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이상한 출자전환

부실 탓에 주식거래가 중지됐던 대우조선해양.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자들은 부심腐心 끝에 출자전환에 합의했고, 높은 기준가격으로 신주를 받았다.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식이 거래되면서 터졌다. 주식 값어치가 뚝 떨어졌고, 채권단에는 1조5000억원에 이르는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한편에선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혈세까지 쏟아부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의 묘한 출자전환을 단독 취재했다.

▲ 이번에도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을 위해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은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사진=뉴시스]

3조3777억원. 올해 대우조선해양이 세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다. 코스피 상장사 중 가장 큰 규모다. 코스피 시장의 전체 유상증자 발행금액 중에서도 약 38%를 차지했다. 12월 21일에는 816억원 규모의 추가 유상증자가 예정돼 있어, 그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열악한 재무구조로 골머리를 앓던 대우조선해양으로선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상황은 다르다. 새로 발행한 주식값이 매겨지자마자 그 가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 탓이다. 한순간에 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 중에는 하나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KDB산업은행이 포함돼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대우조선해양의 유상증자를 추진한 건 지난 4월이었다. 법정관리나 다름없는 P플랜(프리패키지플랜) 돌입을 앞두고 있던 대우조선해양은 채권은행과 사채권자의 채무재조정안 합의를 통해 간신히 호흡기를 붙였다.

채무재조정안의 골자는 이랬다. ▲산은이 보유한 무담보채권 100% 출자전환 ▲채권은행(하나ㆍ우리ㆍ국민ㆍ신한)의 무담보채권 80% 출자전환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1조3000억원 규모의 무담보차입금을 영구전환사채로 전환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와 기업어음(CP)에 투자한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는 보유액의 50% 출자전환 등. 쉽게 말해, 대우조선해양이 채권단에 줘야 할 돈을 새로 찍어낸 주식으로 대신 주겠다는 안이었다.

채무재조정안은 순조롭게 이행됐다. 채무재조정안 합의가 있기 전인 1월 18일(신주권 상장일 기준) 진행된 첫번째 유상증자를 포함해 총 세차례(7월 20일ㆍ8월 31일)에 걸친 유상증자가 제3자 배정방식(출자전환)을 통해 이뤄졌다.


문제는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주식매매거래가 정지된 탓에 신주발행가의 근거(기준주가)를 산정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점이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채권단은 합의점을 마련했다. 주식거래가 정지되기 전날인 2016년 7월 14일 종가 4480원에 이후 실시된 무상감자 배수(10배)를 적용, 기준주가를 4만4800원으로 정했다. 여기에 10%의 할인율을 적용해 최종 발행가액은 4만350원이 됐다.

이 발행가액을 적용한 세차례 유상증자에서 산은(2조1048억원), 하나은행(3638억원), 우리은행(800억원), 국민은행(800억원), 회사채 투자자(6518억원), CP 투자자(973억원)는 새 주식을 배정 받았다. 신한은행은 12월 21일 640억원 상당의 주식을 받을 예정이다.

거래 재개되자 값어치 ‘뚝’

논란의 불씨는 10월 30일 대우조선해양의 주식거래가 재개되면서 붙었다. 주식시장에 다시 이름을 올린 대우조선해양의 주식가격은 2만2400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채권단이 신주를 사들인 4만350원에 한참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채권단으로선 1주당 1만7950원의 평가손실을 입은 셈이었다. 전체 평가손실액은 1조5026억원이었다. 당연히 “채권단이 미래를 잘못 예측해 대우조선해양의 신주발행가격을 4만350원으로 결정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유상증자 과정을 꿰뚫고 있던 전문가들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다.” 투자컨설팅업체 오즈스톡의 조민규 대표는 “매매가 정지됐던 주식거래가 재개될 때는 신규 상장할 때 공모해서 신주를 상장하는 것과 같다”면서 “기업의 상태에 따라 기존 가격의 -50%~150%에서 시초가가 결정되는데, 대우조선해양은 부실 정도가 컸기 때문에 -50%에서 주가가 결정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진명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가거래 재개가 결정되기 전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기준주가가 과도한 밸류에이션을 받았다는 분석을 내린 바 있다. “어떤 접근법을 적용해도 대우조선해양의 기준주가였던 4만4800원은 업종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을 크게 상회했다. 가장 합리적인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2만6000원 정도가 적절하다.”

채권단은 어떤 입장일까.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시초가가 -50%가 적용돼 2만원대로 시작할 것이란 건 예상했던 결과였다”면서도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주식거래를 재개해야 한다는 게 당시의 여론이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출자전환을 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모든 주식들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선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신주발행의 기준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출자전환에 응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채무재조정안 합의가 이뤄질 당시 일부 채권자는 과하게 높게 설정된 출자전환 발행가액에 반발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겠다는 ‘대의’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이 반등에 성공해 지금의 평가손실이 회복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부실기업 대우조선을 회생하는 데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이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국책은행인 산은은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산은은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 게 피치 못할 일이었다고 해도 그 과정을 잘 살폈어야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반등하지 못한다면 산은이 이렇게 큰 손실을 어떻게 메울지 궁금하다. 이는 또다른 뇌관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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