴 했지만 그랜저는 2017년 거의 모든 달에 1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나라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아반떼(9만3804대)였다”면서 “그랜저는 이 판매기록을 3분기만에 깼다”고 말했다.

월간 1만대 판매량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월 전체 판매량이 15만대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수입차 브랜드 판매량을 다 합쳐도 월 2만대를 넘지 못하는 게 한국시장이다.

비싼 대형차가 판매량 1위를 1년간 유지한 것도 놀라운 기록이다. 2017년 한해 아반떼ㆍ쏘나타ㆍ쏘렌토 등이 2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했을 뿐 1위는 늘 그랜저의 몫이었다.

그랜저 광풍을 보는 전문가들은 당황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싼 대형차가 판매량 1위를 1년간 유지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그랜저의 이전 세대 역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시장 전체를 휘어잡은 적은 없었다.”

그랜저의 유례없는 빅히트를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많은 전문가는 ‘그랜저의 이름값’을 첫번째 요인으로 꼽는다. 그랜저는 국내차를 대표하는 장수브랜드 중 하나다. 1986년 출시된 이 차의 역사는 코란도, 쏘나타에 이어 3번째로 길다.

물론 긴 세월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던 건 아니다. 출시 이후 1990년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고급차였지만 고급 세단시장이 치열해지면서 1등 자리를 ‘에쿠스(1999년 출시)’에 넘겨줬다. 그 이후엔 제네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에도 밀렸다.

그럼에도 그랜저의 가치는 깎이지 않았다. 그랜저IG가 출시와 동시에 택시 모델을 선보였음에도 ‘프리미엄 이미지’는 반감되지 않았다. 30년이 넘는 시간 그랜저가 쌓아온 역사에 기술력을 더한 결과였다.

실제로 그랜저에는 현대차 최고의 기술이 탑재되곤 했다. 그랜저IG가 신통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유다. 고속도로에서 차간 거리 및 차선 유지는 물론, 전방 차량 정차시 자동 정지하고 재출발한다. 내비게이션 정보에 따른 제한 속도 구간별 속도 조절까지 가능하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몇 초간은 차량이 스스로 주행을 하기 때문에 반半자율주행 시스템으로도 불린다.

   
 

그랜저 30년의 변신

세대를 거칠수록 수요층을 젊게 만든 점도 그랜저의 장기흥행을 부추겼다. 확연히 젊어진 디자인에 엔진 다운사이징 등이 엮이면서 그랜저를 선호하는 젊은층이 늘어났다. 고급 세단이 신경쓰지 않던 ‘효율성’도 따졌다. 현대차는 올해 6월 연료 효율성이 높은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추가로 내놓았다. 이 모델은 L당 16.2㎞를 달릴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한때 위용과 권위의 상징이던 그랜저가 젊은 감각의 고급 세단으로 탈바꿈한 덕에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 속에서도 히트를 쳤다”면서 “당장 그랜저를 뛰어넘을 신차가 없다는 점에서 흥행은 좀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랜저의 이례적인 흥행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역사는 가치를 쌓았고, 기술력은 가치를 더했다. 한때 ‘사장님 차’로 불렸던 그랜저는 그렇게 ‘국민차’가 됐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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