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제 인 제주’ 사건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에는 ‘파우제 인 제주(PAUSE IN JEJU)’라는 도시형생활주택이 있다. 하지만 개별 호실마다 전기 계량기가 없었다. 주택으로서의 요건을 다 갖추지 못한 거다. 그럼에도 서귀포시는 사용승인을 내줬다. 서귀포시는 ‘실수’라고 설명했다. 그 실수 하나로 수많은 소유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서귀포시는 세금만 챙긴다. 이게 무슨 일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취재했다.

▲ 위탁운영 방식으로 운영하는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제주도가 ‘분양형 호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행사이자 분양대행사이기도 한 임대관리사업자(운영업자)와 임대인(수분양자) 사이의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가파르게 줄면서 운영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어서다.

분양형 호텔은 2014년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가 늘어나는 유커를 잡기 위해 호텔 공급 확대책을 폈기 때문이었는데, 그 중심에 제주도가 있었다. 당시 제주도 내에서 분양된 호텔 객실수는 5092실로, 2011년(257실)보다 19.8배 늘었다. 제주도 내 분양형 호텔 객실수(2015년 4월말 기준)도 8615실로 1위였고, 서울(2959실)의 2.9배에 달했다.

하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 최근의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보복조치 등으로 유커가 줄면서 수익이 쪼그라들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분양형 호텔 운영업자와 수분양자는 갈등을 겪었고, ‘고수익 보장’이라는 수분양자들의 환상도 깨졌다. 과거 분양형 호텔 투자를 집중 홍보했던 언론 기사도 이제는 ‘투자주의보’로 전환한 상태다. 제주도에 있는 도시형생활주택 ‘파우제 인 제주(PAUSE IN JEJU)’ 사건은 대표적 사례다.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분명 주택을 분양받았는데 주택이 아니다. 개별 세대마다 있어야 할 전기ㆍ수도 계량기가 없다. 상가동 건물을 통해서만 전기와 수도를 공급받는 구조다. 내장된 시스템 에어컨 실외기는 일부 세대와 공용으로 쓴다. 세대별 전기ㆍ수도 사용량 측정이 안 된다. 수분양자들과 임대관리계약을 맺은 운영업자는 이 주택을 ‘숙박시설’로 활용했다. 애초에 공동주택으로 사용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숙박시설로 사용하는 건 불법이다.”

그렇다면 이 기묘하면서도 불ㆍ편법 덩어리인 ‘파우제 인 제주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 답은 제주 서귀포시와 한국전력 서귀포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10월 A시행사(대표이사 최모씨)는 총 376세대의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공동주택)을 분양했다. 4개 단지가 기본 구성이었다. 2개 단지는 총 17개동의 공동주택, 2개 단지는 근린생활시설(상가동)이었다.

‘파우제 인 제주’의 정체성은 위탁운영 계약을 통한 ‘수익형 부동산’이었다. 분양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먼저 위탁운영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수분양자가 소유하기 싫다고 하면 분양금을 전액 환불해주기로 보장했다(분양금 환불 보장증서). 10년간 실투자금액 기준 연 11%의 확정수익 지급을 보증하는 것은 물론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내준다고 홍보했다. 여기에 ‘2인 제주 왕복항권권 연 2회 지급’ ‘제주 골프장 이용’ ‘연 4시간 고급 요트 무료 이용’ 등을 내걸었다. 모두 성수기를 포함한 특전이었다. 그 덕분에 분양은 순조롭게 끝났다.

약속은 지켜졌을까. 아니다. A시행사의 대표가 설립한 ‘리츠파우제’라는 운영업체에서 위탁운영을 맡았는데,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수익금은 2015년 9월부터 2017년 11월 현재까지 단 2차례만 지급했다. 수익금만 안 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중도금 대출금 이자 지급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수분양자들은 리츠파우제가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약 1억원의 전기료를 체납한 탓에 한국전력 서귀포지사로부터 단전 통보까지 받은 상태다. 수분양자 입장에선 입주를 할 수도, 임대를 해줄 수도 없는 처지다. 수익은커녕 손해만 불어난 셈이다.

발단은 서귀포시, 책임은 안 져

그러자 수분양자들은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분양받은 부동산이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자신들이 분양받은 공동주택과는 별개인 상가동에서 전기와 수도가 중앙집중식으로 공급됐고, 개별 전기ㆍ수도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는 계량기는 아예 없었다. 세대별로 시스템 에어컨이 있었지만 실외기는 몇세대씩 묶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었다. 냉ㆍ온수 조절기 역시 개별 통제를 할 수 없어 이 장치를 사용하는 데 쓰인 전기량을 확인할 수도 없다.

