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인셉션 ❸

타인의 무의식 세계에 잠입해 정보를 빼내는 ‘무의식의 해커’ 코브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쫓기는 신세다. 두 사람이 무의식 세계에서 만나는 기술을 아내에게 시연했던 게 화근이었다. 아이들도 만날 수 없는 수배자 신분을 벗기 위해 코브는 사이토의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타인의 무의식 세계에 잠입해 그의 머릿속의 모든 정보를 추출해낸다. 해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무의식의 해커’인 셈이다. 코브는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벗어나 타인의 무의식 속에 ‘망상’을 심는 위험한 용역을 수주한다. 전인미답의 길에는 항상 위험 부담이 뒤따른다. 코브의 도전도 콜럼버스의 항해 못지않게 위험하다. 
 
의뢰인은 일본 거대 에너지 그룹의 총수 사이토 회장이다. 사이토 회장은 경쟁사인 러시아 에너지 그룹의 후계자 로버트 피셔의 무의식 속에 자신의 그룹을 해체하라는 ‘명령’을 심어주길 원한다. 그러면 사이토는 세계 에너지 시장을 한손에 틀어쥘 수 있다. 
 
코브가 사이토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딱하다. 코브는 아내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려있다. 사랑하는 아이들도 만날 수 없는 수배범 신세다. 사이토 회장은 코브가 임무에 성공하면, 미국 정부에 손을 써서 그의 수배령을 해제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일본 재벌 총수 정도되면 미국의 사법부까지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는 모양이다. ‘국제적’인 정경유착이다. 혹시 지금 대한민국 정부도 일본이나 미국의 거대기업들이 여기저기 주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찝찝해지는 장면이다. 결국 코브는 땡전 한푼 안 받고 자기 돈 들여가며 그 엄청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아내 살인범’ 신분이 된 코브의 비극은 자신이 개발한 ‘둘이 함께 꿈꾸는 기술’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꿈길’에서 만나 같은 꿈속을 노니는 그야말로 꿈같은 기술이다. 상대를 꿈속에서 만나 그의 모든 생각을 훔쳐내는 기술이다. 비극은 코브가 자신의 전매특허 기술인 ‘꿈의 공유’ 기술을 아내 맬(Mal)과 즐기면서 시작된다. 마치 의사가 환자치료용 ‘향정신성 마약’을 자신에게 주사하며 즐기다 패가망신하는 꼴이다. 코브가 아내와 함께 주사약을 투여하고 함께 꿈속을 노니는 현실세계의 2시간 남짓 시간에 코브와 아내는 꿈속의 가상세계에서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면서 50년을 보낼 수 있다. 
 
▲ 코브는 현실세계와 무의식을 구분하기 위해 팽이를 지니고 다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브의 비극은 미국판 ‘꿈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소설 「립 판 윈클(Rip Van Winkle)」을 모티브로 하는 듯하다. 마음씨는 착하지만 게으르기 짝이 없는 농부 판 윈클씨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산 속으로 들어가 낯선 사람이 주는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한잠 잔다. 그런데 잠에서 깨 마을로 내려와 보니 20년이 흘러 있었다. 고달픈 현실을 피해 꿈속을 노닐고 싶은 욕망은 아마도 동서고금 모든 사람들 모두 공유하는 듯하다. 
 
코브의 아내 맬도 꿈에서 깨 번거롭고 고달픈 현실로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다. 코브가 겨우 깨운 아내는 50년 만에 깨어난 현실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비몽사몽非夢似夢’ 상태가 된다. 아직도 꿈속이라 생각하고 꿈에서 깨기 위해 고층아파트에서 몸을 던진다. 꿈속이었다면 잠에서 깨겠지만, 현실세계에선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코브는 졸지에 아내 살인범으로 몰린다. 
 
현실과 꿈이 분간이 안 되는 비몽사몽의 상태 속에서 헤매는 것이 어디 코브의 아내 맬뿐일까. 칼 마르크스(Karl Marx)와 함께 자본주의의 모순과 적폐에 진저리를 쳤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인식의 오류(False consiousness)’라는 무거운 명제를 던진다.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꿈을 꾸며 현실을 직시하지 않거나, 직시하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에 빠진다.
 
▲ 노동자의 삶이 자본가의 삶으로 바뀌는 건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인식의 오류는 자신과 세상의 현실적인 관계 설정을 하지 못하게 한다. 노동자의 삶이 자본가의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꿈일 뿐인데 말이다. 꿈과 현실을 냉정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그들은 노동자이면서 엉뚱하게 자본가 편에 서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 맬처럼 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오히려 가혹한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꿈으로 치부해버리고 싶어하기도 한다. 
 
직업적인 ‘꿈 여행자’인 코브조차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래서 코브는 항상 조그마한 팽이를 갖고 다닌다. 자신이 지금 꿈 속에 있는지 현실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코브는 팽이를 돌린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돌면 비로소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꿈속에서 빠져나온다. 어쩌면 우리도 코브의 팽이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돌려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