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면…

▲ 탄핵이 없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퇴임 후 설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사진=뉴시스]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슬프지 않아서 더욱 슬픈 영화다. 주인공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역)은 80세의 나이로 태어나 자라면서 점점 젊어져 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연인 데이지는 늙어 가는데 비해 자신은 어린아이가 돼가는 교차점인 40대에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그때 벤자민은 “잠깐만이라도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고 말한다. 오랜 방황 끝에 치매에 걸린 신생아로 돌아온 그는 늙은 연인의 품에서 임종을 맞는다. 관객들은 인생과 세월의 덧없음에 한숨을 쉬며 이 영화를 보게 된다.
 
올해 개봉 영화 중 ‘덩케르크’와 ‘콘택트’는 시간의 비선형(Non-linear)을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덩케르크는 ‘해변에서의 1주일,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이란 3개 시간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마치 같은 시간대에서 벌어진 것처럼 보여준다.
 
‘콘택트’는 불치병으로 딸을 잃는 여주인공 뱅크스 박사를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한다. 언어학자인 그는 물리학자의 도움을 받아 외계인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아픔을 극복하고 그 물리학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떠나고,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남자를 선택하는 뱅크스 박사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결과를 알고 있지만 난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거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비선형 세상에선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사건은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반복된다. 또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선형 세상에서는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재임 중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로 재판 중인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하늘이 소원 하나를 허용해주신다면 재직 당시로 돌아가 정무수석실이 관여한 그 순간을 바로잡고 싶다”고 눈물을 훔쳤다. 아마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더하지 않을까. 탄핵이 없었다면 아직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퇴임 이후 설계에 한창일 시간이다.

놓쳐버린 4번의 기회

취임사의 ‘국민행복시대’ 약속과 달리 ‘국민분노시대’를 열었던 그에게는 최소한 4번의 기회가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때 적절한 대응과 조치를 했더라면 국민이 이처럼 분노하지 않을 게다. 최순실 국정농단 폭로가 촉발한 촛불집회를 직시했다면 감옥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에 거국내각을 구성했거나 헌법재판소 판결 이전에 미리 손을 털고 청와대를 나왔더라도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는 헌법재판소 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변명만 하다가 오히려 분노를 키웠다.
 
2017년이 작별을 고하고 있다. 정유년 묵은 해가 지면 무술년 새해가 뜬다. 1년은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천왕성은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84년이 걸린다. 인간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우리의 일생은 천왕성의 1년에 불과하다. 인간의 삶을 우주의 행성과 비교하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 그저 길가에 핀 달맞이꽃을 생각해보자. 달맞이꽃의 일생은 단지 20분에 불과하다. 하루살이는 하루가 곧 한평생이다. 이처럼 시간의 의미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심오하다. 
 
인생은 복리다. 수많은 티끌이 세월의 흐름과 만나 태산을 일궈낸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도 좌우할 수 있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생은 곡선이다.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목회자 1위인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 담임)는 “직선 위에서 살면 항상 내 앞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불행해진다”며 “디지털시대에는 360도 원으로 살아야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곱씹느라 아픈 마음을 들쑤셔봤자 상처만 덧나게 할 뿐이다. 과거를 깨끗이 놓아주고 미래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올해 좌절한 사람, 성공한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다. 시간은 승자에게는 겸손함을 요구하고, 패자에게는 희망을 준다. 지금의 고난이 ‘기다림과 버림’으로 거듭나 머지않아 희망의 새싹이 움트길 기대해본다. 가치 있는 것을 하는 데 있어서 늦었다는 것은 없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에서).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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