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보사 빅3와 리먼 사태 10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내 빅3 생명보험(삼성생명ㆍ한화생명ㆍ교보생명) 업체에는 전화위복이 됐다. 뒤를 바짝 쫓던 외국계 생보사의 추격을 따돌릴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간 국내 빅3 생보사는 시장점유율을 더 단단하게 구축했다. 하지만 덩치를 키우는 동안 소비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생보사 빅3와 리먼사태 10년의 묘한 상관관계를 취재했다.

▲ 지난해 국내 빅3 생명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이 46.2%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국내 생명보험 업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세계 유명 보험사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국내 토종 보험사들이 밀리고 있는 분위기다. 2003년 13.6%에 불과했던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2007년 21.4%를 기록, 4년 만에 7.8%포인트 상승했다. 외국계 생보사는 1987년 보험시장 개방 이후 20년 만에 20%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게 됐다.

외국계 생보사가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건 2003년 도입된 방카슈랑스 제도와 차별화된 영업 전략 때문이다. 여기에 종신보험ㆍ변액보험 등 선진 보험 상품 도입에 앞장서면서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 삼성생명 등 빅3의 시장점유율이 70.7%에서 56.8%로 급락하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보험사도 방카슈랑스와 텔레마케팅(TM) 등 새로운 채널을 확대하면서 방어하고 있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국내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외국계 생보사들의 파상공세에 국내 보험사의 입지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삼성생명 등 대형 보험사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2007년 한 언론이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관해 내놓은 기사다. 실제로 당시 외국계 보험사의 국내 시장 공략은 거셌다. 저축성 보험 중심에서 벗어나 변액연금보험ㆍ종신보험 등 선진보험상품을 도입해 금융소비자를 유혹했다. 아울러 금융지식이 풍부한 대졸 출신의 남성 보험설계사를 고용해, ‘보험은 아줌마’라는 등식을 깨버렸다.

하지만 외국계 보험사의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본사의 경영난, 인수ㆍ합병(M&A) 이슈 등이 제기되면서 외국계 보험사를 향한 시장의 우려도 커졌다. 외국계 보험사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계 대형 보험사도 무너질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겼다”며 “이후 보수적인 영업이 이뤄지면서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금융위기는 외국계 보험사에 시장을 뺏기고 있던 국내 생보사에 기회가 됐다. 보험의 생명인 안정성만은 국내 보험사가 낫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반사효과였다. 그 결과, 2000년 80.9%를 기록한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기록하던 국내 빅3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국내 빅3 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굳건하다. 삼성생명ㆍ교보생명ㆍ한화생명의 시장점유율은 올 2분기 기준 45.7%에 이른다. 글로벌 경기침체, 저성장ㆍ저금리 등 악조건 속에서도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빅3 생보사의 때아닌 호재

문제는 국내 빅3 보험사의 입지가 단단해진 만큼 소비자의 권익도 높아졌느냐다. 안타깝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는 찬밥 신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10년 논란 끝에 결론이 난 생보사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건이다. 2007년부터 계속된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올 3월에야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끝까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버티던 삼성생명ㆍ교보생명ㆍ한화생명 등 빅3 업체는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받고서야 백기를 들었다.

자살보험금 논란의 원인이 고객이 아닌 보험사에 있었음에도 그랬다. 실제로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의 발단은 관행처럼 이뤄진 ‘약관 베끼기’였다. 논란이 된 재해사망특약 약관은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이 만들었다. 약관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재해사망특약에 가입하면 2년 뒤 자살한 경우에도 일반사망 보험금보다 2~3배가량 많은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후 경쟁사도 비슷한 상품을 만들면서 이 약관을 그대로 베껴 썼다. 그 결과, 2001년부터 2010년 표준약관 개정 전까지 9년 동안 280만건의 계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이 약관이 문제가 되자 생보사는 “표기상의 실수”라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생보사가 고객에겐 약관 준수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보험사 자신들은 약관을 무시했다는 얘기다.

전혀 바뀌지 않은 생보사의 또다른 관행은 고객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채이배(국민의당)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보험사 민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생보사의 최근 5년 민원 수용률은 33.99%에 불과했다. 고객의 민원 10건 중 6건 이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의 민원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데 이를 수용하는 비중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생보사에 접수된 고객민원 건수는 2013년 1만4416건에서 2014년 1만6078건, 2015년 1만6006건, 지난해 1만6129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생보사가 이를 받아들인 수용률은 2013년 44.47%에서 지난해 28.35%로 크게 낮아졌다. 빅3 생보사 중 삼성생명의 불수용률이 77.14%로 가장 높았고,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이 각각 67.18%, 62.78%로 4위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빅3 생보사가 소비자 권익은 뒷전에 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채 의원은 “근본적으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업계는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민원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험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불완전판매 논란도 여전하다.

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보험 상품설명 불충분 민원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생보사 불완전판매 민원은 2만2135건에 달했다. 연도별 발생건수는 2012년 3894건에서 2016년 4576건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했다. 게다가 빅3 생보사가 불완전판매 민원 상위 보험사에 모두 포함돼 있었다. 불완전판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정부와 금융소비자의 요구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줄지 않은 민원 불수용률

생보업계 관계자는 “계약하는 보험 건수가 많아 민원 건수가 많은 것”이라며 “보험설계사 교육 강화, 가입 프로세스 규격화 등을 통해 불완전판매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 앞에서 생보사가 자유롭긴 힘들 것이라고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보험업계의 문제점은 불완전판매, 민원증가 등 비슷한 사안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며 “같은 논란이 계속되는 건 그만큼 소비자의 권익 향상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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