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와 연기금 독립문제

집사執事(스튜어드)가 집안 일을 잘 돌보는 건 당연하다. 이런 면에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고객을 위한 행동지침을 명기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도입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도입 과정이 순탄치 않다. 기관투자자 중 대표격인 국민연금이 ‘정치적 입김’을 의식해 행동한다면 득보단 실이 많을 게 뻔해서다. 벌써 우려할 만한 사건도 터졌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생뚱맞게도 ‘연기금 독립문제’가 덧붙여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얼 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스튜어드십 코드와 연기감 독립문제를 취재했다.

▲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취약한 지배구조, 낮은 배당 등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해소돼 한국 자본시장이 재평가 받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정부의 입김이 강해질 경우 ‘연금 사회주의’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향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일 열린 ‘2017년도 제7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투자회사 가치 향상을 추구하고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남아 있어 시행은 내년 하반기쯤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스튜어드십 코드가 뭐기에 이리도 난리법석일까. 일단 쉽게 풀어보자. 스튜어드(steward)는 주인 가까이에서 집안 일을 돌보는 집사執事를 뜻한다. 여기서 주인은 고객, 집사는 고객돈을 관리하는 기관투자자다. 이를테면, 집사가 고객의 돈을 잘 관리하는 행동지침이 스튜어드십 코드고, 이를 통해 고객 권리를 지켜내겠다는 게 취지다.

얼핏 보면 논란이 일어난 이유가 없다. 집사가 집안을 잘 관리하듯, 기관투자자가 고객돈을 투명하게 다루는 건 의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왜 논란의 복판에 선 걸까. 이 질문은 국민연금의 행보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에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 도입된 건 지난해 12월 19일의 일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첫 기업(JKL파트너스)은 지난 5월에야 등장했을 정도다. 시장의 눈이 국민연금으로 쏠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기관투자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움직여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물결이 일어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53개 기업에 10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이하 2016년 말 기준).

이 중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276곳에 이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초기부터 국민연금의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몰렸다”면서 “우리나라보다 2년 앞서 이 코드를 도입한 일본도 일본공적연금(GPIF)이 움직인 2015년 이후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정작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을 공식화하자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보수적 경제관으로 무장한 시장주의자들이 반발했다. “연기금을 앞세워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하려는 ‘반反시장 정책’이다.”

격한 주장이지만 설득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에 얼룩진 건 한두번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합병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M&A 사건(2015년)에 국민연금이 연루된 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연금은 당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독대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구속됐고, 2심까지 유죄를 받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성향이 다른 입김 의혹이 터졌다. 11월 20일 열린 KB금융그룹 임시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노조가 ‘주주 제안’ 방식으로 상정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이 노조의 안건에 손을 들어준 건데,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엔 흔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의결권행사지침에 따른 결정으로 어떤 간섭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반론도 나온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성명을 통해 “경우에 따라서는 기관투자자가 회사경영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KB금융 노조 추천이사 선임 찬성은 국민연금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논란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민영화 논쟁으로 이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면 연기금부터 독립시켜 정부의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완진 한국외대(법학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하면 기업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가 독립적인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의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용역 연구를 맡은 고려대 산학연구팀은 주주권행사와 책임투자에 관련한 사항을 국민연금의 의결권전문위원회를 확대한 수탁자책임위원회(가칭)에 위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탁자책임 이행 관련 정책과 내역을 공개해 외부의 감시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단체의 주장도 다르지 않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국민연금을 당장 민영화하는 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기금운영본부를 독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긍정적인 제도다. 하지만 정권의 입김에 따라 결정이 흔들린다면 득보단 실이 많을 게 분명하다.

정권이 바뀌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정체성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예컨대, 진보정권에선 노조편에, 보수정권에선 기업편에 서듯 말이다. 중요한 건 제도의 장점이 아니라 어떻게 운영하느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로에 섰고, 국민연금은 도마에 올랐다. 현명한 대책이 필요할 때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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