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 높아질까

2018년, 새 회계기준 IFRS15가 도입됐다. 회계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이유에서인데, 기업 입장에선 예민한 게 숱하다. 무엇보다 매출 인식 시점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공정률에 따라 잔금을 받더라도 매출로 잡지 못하는 식이다. ‘확실한 것만 매출로 잡겠다’는 게 IFRS15의 취지라서다. 쉽게 말해, 회계장부를 꾸미는 ‘분식粉飾 기술’이 안 먹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IFRS15 도입 그 이후의 모습을 그려봤다.

▲ IFRS15 도입으로 기업의 회계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IFRS15가 도입돼도 바뀌는 게 없다던 기업들이 최근 용역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용역을 맡긴 이유는 IFRS15 도입 이후 매출을 어떻게 잡아야 하느냐였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의 얘기다. 새롭게 적용된 국제회계기준 IFRS15가 도입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이 숱하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IFRS15로 회계기준을 맞추는 건 간단한 작업이 아니어서 지금 준비한다고 해도 다소 늦었을 공산이 크다”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준비하지 않는 기업이 상당수”라고 꼬집었다.

IFRS는 기업의 회계처리와 재무제표의 국제적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C)가 제시한 회계기준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IFRS를 따르고 있다. 최근 IFRS가 화두로 떠오른 건 2018년 도입된 IFRS15 때문이다. IFRS15는 고객과의 계약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수익을 어디까지 인식해야 할지 정해 놓은 새로운 회계기준이다. 당연히 이를 적용하면 기업들의 수익이 기존과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IFRS15가 기존의 회계기준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IFRS15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포인트는 ‘수행의무’와 ‘통제권’이다. 이 두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면 수익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거다. 먼저 수행의무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계약 상대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를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하나의 계약 안에서 둘 이상의 수행의무가 발생하면 개별적인 수익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체가 차 한대를 팔았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기존엔 자동차 가격에 포함돼 있는 품질보증(워런티) 비용까지 한번에 수익으로 잡았다. 하지만 IFRS15에선 따로 인식해야 한다. 자동차를 인도해야 할 의무와 품질보증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각기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가격은 바로 매출로 잡는 게 가능하지만 품질보증 비용은 품질보증기간이 지나야 매출로 인식할 수 있다. 품질보증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면 이는 매출이 아니라 부채로 잡힌다. 자동차만 그런 건 아니다. 휴대전화와 통신서비스, 전자제품 구매와 설치비용 등 이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업종은 숱하게 많다.
 
지급청구권 없으면 매출이 부채로

또다른 변경 포인트인 통제권도 상당히 중요하다. 매출을 인식하는 시점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기존 회계기준에선 제품ㆍ서비스의 리스크와 이익이 고객에게 넘어가면 매출로 잡는 것이 가능했다. 이를테면 공사 중인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내릴 때 그로 인한 리스크와 이익은 분양권자의 몫이기 때문에 건설사는 수익을 인식할 수 있었다.

IFRS15에선 다르다. 고객이 해당 제품ㆍ서비스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제품ㆍ서비스의 리스크와 이익이 고객에게 옮겨가는 걸 넘어서서 제품ㆍ서비스의 사용을 지시하고, 그로 인한 대가를 얻으며, 팔고 싶으면 팔 수 있는 권리가 고객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더 쉽게 풀어보자. 조선사가 배를 건조하고 있다. 기존엔 공정률에 따라 매출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IFRS는 그렇지 않다. 배의 건조가 끝났을 때 매출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야 고객이 제품(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IFRS15의 또다른 변경포인트인 ‘통제권’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는 건 이 때문이다. 조선, 건설, 기계, 장비 등 계약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수주산업에선 매출을 인식하는 시점이 뒤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건설업에선 공사 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인식해왔는데, 자칫하면 완공 후 아파트를 인도하기 전까진 매출이 제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IFRS15에서도 공정률(진행률)에 따라 매출을 인식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 “기업이 고객에게 전체 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지급청구권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중간에 계약이 파기되더라도 고객이 남은 대금을 책임지고 지급하겠다는 조항이 체결 당시 계약서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IFRS15의 취지는 ‘대금을 확실하게 청구할 수 있을 때에만 매출로 인식하겠다’는 것이다. “IFRS15가 도입되면 재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의 회계투명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을 맡고 있는 한종수 이화여대(회계학) 교수는 “산업이 다변화할수록 그에 걸맞은 새로운 회계 기준이 필요하다”면서 “그동안은 기업들마다 기준이 서로 달랐고,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들이 많았는데 공통의 회계기준이 적용되면 기업별 비교가 수월해지고, 회계투명성도 높아질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 지급청구권이 없으면 공정률에 따른 수익을 반영할 수 없다.[사진=뉴시스]
문제는 기업이 IFRS15 도입을 소홀하게 준비했을 경우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IFRS15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돼 있지만 각각의 사업에 맞는 회계원칙을 세우는 건 기업이 몫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매출로 잡고, 어디까지를 부채로 잡아야 할지 확실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거다.

회계원칙 문서화해야 불이익 없어

한종수 교수는 “기업이 IFRS15를 고려해서 회계원칙을 세웠다는 것을 문서화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서 “자신들의 사업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가 이익이 과대 계상되기라도 한다면 기업은 물론 경영진은 상당한 책임을 떠안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IFRS15에 따른 회계원칙으로 재무제표를 작성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회계감사에서 적정의견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IFRS15는 2018년 재무제표에 본격 적용된다. IFRS15 도입에 따른 영향 평가는 2017년 회계보고서부터 공시해야 한다. 이전에 체결했던 계약이라도 2018년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새 회계기준을 반영해야 한다. IFRS15 도입에 따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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