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로 본 배터리 게이트 대응 3社3色

 “의도적으로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렸다.” 애플이 이를 인정하자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소비자들을 위한 조치였다”는 해명도 소용이 없었다. 사전에 이를 알릴 수 있었음에도 문제를 덮으려고 했던 애플의 태도에 마니아들도 단단히 ‘뿔’이 났기 때문이다.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에 직면한 애플은 스스로 출구를 막아버렸다. 그렇다면 애플보다 앞서 ‘배터리 게이트’를 겪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어땠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배터리 게이트의 3社3色 대응전략을 살펴봤다. 요약하면 이렇다. 잘 숙인 자 vs 덜 숙인 자 vs 안 숙인 자.

▲ 애플이 의도적으로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린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애플 마니아들이 화가 단단히 났다. 2017년 12월 20일 애플이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 문제와 관련해 공식 성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대체 무엇이 충성스러운 애플 고객을 분노하게 만든 걸까.

사건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1월 애플은 구형 아이폰(아이폰6ㆍ아이폰7ㆍ아이폰SE 등)에 한해 배터리 상태에 따라 기기의 중앙처리장치(AP) 성능을 제한하는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애플에 따르면 아이폰에 탑재된 리튬 이온 배터리는 500회 이상 충전시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경우엔 전력이 남아 있어도 아이폰이 꺼지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작동 속도를 떨어뜨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AP의 처리 속도를 떨어뜨리면 전력소모량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이같은 조치를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른바 ‘잠수함 업데이트’였다.

2017년 12월 소비자들 사이에서 “아이폰이 예전보다 느려진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후 캐나다의 한 스마트폰 성능 분석업체가 이를 입증하는 실험결과를 공개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신제품을 팔려고 꼼수를 부린 거 아니냐”는 비난도 일었다. 그러자 애플은 12월 20일 성명을 통해 “일부 구형 아이폰이 갑자기 종료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속도지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했다”면서 패치 사실을 인정했다.

애플의 해명은 소비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사실 기기결함 이슈는 스마트폰 업계에선 흔한 일이다. 애플도 ‘데스그립(아이폰4 수신불량)’ ‘밴드 게이트(아이폰6 휘어짐)’ 등 숱한 결함 논란을 겪어 왔다. 그때마다 애플은 100% 기기결함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이번 패치 논란에서도 애플은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당초 애플은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라고 얼버무렸다. 업데이트 사실을 사전에 왜 알리지 않았는지에 관해서는 함구했다. 소비자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미국은 물론 이스라엘ㆍ프랑스ㆍ한국 등 5개국에서 대규모 집단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호주 법무법인 샤인 로이어즈는 2018년 1월 1일 애플에 1조685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했다. 미국에서도 9999억 달러(약 1061조7000억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썩은 사과 전락한 애플


국내 아이폰 이용자들도 가세했다.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이번 국내 집단 소송의 참여자는 1월 3일 기준 31만813명을 넘어섰다. “애플이 성능저하 업데이트 사실을 은폐했고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는 게 소송의 공통점이었다. 배터리 성능이나 아이폰 꺼짐 현상 그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애플의 공급자 마인드 자체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애플이 성명 발표 후 배터리 교체 비용을 79달러(8만3874원)에서 29달러(3만789원)로 낮춘 것도 소비자들을 자극했다. 소비자들은 “애플이 해결하지 못한 결함을 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느냐”고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런 애플의 태도는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과거에 보여줬던 조치와 비교된다. 삼성전자는 2016년 8월 출시한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이상으로 발화하는 문제를 겪었다. ‘기내 반입 금지 품목’에 포함될 정도여서 브랜드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 바람에 실적도 형편없었다. 모바일부문 영업이익은 2016년 2분기 4조3200억원에서 같은해 3분기 1000억원으로 확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발화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배터리에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갤럭시노트7 250만대를 전량 회수했다. 출시된 지 57일 만의 리콜 조치였다. 후속 조치도 병행했다. 배터리 제조 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해외 시험인증기관과 협력해 조사도 벌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적극적인 초기 대응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잃지 않는 방법이었다”면서 당시 리콜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8로 ‘빅히트’를 치면서 재기에 성공했고, 배터리 발화 리스크도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LG전자의 대처는 지금의 애플과 비슷했다. LG전자는 2015년 4월 출시한 G4의 배터리 발열과 무한 부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LG전자는 보증기간 내 제품에 한해 무상 수리를 지원했다. 결함에 관한 공식 성명은 없었다.

적극적인 대응만이 살길

하지만 수리 이후에도 “발열과 무한부팅이 발생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미국에서 집단 소송의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2016년 1월 LG전자는 “보증 기간과 상관없이 무상 수리를 지원하겠다”면서 “부품 간의 접촉에 문제가 있었다”고 결함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뒤늦은 조치였다. 이후 LG전자가 새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마다 무한부팅과 배터리 발화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이번 애플의 성능저하 논란은 기기결함이라기보다는 애플의 일방적인 소통방식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이라면서 “사전에 문제를 공지했다면 고객들도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새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등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프닝 수준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이번 애플의 태도가 뼈아픈 실책으로 평가 받는 이유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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