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석의 Branding | 힙스터 문화와 브랜드

“여기가 힙(Hip)해.” 요즘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최고다’ ‘핫하다’ ‘근사하다’라는 뜻을 가진 요즘 말로 이해하면 쉽다. 그럼 ‘힙’은 어디서 온 말일까. 젊은이들은 왜 ‘힙’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흥미롭다. 더스쿠프(The SCOOP)-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그라프 특약特約 제1편 ‘힙스터 문화’의 막을 올린다.

▲ 편집숍 비이커는 친환경적인 내부 인테리어로 힙스터 문화를 녹여냈다.[사진=뉴시스]

서울 한남동 일대는 이른바 ‘뜨는 동네’로 통한다. 인적 드물던 이 동네는 명품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서면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군중심리에 빠져든 탓일까. 필자도 최근 한남동을 찾았다. 핫플레이스의 성장 스토리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관련 자료를 보거나 검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유행에 민감한 후배에게 “한남동에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줘”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후배는 흥미로운 답장을 보냈다. “피자는 여기가 괜찮아요. 퓨전 음식은 ○○비스트로, 프렌치 음식은 ○○셰프가 요즘 아주 힙해요.”

답장을 보는 순간 생뚱맞은 단어 ‘힙해요’가 눈에 꽂혔다. 알고 보면 별 뜻 아니다. ‘최고다’ ‘핫하다’ ‘근사하다’는 의미의 요즘 말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왜 ‘힙’이란 단어를 쓰는 걸까.

힙은 ‘힙스터(Hipster) 문화’에서 나왔다. 힙스터 문화는 1940년대 미국 재즈 음악과 이를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받은 흑인계 유소년, 20~30대 초반의 재즈 마니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하위 문화의 일종이다.

정치 성향은 자유주의와 맞물리고, 반전反戰을 지향한다. 또한 친환경을 선호하고 거리문화를 아우른다. 몸에 딱 맞는 패션 스타일, 허리에서 아래로 갈수록 끝이 모이는 것이 특징인 테이퍼드 팬츠, 하이퀄리티 커피, 두꺼운 뿔테 안경, 인디음악, 인디영화 등이 힙스터 문화로 대변되는 이유다.
 

물론 한국에 뿌리 내린 힙스터 문화는 결이 조금 다르다.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건 어렵지만 필자가 느끼는 한국의 힙스터 문화는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서구에서 전파된 따뜻하고 아날로그적인 문화의 감성에 현재의 거리 문화, 개성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방식, 대담함, 합리성, 친환경적인 성향 등을 다양하게 조합한 문화다.”

이런 정의를 쫓아가면, 스트리트아트ㆍ스트리트패션ㆍ편집숍ㆍ그래픽디자인ㆍ카페 등이 우리네 젊은 세대의 시선을 끌고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감성적 아날로그의 향수

실제로 ‘뜨는 동네’ 한남동에는 이런 사례가 숱하게 많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디앤디파트먼트서울’이다. 이는 일본에서 건너온 라이프스타일숍으로, 브랜드 콘셉트는 ‘롱라이프 디자인 (유행이나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생명이 긴 디자인)’이다. 디앤디파트먼트서울은 이런 브랜드 콘셉트를 유지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제품과 식품, 리사이클 소품, 가구 등을 일본 전역에서 수집해 판다.

일단 매장 간판부터 눈에 띈다. 흰벽에 심플한 서체 사인으로 마감했다. 내부를 보면 더 흥미롭다. 진열 선반을 실제 공장에서 사용하는 조립식 철제 앵글로 썼다. 기존 라이프스타일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끈한 진열 선반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상품이 아닌 가치를 판다는 점에서 투박한 선반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 선반에 진열된 상품 중 필자가 눈여겨본 건 ‘구포국수’다. 수십년간 부산에서 명물로 통하던 이 국수는 치자를 원료로 사용했다. 노란색 국수 면발이 인상적이었다.

한남동에서 힙스터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또 있다. 흥미롭게도 대기업(제일모직)의 편집숍 브랜드인 ‘비이커’ 매장이 그중 한곳이다. 이 매장의 내부는 친환경적이다. 일반 가정집에서 쓰던 나무소재 가구나 내장재를 분리 후 재조립해 의류 진열 장식장으로 만들었다. 이 소재는 계단의 인테리어 장식에도 재치 있게 사용했다.

이쯤 되면 한가지 의문이 떠오를 법하다. “힙스터 문화는 한남동 같은 곳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즐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IT 분야에서도 힙스터 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대표적인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은 브랜드 안에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다. 제품과 패키지 대부분이 분해 후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 애플 광고에 유난히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많다는 점 등은 애플의 DNA에 ‘힙스터 문화’가 깃들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 이제 독자에게 물을 차례다. “우리는 왜 힙스터 문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필자가 분석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첨단기기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첨단기기는 젊은 세대의 삶을 ‘디지털’로 탈바꿈시켰지만 왠지 모르게 차갑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따뜻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그리워지는 이유다. 훌륭한 셰프의 파스타, 스트릿 패션, 빈티지한 가구, 수제맥주 …, 대략 이런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힙스터 문화는 매력적이다. 가까운 과거의 온기溫氣와 멋을 현재의 우리에게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어서다. 차가운 디지털 속 따뜻한 아날로그, 정말 힙한 감성이다.
정안석 인그라프 실장(더스쿠프 전문기자) joel@ingraf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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