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독립성 괜찮나

“연금 사회주의가 우려된다.”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 노동조합 추천 이사 선임에 찬성표를 던지자 보수단체와 재계가 반발했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과거에도 이런 논란은 계속됐다. 친기업 성향의 정권에선 국민연금이 ‘기업 거수기’ ‘재벌 편들기’ 역할만 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연금이 외부 입김에 흔들리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독립성이 결여된 국민연금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 국민연금이 기업과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어떤 의견을 내놓느냐는 늘 시장의 관심 대상이다. 운용자산 612조원에 달하는 주식투자 ‘큰손’의 행보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환영받을 만하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면 투자자의 이익을 대변한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커지기 전 시장을 놀라게 한 일이 발생했다. 국민연금이 11월 17일 KB금융그룹 임시주주총회를 3일 앞두고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가 상정한 또 다른 사안인 ‘지주 대표이사의 이사회 내 소위원회 배제’ 안건에 반대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하면서 정부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새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노동이사제 도입과 KB금융의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안이 묘하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새 정부의 노동 친화정책을 의식해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지침에 따라 판단한 사안”이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걷히지 않았다. 여기에 내년 하반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예고하면서 ‘연금 사회주의’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의결권 행사에 정부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친親기업 성향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는 달랐을까. 당시 국민연금에는 ‘기업 거수기’란 오명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보유하고도 주주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주주총회 의결권 반대 비중은 10% 불과했다. 기업이 제기한 안건 10건 중 9건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 비중은 20007년 5.0%에서 2011년 7.0%로 증가세를 보였다.

2012년에는 상법 개정과 관련한 정관 변경 반대 안건이 크게 증가하면서 반대 비중이 17%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 비중은 2013년 10.8%, 2014년 9.0%, 2015년 10.1% 2016년 10% 등 비슷비슷 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재벌 대기업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3월 23일 롯데쇼핑 정기주주 총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당시)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신 회장은 16개 계열사, 신 이사장은 12개 계열사에서 각각 임원으로 재직해 겸직 과다에 해당했지만 아무런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

국민연금 정부 입김 닿나

2012년 2월 13일 열린 하이닉스반도체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하이닉스이사 선임 안건에 중립 결정을 내리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최 회장은 450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주주가치 훼손 측면에서 반대 의사표를 던져야 했지만 국민연금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최 회장은 이날 주총에서 찬성 48.10 %, 반대 19.71%로 찬성표가 절반을 넘어 이사에 선임됐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중립결정에 반발한 의결권행사전문위원 2명이 사퇴하면서 적지 않은 내홍을 겪었다.

 

이런 기조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국민연금의 주주로서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면서 까지 합병에 찬성해 삼성의 기업 승계를 도와줬다는 의혹을 받아서다. 이런 의혹은 합병 찬성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실이 됐다.

올 2월에는 현대중공업 경영세습 지원 논란을 일으켰다. 국민연금이 현대중공업의 ‘회사 분할 계획서 승인’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등 4개 법인으로 쪼개졌다.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세우고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정문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데 있다. 회사를 분할하면서 정 이사장이 보유한 자사주 비율만큼 현대로보틱스의 신주를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10.15%였던 정 이사장의 현대로보틱스 지분율은 25.80%로 증가했다. 국민연금의 분할 찬성이 대주주의 지배력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의결권 행사가 실질적인 주인인 연금가입자의 이익보다 기업이나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어서다. 더 큰 문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에도 이런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의결권 행사에 나선 적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여전한 재벌 거수기 논란

그는 “정권이 바뀌고 기조가 달라지면 스튜어드십 코드도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의결권 행사에 독립성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권과 기업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구창우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칙과 이행지침은 외부의 영향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며 “의결권 행사를 위한 구체적인 방침과 방안을 세워 외부의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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