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프레임을 깨야 하는 이유

▲ 변양균 전 실장은 자신의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슘페터식 공급혁신을 주장했다.[사진=뉴시스]
2017년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첫 모임에서 벌어진 정경이다. 코드에 맞춰 고르고 골라서 뽑은 자문위원들이 ‘감히’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했다. “반도체ㆍ석유화학 등을 제외하면 현장 경기는 최악이다. 왜 지표만 좋아졌나”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 몫이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경제정책을 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7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가동한 국민경제자문위원회가 첫번째 회의부터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해 분위기가 머쓱해졌다고 한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2명 중 기업인은 단 2명에 불과하다. 대기업은 아예 없다. 
 
또다른 얘기 한 토막. 2017년 12월 5일 열린 무역의 날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단상에서 상패를 주고 격려한 수출 유공자 10명에는 삼성ㆍLGㆍSK 등 4대그룹이 끼지 못했다. 정작 대기업 수상자들은 박수만 치다 돌아갔다. 아무리 중소기업 우대라지만 무역 1조 달러 회복의 1등 공신은 반도체인데, 반도체 수출역군 손 한번 잡지 않고 행사가 끝났다. 분위기가 이러니 경제단체 신년 하례식에 불참한 대통령을 이상하게 볼 것만도 아니다.
 
기업은 근대화 시대 농촌에서 키우던 소와 같다. 소는 1960~1970년대 농가의 재산목록 1호고, 농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살아서는 고된 노동과 젖을 주고, 죽어서는 주인을 위해 고기와 뼈를 남긴다.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국가발전의 견인차인 기업이 웬일인지 너무 천대받고 있다.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기업에는 그 흔한 공치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재벌기업을 단죄하겠다는 얘기만 들린다. 기업인의  비리와 범죄는 법에 따라 엄하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면 될 일인데, 자칫 ‘기업=범죄 집단’이라는 인식이 굳어질까 걱정이다. 

칭찬은 소를 춤추게 한다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계총수를 독대하고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니 재벌은 가급적이면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만하다. 여기에는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 차지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의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로 떳떳하다면 독대든 단체회동이든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럴 때 문재인 대통령이 재계총수를 만나 투자와 고용확대를 요청하고, 정부를 마음껏 비판해도 좋다고 말한다면 얼음장 위에 훈풍이 돌 것이다. 칭찬은 고래가 아니라 소를 춤추게 한다.
 
청와대는 신년하례에 경제단체장, 4대그룹 회장(급)을 초청했지만 대화는 없고, 출석의 의미에 그친다.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한탄은 소가 ‘음매’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하고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일자리는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주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숨은 설계자’로 알려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책을 읽으면 임진왜란 전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가 떠오른다. 야당의원들이 추천할 정도로 내공이 깊은 책이지만 웬일인지 현 정부에서는 애써 외면한다. 그의 추천으로 발탁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의 말에는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청와대 실세들의 머릿 속에는 변양균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변 전 실장은 이 책에서 섣부른 비판 대신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으로 ‘슘페터식 공급혁신’을 제안했다. 경제가 장기성장하려면 노동ㆍ토지ㆍ투자ㆍ왕래 등 네개 분야에서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해 ‘자유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노동의 자유를 위해 실업급여 등 노동자의 자유와 정규직 해고 허용 등 기업가의 자유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지의 자유를 위해서는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되, 비수도권을 지원하는 특별기금을 마련하고 고향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의 자유를 위해선 규제를 네거티브시스템으로 바꾸고 이민 문호 개방과 해외자본 유치로 왕래의 자유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변 전 실장의 제안 중 핵심 과제인 고용유연성 제고, 파견허용 업종 확대, 수도권 규제완화 등은 현 정부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복지와 노조친화적인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예 말을 꺼낼 계제가 아닌 것 같다. 집권 세력이 진영의 프레임에서 뛰쳐나와 과감하게 개혁과 규제혁파에 나서야 경제가 살아난다. 변 전 실장은 서민복지는 확대하되, 기업인의 경영자유도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변양균 말이 옳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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