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인셉션 ❶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Inception•2010)’은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The Matrix1999)’와 묘하게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두 영화 모두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애매하고, 서로 어지럽게 뒤엉켜 혼란스럽다. 그러나 매트릭스의 가상세계가 인간이 창조한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창출한 공간이라면, 인셉션의 가상세계는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간의 ‘무의식(Subconsciousness)’이 곧 영화의 제목인 ‘인셉션(Inceptionㆍ모든 일의 시초)’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현실’로 인정하는 모든 의식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결국 우리의 모든 의식과 그에 따르는 판단과 행동은 대단히 ‘뜬금없는’ 무의식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과연 그토록 확실하고 믿을 만한 것일까.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문득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을 떠올리게 한다. 장자가 하루는 낮잠을 자다 꿈속에서 호랑나비 한마리와 노닐다 잠에서 깬다. 꿈 속에 본 나비가 너무나 생생했던지 장자는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꿈이 현실이었는지 지금이 현실인지 헷갈린다. 자신의 존재까지도 애매해진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의 꿈 속에 내가 들어갔던 것일까?”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의식’이라는 것이 ‘무의식’에서 시작됐다면, ‘무의식’은 또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놀란 감독은 천지창조와 같은 그 ‘시초(Inception)’를 찾아 나선다. 마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Freud)가 인간의 성격 형성의 ‘시발점’을 찾아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이드(Id)의 세계로 마구마구 파고들어간 것처럼 ‘꿈 속의 꿈’까지 쳐들어간다. 
 
▲ 영화 인셉션의 배경은 인간의 무의식이 창조해낸 가상세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놀란 감독은 기상천외한 ‘도둑’인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탄생시킨다. ‘꿈 도둑’이다. 수많은 영화들이 미술품 도둑, 보석 도둑, 정보 도둑, 사람 도둑 등 온갖 도둑들을 탄생시켜왔지만 ‘꿈 도둑’은 처음인 듯하다. ‘꿈 도둑’ 코브는 온갖 전통적인 도둑들이 난공불락의 금고를 열고 내용물을 털어가듯 사람의 ‘의식’을 해제하고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가 꽁꽁 싸매고 있는 ‘생각’을 털어가기도 하고 아예 그의 무의식 속에 새로운 ‘의식’을 심어놓고 튀기도 하는 신종 최첨단 도둑이다. 

일본 거대 에너지 기업의 회장 사이토(와타나베 겐)는 경쟁 에너지 업체의 붕괴를 도모한다. 사이토는 ‘꿈 전문털이범’ 코브를 고용해 경쟁업체의 상속자 로버트 피셔(실리언 머피)의 무의식 속에 자신이 상속받은 거대기업을 해체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심는 용역을 발주한다. 피셔를 납치해 약물을 주입하고 같이 잠들고 피셔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놀란 감독이 장자의 ‘호접몽’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코브는 피셔의 무의식에 폭탄을 심으러 장자가 나비의 꿈 속으로 들어가듯 피셔의 꿈 속으로 들어간다. 꿈 속 전쟁이 시작된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분노하기도 하고 동시에 또다른 많은 것들에 열광하고 환호하면서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그 분노와 환호의 이유는 썩 명쾌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분노할 필요 없는데 분노하기도 하고, 분노해서는 안 되는데 분노하기도 한다. 열광과 환호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스스로도 어이없어질 때도 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내 마음 나도 모른다. 문득 ‘꿈 도둑’ 코브가 내 꿈속에 다녀간 것은 아닐까 찝찝해진다.
 
▲ 국정원의 여론조작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사진=뉴시스]
요즘 국가권력기관에서 운영했다는 소위 ‘사이버 심리전단’이라는 이름마저 기묘한 조직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국민들이 ‘특정한 생각’을 하도록 열심히 인터넷 댓글을 달았던 모양이다. ‘사이버 심리전단’이 코브처럼 우리 꿈속에 숨어 들어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모종某種의 생각’을 하도록 우리도 모르게 모종의 씨앗을 심어놓고 가곤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코브처럼 우리에게 약물 주사를 놓고 꿈길을 동행하면서 수작 부리지는 않은 걸 그나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지키고 챙겨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가스관 타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도둑도 조심해야 하고, 인터넷을 뚫는 컴퓨터 해커도 방비해야 하고, 이제는 나의 무의식 세계로 숨어드는 코브와 같은 ‘꿈 도둑’까지 걱정해야 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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