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트,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조치는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막은 게 없으니 풀 것도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문제는 사드 보복조치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문화콘텐트 시장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는 거다. 타개책이 없을까. 문화콘텐트 전문가 이효영(53) 영앤콘텐츠 대표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장과 플랫폼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했다.

▲ 이효영 영앤콘텐츠 대표는 “콘텐트 제작사들이 고전적인 콘텐트 유통라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사진=천막사진관]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ㆍ모바일 시장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효영(53) 영앤콘텐츠 대표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에 한국의 문화콘텐트 업계가 휘둘리지 않을 대안을 이렇게 제시했다.

이 대표는 KBS에서 수출사업팀장, 해외사업부장, 엔터테인먼트부장 등을 역임하며 2014년까지 약 26년간 각종 방송콘텐트를 해외에 판매하는 일을 해왔다. 이후 후너스엔터테인먼트에서도 드라마와 음원 등을 수출하는 일에 주력했다.

2016년에는 ‘콘텐트 독립 배급사’인 영앤콘텐츠를 설립해 드라마ㆍ웹툰ㆍ웹드라마 수출은 물론, 드라마 사전제작 수출 대행 업무까지 영역을 넓혔다. 좋은 콘텐트를 발굴해 일선 시장에 내다 파는 세일즈맨으로 일해온 그의 눈에 비친 한국 문화콘텐트의 방향성은 무엇일까.

✚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문화콘텐트 업계가 많이 위축돼 있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나.
“중국의 한한령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최근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가 매개체가 됐을 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 무슨 말인가.
“우리는 지금 한류韓流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콘텐트들이 중국에 유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중화권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 문화를 매섭게 파고들고 있다’는 의미로 ‘한류寒流’라고 표현했다. 그게 국내에선 좋은 의미의 한류韓流로 바뀌어 불린 것일 뿐이다.”

✚ 중국이 애초부터 한국 문화콘텐트를 경계해왔다는 건가.
“그렇다. 한국 문화콘텐트의 중국 유입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다. 2005년 즈음엔 중국 방송채널에서 한국 드라마가 안 나오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그러자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은 쿼터를 도입, 방영시간을 제한했다. 한국 드라마를 1~2년 넘게 심의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 사드 배치가 한류를 막으려는 중국에 좋은 빌미가 됐다는 말로 들린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실제로 이전부터 제한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 문제는 중국 정부가 여전히 한국 문화콘텐트 소비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맞다. 하지만 눈여겨 볼 점이 있다.”

✚ 그게 뭔가.
“사실 사드 보복 조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국의 문화콘텐트 수출은 계속됐다. 일례로 큐큐(QQ), 쿠고 등 중국 최대의 음원사이트에서 한국 드라마 OST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중국 정부가 드라마 방영을 막고 있지만, 볼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 본다는 얘기다.”

한한령에도 한류 수출 계속

✚ 경제 논리에 따라 한한령도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는 것 같은데, 안일한 생각 아닌가.

“그런 얘기가 아니다. 말했듯이 한한령은 애초부터 진행됐다. 중국 정부가 쉽게 풀어 줄 사안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간단해진다.”

✚ 그 전략이 뭔가.
“더 좋은 콘텐트를 개발하는 거다. 시장이 완전히 열릴 때를 대비할 수도 있다. 문제는 더 좋은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게 한한령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 자세히 말해 달라.
“창작자들이 대우를 못 받으면 시장은 성장하기 어렵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가 ‘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원 소스 멀티 유스(원형 콘텐트를 다양한 장르로 확대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EBS는 방영만 하고, 광고를 붙여 그 수익만 가져갔다. 저작권은 모두 창작자에게 넘겼다. 그 결과 게임ㆍ캐릭터 상품ㆍ출판물 등이 속속 나왔고 시장이 커졌다. 성공적인 선례가 있음에도 기득권자들이 욕심을 부려 문제다.”

✚ 기득권자라고 하면 누굴 지칭하는 건가.
“방송국이 대표적이다. 적극적으로 투자는 하지 않고, 저작권을 가져가려는 경우가 많다. 요즘 드라마 제작사들이 사전제작 방식으로 제작비를 투자받으려는 것도, 제작사의 권리를 보전해주면서 콘텐트를 판매하는 영앤콘텐츠와 같은 전문 배급사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한한령을 풀기에 앞서 시장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 이해가 되지만, 마냥 기다린다는 게 최선일 수는 없지 않나.
“맞다. 중국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 그건 뭔가.
“현재 터너, 소니, 디즈니와 같은 다국적 미디어그룹들이 ‘OTT(Over The Topㆍ인터넷 미디어 콘텐트 제공 사업자)’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영향이 크다. 방송사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다. 따라서 제작사들은 더 이상 방송사의 눈치를 보는 ‘을乙’이 될 필요가 없다. OTT 사업자에 제공하면 그만이다.”

▲ 뽀로로는 방송사가 기득권을 움켜쥐지 않아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사진=뉴시스]

✚ 너무 낙관하는 건 아닌가.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일단 TV 광고가 줄고 인터넷 동영상 광고가 늘고 있다. 자본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쏠리고 있다는 증거다. 웹드라마 ‘애타는 로멘스’와 ‘1%의 어떤 것’은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옥수수’에서 먼저 방영한 후 인기를 얻어 케이블TV로 팔렸다. 일본에서 ‘1%의 어떤 것’은 TV드라마 ‘도깨비’보다 DVD 판매 순위가 더 높다. 웹툰은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을 위협하고 있다. 월 1억원을 넘게 버는 웹툰작가들이 속속 나오고 있고, 웹툰은 다시 드라마나 영화로 리메이크 된다.”

OTT서 뜨는 웹드라마

✚ 또다른 근거는 없나.
“가격도 오르고 있다.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드라마피버’에는 2016년에 방영된 드라마 ‘더블유’가 1회당 약 6만 달러에 판매됐다. 10여년 전 ‘꽃보다 남자’의 1회당 가격이 고작 200달러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 TV는 이미 노년층의 전유물이다. 젊은이들은 인터넷과 모바일로 전환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지상파 공략이 힘든 시장이지만 인터넷에선 선전하고 있다.”

✚ 중국에만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건가.
“좀 더 넓은 의미다. 중요한 건 플랫폼 업체들과의 합작과 공조다. 그리고 양질의 콘텐트를 계속 양산하는 거다. OTT를 통한 기회가 있는데 기존의 판매 루트(지상파ㆍ중국)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 합작과 공조를 하려면 전문 배급사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 같다.
“그렇다. 사드가 풀렸을 때, 더 큰 시장이 열렸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크리에이터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양질의 콘텐트를 발굴해 OTT와 협상하는 건 또다른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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