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의 인식 기준 ‘발생’에서 ‘인도’로…

배를 짓는 데는 2~3년이 걸린다. 그렇다고 배가 고객에게 인도引渡될 때까지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조선사는 공정률에 따라 잔금을 받는다. 하지만 새 국제회계기준 IFRS15가 도입된 2018년 이후엔 매출을 이렇게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준에서 매출의 인식 기준은 ‘발생’이 아니라 ‘인도’이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IFRS의 업종별 리스크를 살펴봤다. 그 첫째편으로 조선이다.

▲ IFRS15가 도입됐다. 단기적으로 조선사의 매출이 급감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조선사들의 매출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 2018년 새로 도입된 국제회계기준 IFRS15가 적용됐을 경우의 ‘수’다. 새 기준에 따르면 매출을 잡는 기준이 달라질 공산이 커서다. 조선사의 매출은 크게 선박과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한다. 선사나 오일업체로부터 발주를 받아 선박ㆍ해양플랜트를 건조해주고 대금을 받는다.

이때 선박 건조 계약은 통상 10~20%의 선수금을 받고 나머지 잔금은 인도할 때 받는다(헤비테일ㆍHeavy Tail 방식). 해양플랜트는 공정률에 따라 일정한 잔금을 받는 프로그레시브(pro gressive)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당연히 이런 선수금과 공정률에 따른 잔금은 조선사의 당기 매출로 잡는다.

하지만 IFRS15의 도입 이후 선수금과 공정률에 따른 잔금이 매출로 인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한종수 이화여대(회계학) 교수는 “IFRS15에선 계약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라면 계약 상대에게 전체 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지급청구권이 있어야 중간에 발생하는 수익을 매출로 잡을 수 있다”면서 “이는 계약서에 명시돼 있어야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존의 통상적인 계약에선 지급청구권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조선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선사의 잘못으로 건조계약이 파기되면 이전에 받았던 선수금이나 잔금은 조선사가 몰취하고, 남은 대금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고 말했다. 조선업 관계자들이 “IFRS15 도입에 따른 가장 큰 우려는 중간에 발생하는 수익이 인식되지 않아 장기간 매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고 토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사가 최종적으로 배를 고객에게 인도해야 매출로 인식할 수 있다는 건데, 이 기간은 최소 2~3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 전까지는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간에 받은 선수금이나 잔금은 배를 인도하기 전까지 모두 부채로 인식된다.

매출이 감소하면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건 또다른 문제다. 미국 군수업체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예는 이를 잘 보여준다. 원래 제작을 완성했을 때와 고객에게 인도했을 때 총 두번 매출을 잡았던 이 회사는 IFRS15를 적용하면서 고객에게 인도했을 때 한번만 매출로 인식했다.

그 결과, 수익이 있었다가 없어진 기간에 매출이 이전보다 3.2% 줄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2.2%, 12.7%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사는 매출 대부분이 수주계약이기 때문에 감소폭은 도리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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