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6人의 봄‧여름‧가을‧겨울

▲ 박재경 블랙브로 대표는 “누구나 터놓고 말할 곳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가게가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나는 16.5㎡(약 5평) 규모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사장이다. 직원 한명과 둘이서 하루에 커피 100여잔을 판다. 무심하게 커피만 파는 카페는 아니다.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고, 고민도 나눈다. 혹자는 그 작은 카페를 연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핀잔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인생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참 별난 아이였다.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사람 만나는 일은 1등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이른 새벽엔 집집마다 신문을 돌렸다. 유명 클럽에서 턴테이블을 돌리기도 했다. 후회는 없었다. 부산 사나이 아니던가.
 
2014년 9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마케팅 회사에 취업했다. 전화를 걸어 광고를 제안하는 일이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 딱 맞는 직업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웬걸, 수화기 너머로 욕설이 들려왔다. “너 내가 다시 전화하지 말랬지. 재수 없게….” 
 
광고 전화를 반겨주는 이가 있을 리 없었지만 안해본 일 빼곤 다해본 나로선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때 내게 위로를 준 건 점심시간에 마신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잔이었다. 처음엔 커피맛도 몰랐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커피를 손에 든 직장인들…. 다 나 같은 마음 아닐까. 고단한 일상에 여유를 주던 ‘커피’를 만드는 일. 어느새 내 안에 ‘바리스타’라는 꿈이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커피전문점을 낼 경력도, 기술도 없었다. 하물며 당장 생계가 급해 바리스타 학원은 꿈도 못 꿨다. 일단 알바로 들어가 경험을 쌓기로 했다. 목표만 있다면 현장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 박 대표는 오픈 첫날 마수걸이였던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주문한 손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2014년 11월, 서울 가산동 오피스빌딩에 새로 오픈한 커피전문점에 알바로 들어갔다. 사장도 첫 창업이었는지, 원칙대로 ‘커피’를 만들었다. 하루 13시간씩 6일 동안 빠짐없이 일했다. 손에 들어오는 돈은 월 150만원 남짓이었지만 행복했다. 사람 한명 누우면 꽉 차는 쪽방 같은 고시원에서 생활했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고시원 쪽방도 괜찮았던 이유 

언젠가 내 가게를 열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창업자금이었다. 고시원비 30만원과 생활비 40만원을 빼고 매달 80만원을 적금에 부었다. 그렇게 1년6개월. 커피 만드는 노하우는 쌓을 만큼 쌓았다. 손님을 응대하는 건 걱정 없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종잣돈도 1500만원 가까이 모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슬슬 속내를 털어놨다. “조만간 창업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은 날 뜯어말리기 바빴다. “그 개미지옥에 왜 들어가려 그래?” 사람들은 커피전문점 창업을 ‘개미지옥’에 묘사한다. 들어가면 ‘죽는다’는 뜻일 게다. 틀린 말도 아니다. ‘커피전문점은 창업 선호 1순위’이지만 관련 통계는 ‘평균 2년 내 폐점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난 주춤하지 않았다. 커피전문점 알바를 하면서 시장을 읽었고, 어려움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작게 시작하면’ 창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참, 나에겐 피같은 종잣돈 1500만원이 있었다. 
 
창업을 결심한 지 두달만에 알바를 관뒀다. 1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 창업이 늦어지면 그만큼 손실이었다. 카페 콘셉트를 미리 만들어놓은 게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이름하여 ‘블랙브로(Black Bro).’ 손님에게 동네 오빠처럼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해 만들었다. 말 못할 고민 많은 사원도, 부장도, 대표도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곳. 대화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커피전문점을 만들고 싶었다. 
 
 
당연히 직장인이 많은 오피스상권 중에 적합한 가게를 찾았다. 경기도 안산부터 서울 구석구석까지 ‘오피스빌딩’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영등포 에이스하이테크시티 2차 1층에 ‘작은 공간’이 있는 걸 발견했다.

