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❻

로저 페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서방세계를 향한 이슬람의 무차별적인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에 투입된 CIA 정예요원이다. 적진 한가운데 투입된 페리스는 이슬람의 문화에 ‘유창(Fluent)’하다. ‘문화적 유창성(Cultural fluency)’은 분명 현장요원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 요소이지만, 현장요원 페리스에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대테러 요원이라면 이슬람의 모든 것을 적대적으로 봐야 한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은 비인간이거나 악령으로 보여야한다. 그래야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페리스 요원은 이슬람 문화에 ‘유창’하다. 어쩌면 지나치게 유창한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언어와 관습을 모두 이해한다. 그들이 서방세계와 기독교에 품고 있는 원한과 적개심의 이유, 그 뿌리까지 이해한다. 그들이 악령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정보수집을 위해 이용하는 현지 무슬림 ‘정보원’의 생명도 똑같은 인간의 귀한 생명으로 여긴다. 작전을 위해 미끼로 이용하는 요르단 사업가 사디키의 목숨만이라도 보존해주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휴머니즘’을 발휘한다. 모두 CIA 현장요원답지 않은 모습이다. 적敵의 문화에 유창하다는 것은 이처럼 혼란스럽고 위험하다.
 
▲ 이슬람 문화를 이해한 페리스 요원은 그로 인해 함정에 빠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슬람에 맞서는 ‘기독교의 전사戰士’ 페리스는 요르단의 여의사 아이샤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슬람 문화에 유창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구 문화에 나름대로 유창한 아이샤도 페리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서로의 문화에 유창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샤는 언니 집의 식사에 페리스를 초대한다. 서구 문화에 유창하지 못한 아이샤의 언니는 페리스가 거북하고 두렵기만하다. 아이샤에 대한 페리스의 연정은 페리스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건腱’이 되고 적들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오래전 ‘만나면 좋은 친구’로 시작했던 모 방송사의 로고송은 퍽 호소력있게 들렸다. ‘나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아니다’라는 말도 흔히 듣는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페리스나 아이샤 모두 만나면 좋은 친구이고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문화에 유창하게 되면 그들이 나의 적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나의 적이라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좀처럼 적개심이 불타오르지 않는다. 많은 경우 양비론兩非論이나 양시론兩是論으로 기울기도 한다. 믿을 수 없다면 그들의 신도 나의 신도 똑같이 믿을 수 없는 것이고, 믿을 수 있다면 나의 신을 믿을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신도 믿을 수 있는 신일 뿐이다. 
 
2000년 전 라틴신학의 아버지로 불렸던 카르타고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그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Certum est, quia impossibile)”는 묘한 신앙고백을 남긴다. ‘믿음’이란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은 이성을 초월한다. 우리는 검증된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되고(Absurdum) 불가능한(Impossibile)’ 것일지라도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 것일 뿐이다. 때로는 나의 적은 ‘악령’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들이 악령이라는 객관적 증거가 없어도 그들의 악마성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 악마가 없다면 신의 존재도 필요치 않기 때문에 악마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 나의 적을 잃어버리면 나의 존재의미도 사라지기 때문에 상대를 악령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 고르바초프는“미국이 두려워하는 건 소련이 사라지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사진=뉴시스]
‘빨갱이 타령’으로 먹고사는 보수는 빨갱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거나 빨갱이도 악마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들의 존재 의미도 사라진다. 그들에게 빨갱이는 가장 훌륭한 동업자일 뿐이다. 1980년대 소련연방이 해체되는 혼란과 위기 속에서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을 향해 심오한 협박을 한다. “소련이 미국에 맞서기 위해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핵무기가 아니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 다문화 시대, 그리고 다양성의 시대에 우리 모두 ‘문화적 유창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적 유창성’을 두려워하고 나의 ‘믿음’에 더욱 집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적을 이해하고 그들을 더이상 증오하지 않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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