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의 역습

 

새해 벽두부터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거세다. 역대 최고 인상률로 올렸지만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 경비원이나 미화원들이 혜택을 받기는커녕 있던 자리에서 밀려나는 실정이다.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대체하거나 억지로 휴식시간을 늘려 근무시간을 줄이기도 한다.

동네 중소 매장들은 점원 줄이기에 나섰다. 외식업체들은 무인주문자판기를, 주유소는 셀프주유기를 속속 들인다. 24시간 영업의 상징인 편의점은 심야 영업을 포기한다. 구인ㆍ구직 포털 알바천국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일자리를 찾기 어렵거나 갑작스러운 해고에 직면할 것을 걱정할 정도다.

다른 한편에선 외식업계와 화장품,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가격을 올리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가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치킨과 햄버거 가격을 평균 6% 인상했다. 설렁탕과 부대찌개 값도 올랐다. 수입 화장품업체와 외국산 가구업체도 평균 2~5% 가격을 올렸다. 미장원ㆍ목욕탕 등 서비스업종 요금도 들먹인다.

이러다가 자칫 일자리 절벽과 생활물가 상승이란 악재가 겹칠까 우려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전체 물가는 0.5%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16.4%를 대입하면 물가 0.8% 상승은 예정된 수순이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자는 명제는 바람직하다. 관건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와 고용주의 지급 능력이다.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는 24세 미만(18%)과 55세 이상(33%)이 절반을 넘는다. 대부분 숙련된 기술이 없고 나이가 많아 임금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계층이다. 또한 이들을 고용한 사업자의 61%는 근로자 10인 미만인 영세업체다. 고용주 대다수가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 소상공인이라서 임금 부담이 커지면 장사를 접어야 할 처지다.

이런 판에 평균 최저임금 상승률의 두배도 넘게 올리자 곳곳에서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정부가 직전 5년 평균 최저임금 상승률(7.4%)를 초과한 임금상승분을 보전(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월급 190만원 미만 근로자에게 월 13만원씩 지원)해주기로 했지만, 일부 고용주들은 고용보험 가입 조건에 부담을 느껴 지원 신청을 꺼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겠지 하며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사회적 이슈와 정치 쟁점화하며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적용 실태 점검 태스크포스를 꾸려 고용 현장을 모니터링하면서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미 오른 최저시급 7530원을 물리거나 낮출 수는 없다. 당장은 일자리안정자금 3조원이 필요한 곳에 제때 공급되도록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고용보험 가입 부담에 자금지원 신청을 기피하는 소상공인을 배려한 사회보험료 경감 방안도 적극 알려야 할 것이다.

인건비 상승 부담을 줄이려고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식비ㆍ교통비 등 수당을 삭감하는 것과 같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도 필요하다. 물가와 서비스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원가상승 요인을 최소화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아직 접점을 찾지 못한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최저임금에 정기 상여금과 교통비, 중식비 등을 포함할지 여부는 물론 업종별로 산입범위를 차등 적용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현실에 맞게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올해 한국경제의 성패는 최저임금 인상이 어느 정도 연착륙하느냐에 달려 있다. 급격한 인상 여파로 일자리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수입원을 잃고,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무너지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의 길은 더 멀어진다. 근로자를 위한다는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를 더 어렵게 만드는 괴물로 변하지 않게 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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