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의 부실한 기업관리

대우건설 매각이 발표된 후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은 대우건설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연히 주가가 떨어졌고, 매각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주식 매각을 승인한 건 대우건설 매각에 나선 KDB산업은행이다. 제대로 팔아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헐값 매각’을 자초한 꼴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DB산업은행의 이상한 전략을 꼬집었다.

▲ KDB산업은행의 부실한 자회사 관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사진=뉴시스]

KDB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의 매각과 관련해 인수 후보자 선정 기준조차 내놓지 않는 공식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인수 후보자 기준 공개가 자칫 협상에 악영향을 줘 제값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문제는 산은이 스스로 대우건설을 제값에 매각하기 위한 노력을 했느냐다. 그렇지 않다. 산은이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보인 상식적이지 않은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산은은 2017년 10월 13일 대우건설 매각을 공고했다. 그로부터 3주 후인 11월 7일 주식시장 개장 전에 금호타이어는 보유 중이던 대우건설 주식 1827만주(약 4.4%)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전날 대우건설 종가는 6810원이었고, 주당 매각 가격은 여기서 480원(6.9%) 할인된 6330원이었다. 7일 당일 종가는 6500원, 8일 종가는 6400원이었다. 블록딜 이후 주가가 떨어진 거다.

10일에는 아시아나항공 역시 개장 전에 블록딜 방식으로 대우건설 주식 914만여주를 전량 매각했다. 주당 가격은 6110원가량. 전날 종가인 6670원보다 560원(8.4%) 낮은 가격이었다. 10일 당일 종가는 6750원으로 전날보다 약간 오른 후 마감했지만, 13일(주말 제외)에는 6350원, 21일엔 5790원으로 확 내려갔다.

일반적으로 블록딜은 전날 종가보다 가격을 할인한다. 따라서 주가를 낮추는 요인은 될 수 있지만, 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은 결코 아니다. 주식 전문가들은 “블록딜은 주가뿐만 아니라 자칫 기업 신뢰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우건설 주가 떨어뜨려 놓고


문제는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이 산은과 무관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금호타이어는 산은이 13.5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은행(14.15%) 다음으로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다.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KEB하나은행 등과 함께 1조원이 넘는 금호타이어의 장ㆍ단기 채권을 가진 주요 채권단이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17년 8월 산은이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해 주주 권리가 없지만, 장기 채권만 2637억원(2017년 3분기 기준)을 보유한 주요 채권단이다. 산은이 입김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얘기다.

특히 금호타이어의 경우,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에 따라 대량의 대우건설 지분을 내다 팔려면 주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산은 관계자는 “채권단이 100% 동의했기 때문에 우리도 매각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산은이 되레 대우건설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자회사와 채무기업의 블록딜 결정에 동의해 대우건설 매각에 걸림돌이 되는 행동을 취했다는 얘기다. 두번의 블록딜을 거치면서 11월 21일 5000원대로 뚝 떨어진 대우건설 주가는 여전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주가와 신뢰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우건설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은이 “제값 받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주장이 무색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은 관계자는 “금호타이어든 아시아나항공이든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니 주식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걸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해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또다른 자회사의 유동성을 확보하느냐 대우건설을 제값에 파느냐 하는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산은이 필요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오락가락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산은이 자회사ㆍ채무기업을 관리하면서 보여온 비상식적인 행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관리 실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자회사나 출자회사에 돈을 빌려주고도 보증이나 담보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아 돈을 떼이고,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사례도 숱하다.

일례로 2016년 감사원의 ‘기업금융시스템 운영 및 감독실태’에 따르면 산은은 모기업 대표이사의 연대보증과 개인자산 담보를 조건으로 3000억원을 대출해준 다음 법적 이행의무도 없는 구두약속만으로 연대보증과 담보를 해지해줬다. 채권을 보전할 수 있는 별도의 조치는 없었고, 당연히 큰 손실을 봤다. 일반적인 은행이 흔히 할 수 있는 실수가 아니다.

그럼 산은은 자회사나 채무기업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식으로 부실관리만 했을까. 그렇지도 않다. 산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누가 말려도 의사를 끝까지 관철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최근 다시 문제로 떠오른 박창민 전 대우건설 사장 임명건이다.

박 전 사장은 2016년 7월 유력 후보자로 거론될 당시부터 2017년 8월 자진사퇴하기까지 낙하산 논란에 휘말렸다. 대우건설은 사장직을 공모하면서 지원 자격요건에 해외수주 능력을 공지했다. 하지만 박 전 사장은 국내 주택사업 경험만 있고 해외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지원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후보자가 사장에 오르는 일이 벌어진 거다. 박 전 사장을 굳이 앉혀야 할 이들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게 누구일까.

대우건설 노조는 그 장본인으로 산은을 지목했다. 대우건설 노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위원들 가운데 상당수의 위원들이 박 전 사장은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는데, 산은 측 위원들은 박 전 사장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 산은은 대우건설 사장을 내부 선정 기준도 무시한 채 임명했다.[사진=뉴시스]

노조는 이런 근거를 들어 12월 27일 박 전 사장과 이동걸 전 산은회장을 업무방해죄로 형사고발했다. 노조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산은은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권리만 누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권리 내세울 땐 기준도 무시


산은의 부족한 전문성도 논란거리다.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 발목을 잡았던 건 상표권 이슈였다. 2017년 초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채권단으로부터 금호타이어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 자체를 거부당해 인수협상에서 배제됐다.

그러자 2017년 4월 상표권 사용 조건을 협상카드로 내밀어 금호타이어 매각을 방해했다. 이후 상표권 사용 조건 협상이 수개월간 난항을 겪고, 금호타이어 실적까지 나빠지면서 금호타이어 매각협상은 결렬됐다. 당시 인수ㆍ합병(M&A) 전문가들 사이에선 “산은이 상표권 문제도 확실히 매듭짓지 않고 매각을 진행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은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는 데 익숙하다. 기업 관리의 전문성은 부족할 때가 많다. 책임 있는 행동을 피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산은이 “대우건설을 제값에 팔겠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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