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AI 스피커에 숨은 문제들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이렇게 말만 하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줘.” 간단한 음성명령만으로 뉴스와 날씨도 알려준다. 최근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이 출시하는 인공지능(AI) 스피커 얘기다. 신통한 기기이긴 한데, 판매원이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매달 요금제를 내야 한다고 해도 사겠습니까?” 더스쿠프(The SCOOP)가 AI 스피커에 숨은 문제점을 짚어봤다.

▲ 음악 감상이나 라디오 청취에 활용되던 스피커가 음성인식 기술과 만나 진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영화 ‘그녀(Her)’에 등장하는 사만다는 사람이 아니다. 운영체제(OS)다. 그런데도 주인공이자 사람인 테오도르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줬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최근 뜨는 AI 스피커를 보면 사만다가 떠오른다. 이제 스피커는 단순히 소리를 전달하는 가전기기가 아니다. 음성인식 기술과 빅데이터, AI 기술을 접목한 스피커는 놀라운 첨단기기로 거듭났다. AI 스피커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사용자와 음성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핵심인 스마트홈에서도 핵심 역할을 한다. 스마트홈은 집 안 각종 가전제품, 수도, 전기사용량 등을 통신에 연결해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는 집을 말한다. AI 스피커를 활용하면 손을 이용하지 않고도 편하게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AI 스피커 시장을 선도하는 건 IT 공룡들이다. 만만치 않은 기술력이 필요하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경쟁도 뜨겁다. 해외에선 구글이 ‘구글홈’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AI 서비스 알렉사를 탑재한 스피커 ‘에코’를 출시한 아마존은 AI 스피커 시장의 선두주자다.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업체도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애플 역시 곧 신제품을 내놓고 시장에 발을 들일 계획이다.

 


한국 역시 IT 기업을 중심으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스타트를 끊은 건 SK텔레콤이다. 지난해 9월 국내 기업으론 최초로 AI 스피커 ‘누구’를 선보였다. 우리나라 양대 인터넷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와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올해 5월 ‘웨이브’를, 카카오는 9월 ‘카카오미니’를 각각 내놓았다. ‘T맵(누구)’ ‘포털검색(웨이브)’ ‘카카오톡(카카오미니)’ 등 스피커가 내세우는 핵심 콘텐트도 제각각이다.

최근 나온 KT의 ‘기가지니LTE’는 더 놀랍다. 기존 AI 스피커는 거실에만 묶여 있었다. 휴대용 AI 스피커를 쓸 때도 주변 와이파이존을 찾거나 모바일 핫스팟 기능을 사용해야 했다. 기가지니LTE는 다르다. 전원 버튼만 누르면 된다. 이름처럼 AI 스피커에 LTE 기능을 넣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LTE 전국망이 구축된 한국에선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 KT도 ‘세계 최초 LTE AI 스피커’란 점을 강조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교감이 가능하던’ 영화 속 사만다가 떠오르는 기능이다.

그런데 이 신통한 기능이 되레 AI 스피커 시장에 무거운 과제를 안겨줬다는 의견이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언제 어디서든 AI 스피커가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난다. 데이터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는 점이다.”

거실 차지한 AI 스피커

기가지니LTE는 기기값만 내는 다른 AI 스피커와는 다르다. 통신요금을 낸다. 월 1만1000원을 내야 하는 ‘데이터투게더Large’ 요금제는 1GB의 용량을 준다. 음성(1초당 1.98원)과 문자(건당 22원)는 종량 요율로 과금된다. 월 1만6500원(10GB 제공), 월 2만4200원(20GB 제공)의 ‘스마트 디바이스’ 요금제도 있다. 요금제 가입에 따른 ‘공시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 요금제랑 판박이다. 앞으로도 이동성을 강조하는 AI 스피커는 기가지니LTE의 방식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매달 요금을 꾸준히 낼만큼 AI 스피커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속 사만다처럼 매력적이지 않아서다. AI 스피커와의 의사소통은 아직 단순한 문답에 그치고 있다. 가령 ‘오늘 날씨를 알려줄래?’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줄래?’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스피커가 이를 이해해 날씨 정보를 사용자에게 음성으로 알려주거나 노래를 틀어주는 식이다. 현재 AI 스피커를 쓰는 사람들의 이용 패턴이 비슷한 이유다. 다른 기능의 이용 빈도는 현격히 떨어진다.

IT 업계 관계자들은 “딥러닝을 통해 쌓이는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도 함께 늘어난다”며 반론을 펼친다. 하지만 현재로선 뛰어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AI 스피커는 인간의 자연어를 인식할 수는 있지만, 하나의 ‘명령어’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친다. 감정을 기반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KT 기가지니LTE를 두고 “1만1000원 이상의 요금을 내야 할 만큼의 기술력인가”라는 반문이 쏟아지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가 기를 쓰고 없애려다 실패한 가계통신비 기본요금이 1만1000원이다. 통신 요금제, AI 스피커가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難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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