정석원 건축사는 “전기나 수도가 중앙집중식으로 돼 있다든지, 사용승인 후에 설치할 수도 있는 실외기가 공동으로 설치돼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애초부터 숙박시설로 쓰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개별 호실에서 전기나 수도를 통제해야 주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없었다는 점에서 주택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는 설계의 문제이고, 설계는 시행사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바꿔 말하면, 시행사는 ‘파우제 인 제주’를 도시형생활주택이 아니라 숙박시설로 염두에 두고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눈으로 개별 계량기만 살펴봐도 건물의 하자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서귀포시는 공동주택으로 사용승인을 내줬다는 점이다. “사용승인 당시 현장 확인을 했느냐”는 물음에 서귀포시 관계자는 “사용승인을 내줄 당시 감리자와 함께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답사했다”면서 “하지만 개별 호실을 다 둘러볼 수는 없었고, 그러다보니 놓친 부분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감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상황에서 어떤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서귀포시 내부감사기관에서 감리에 관한 내용을 따로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리츠파우제 측에는 시정명령을 해 현재 개별 계량기를 방마다 설치한 상태다. 특히 리츠파우제 측에 공동주택을 숙박시설로 불법 운영한 것과 관련해 1억원가량의 이행강제금을 물리고, 리츠파우제가 보유한 부동산을 압류한 상태다. 일부 시설물을 불법용도 변경한 사실은 경찰에 고발조치 했다. 또한 애초 사용승인 목적에 맞는 설비를 갖추도록 두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했다. 2018년 3월까지 이행하겠다는 계획서를 받았고 이행을 독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치들은 묘하다. 서귀포시가 사용승인 감리를 제대로 봤다면 이렇게 이상한 건물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한전의 단전 조치도 피할 수 있었을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인 서귀포시는 1억원가량의 이행강제금을 챙긴다. 잘못에 대한 조치는 담당 공무원과 감리업체에만 이뤄지고 있다. 그사이, 수분양자들은 ‘리츠파우제’의 불법행위로 여전히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

한 수분양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서귀포시는 수분양자들이 시설 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건물 도면이나 시방서, 건축 인허가 관련 서류 등을 요구할 때 제대로 된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지 않았으면서 잘못이 없는 척 한다.”

불법 알고도 눈 감은 한전

서울의 한 분양형 호텔을 운영하는 B씨는 “서울에서 사용승인을 받는 절차는 굉장히 까다롭다”면서 “저런 상태에서 사용승인이 났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저런 실수를 했다면 담당 공무원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우제 인 제주’ 사건을 막을 방법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수분양자는 “한전 서귀포지사가 약간의 준법정신만 발휘했다면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무슨 얘기일까.

‘파우제 인 제주’는 서귀포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을 때도 공동주택이었다. 따라서 전기 설비공사를 할 때 공동주택에 들어갈 전기와 근린생활시설에 들어갈 전기를 구분해야 했다. 하지만 한전 서귀포지사는 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한전 서귀포지사 지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기 공급방식이나 종류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시행사 측과 수시로 논의했다. ‘파우제 인 제주’엔 근린생활시설을 통해 통으로 전기가 들어가고 공동주택 쪽으로 배분된다. 하지만 공동주택으로 돼 있다고 해서 무조건 주택용 요금을 적용하지도 않는다. 오피스텔이라고 해도 실제 사용자가 주택용으로 쓰면 주택용 요금이 적용한다. 실사용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파우제 인 제주’는 애초부터 주택용으로 쓸 전기가 아니었다.”

한전 서귀포지사는 ‘파우제 인 제주’가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전기료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불법을 방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방관은 현재 ‘파우제 인 제주’의 연체 전기료 부담 문제로 이어지고 있고, 한전 서귀포지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파우제 인 제주는 제주 분양형 호텔의 불편한 민낯을 담고 있다. 주택으로 승인 받았지만 주택으로 사용되지 않고, 피해자가 발생했다. 관할 지자체가 제대로 감리를 했거나 한전이 전기 공급방식을 유심히 확인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자체와 한전은 현장을 외면했고, 사건이 터졌다. 피해를 입은 수분양자들은 고래싸움에 낀 새우처럼 하소연할 곳도 없다.

한 수분양자는 이렇게 말했다. “수익금을 못 받고, 대출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까지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집을 내 집처럼 사용할 수조차 없다는 건 말도 안된다. 리츠파우제가 시설 복구를 언제 완료할지도 막막하다. 게다가 실수는 지자체가 했는데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하나. 황당하기 짝이 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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