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셀프 연임’ 규제 논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이른바 ‘셀프 연임’을 막아 최고경영자(CEO) 승계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어설픈 조치가 뒷말만 무성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는 특혜를 봤고 누구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다.

▲ 금융당국의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 조치를 두고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2017년 11월 20일 KB금융그룹의 임시주주총회장, 제1호 의안인 윤종규 회장의 재선임안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고성이 오갔다. 윤 회장의 연임을 찬성하는 주주는 “그가 임기 중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면서 “한번 더 회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임을 반대하는 주주는 “윤 회장의 연임에 절차상 공정성과 투명성이 떨어져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KB노동조합협의회는 윤 회장의 재선임을 ‘셀프 연임’이라며 날을 세웠다. 윤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한 KB금융의 이사회가 윤 회장이 직접 임명한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후보군 결정 과정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KB금융 확대지배구조위원회는 2017년 9월 1일 23명의 회장 후보군을 확정했고 9월 8일 7명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9월 14일 윤 회장을 포함해 3명을 최종후보로 발표했다. 하지만 2명의 후보가 스스로 물러나면서 윤 회장이 단독 후보가 됐다.

임시주총에 참석한 KB금융 노조측 인사는 “23인의 후보가 누구인지 자격 기준이 무엇인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면서 “후보자 23인의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또 “절차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도 윤 회장의 연임을 막지는 못했다. 윤 회장 선임안은 의결권 지분 76.22%가 참여한 가운데 찬성률 98.85% 압도적인 찬성을 받고 통과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셀프 연임’ 논란은 금융당국의 입에서 다시 불거졌다. 포문을 연 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다. 최 위원장은 2017년 11월 29일 열린 정책브리핑 자리에서 “금융지주사 CEO가 본인의 연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논란의 중심”이라며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는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금융당국인 금융감독원도 금융지주사 회장의 셀프 연임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2017년 12월 13일 열린 간담회에서 “금융지주사 회장 후보 추천 구성에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점이 발견됐다”며 “회장추천위원회에 현직 회장이 들어가서 연임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직이 연임 예정일 경우 회추위에서 배제돼야 하지만 어느 지주사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의혹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셀프 연임 제동 건 금융당국

금융당국은 직접적인 행동에도 나섰다. 금감원은 12월 14일 KB금융과 하나금융에 경영승계절차, 사외이사제도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불똥이 하나금융으로 튀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셀프 연임’ 논란은 KB금융에서 시작했는데, 금융당국의 칼끝이 하나금융을 향하고 있어서다. 2018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3연임을 준비 중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노린 조치라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뒤늦게 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관치논란’만 키웠다”며 “특정 금융회사를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셀프 연임’ 논란을 일으킨 회장만 수혜를 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금감원의 경영유의 조치에 대응하는 KB금융과 하나금융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나금융은 금융당국의 조치에 민첩하게 대응했다. 경영유의 조치가 내려진 후 일주일 만인 12월 22일 김 회장을 회추위에서 제외하고 회추위 구성을 사외이사 전원으로 확대하는 등 금감원의 개선 요구 사항을 즉각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윤 회장의 연임을 확정한 KB금융은 당국의 경영유의 조치에도 비교적 느긋한 모습이다. KB금융 관계자는 “경영유의 조치를 받아 개선 사안을 살펴보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없다”고 말했다.

‘셀프 연임’ 논란에서 한발 물러난 윤종규 회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윤 회장이나 김 회장 모두 노조의 거센 반대를 받긴 마찬가지다. 또한 2017년 9월 윤 회장의 연임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동조합 선거에 개입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물론 김 회장도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인사 비리와 아이카이스트 부실 대출 의혹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개입 시점에 두 금융지주 회장의 희비가 갈렸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금융당국의 뒷북 조치가 금융지주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면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혁신과 금융적폐청산이 무색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인물과 금융당국 관계자 인사개입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며 “섣부른 조치가 ‘관치금융’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지주사 회장이 사외이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안은 정부의 압박에 등 떠밀려 만든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이사회 전체가 김정태 회장의 인물로 채워져 있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조치에 ‘희비’

정부가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메스를 들이댄 건 분명히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무딘 칼을 어설프게 휘두르면 그 결과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이미 ‘관치금융’의 부활을 우려하고 있다. 친정부 인물을 고위 인사로 영입하고 줄을 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폐를 청산하려다 되레 적폐를 쌓을 수 있다는 비판론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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