분명히 커피전문점인데, 사람들은 모르는 공간이었다. 16.5㎡(약 5평) 규모의 가게 통유리에 메뉴를 인쇄한 종이를 덕지덕지 붙여놔 “이게 커피전문점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5년간 카페를 운영했다는 주인도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문을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았다. 당연히 손님이 없었다. 
 
의문이 생겼다. “커피전문점이나 모든 음식점이 지하 1층에 몰려 있어 메리트가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방치하고 있을까?” 그 커피전문점이 있는 ‘폭 2m’ 복도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이 오가는 걸 봤다. 출근시간에 50여명, 점심시간에 60여명, 퇴근시간에 50여명이 오갔다. 보통 시간대엔 한시간에 20~30명이 지나갔다.

유동인구는 충분했다. 5일 동안 관찰한 다음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25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로 계산했을 때 50잔을 팔면 그때부터 이익이 남았다. 이 정도면 리스크를 해치워 가면서 도전해볼 만했다. 
 
무더웠던 그해 7월 

그런데 종잣돈 1500만원으론 창업하기가 빠듯했다.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실탄을 장착하고 가게를 계약했다. 보증금 700만원에 월 임대료가 100만원이었다. 커피머신, 글라인더, 디스펜서, 제빙기 등을 포함해 권리금은 1200만원이었다. 통유리를 폴딩도어로 바꾸는 공사비용(130만원)이 꽤 컸다. 하지만 폴딩도어를 열면 복도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어 투자할 만했다.

굵직한 비용을 제하고 나니 종잣돈 370만원이 남았다. 돈을 아끼려고 실내 공사를 직접 했다. 업자에게 맡기면 1300만원에 3주가 걸릴 일을 300만원 들여 일주일 만에 끝냈다. 직접 합판을 사다 테이블을 만들고, 벽면에 페인트를 직접 칠했다. 무더위가 시작되던 7월 선풍기로 환기시키며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좋았다. 그렇게 손수 꾸민 ‘Black Bro’는 2016년 7월 오픈했다. 
 
▲ 하루 100여잔의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 박 대표는 여기에 인생을 걸었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드디어 오픈 첫날. 마수걸이는 출근길 어느 직장인이 주문한 3300원짜리 ‘아이스바닐라라떼’였다. “두둥 첫 결제. 이제 손님이 밀려들겠지?” 나는 들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첫날 고작 30잔을 파는 데 그쳤다. 매출액은 10만원 턱걸이를 했다. “괜찮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스스로를 다스렸다.

하지만 이튿날도 셋째날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분기 실적은 평균 매출액 500만원을 기록했다. 원두와 자재비 130만원, 월세와 관리비 100만원, 우유값 45만원을 제하고 남은 돈은 230여만원, 알바생 월급을 주고 나니 110만원이 남았다. 
 
“그래, 손해는 안 봤잖아.”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창업 둘째달 큼지막하게 브랜드를 덧입힌 입간판을 등에 매고 돌아다녔다. 건물 로비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우리 가게를 알렸다. 눈총이 따가웠지만 ‘창피함’은 한순간이었다. 효과는 차츰 나타났다. “여기에 가게가 있었느냐”며 손님들이 찾아왔다. 
 
창업한 지 1년 반. 단골 고객도 매출도 쑥쑥 늘었다. 기대했던 일 매출액 30만~40만원은 넘어선 지 오래다. 메뉴도 늘어났다. 다른 가게에 없는 메뉴를 개발했다. 손님들이 추천한 메뉴도 추가했다. 한사람을 위한 메뉴도 있다. 가게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손님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준다.
 
▲ 박 대표는 폭 2m 좁은 복도에서 가능성을 봤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너무 많다. 연휴가 많은 달에는 매출이 적어 결제대금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커피머신이 고장 나서 하루 장사를 공친 적도 있다. 커피머신 수리비가 100만원이 나온 날엔 속이 쓰리다. 믿었던 거래처가 단가를 후려쳐, 마음이 상한 날도 숱하다. 
 
더 무서운 건 날로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내 가게 주위에는 커피전문점이 15개가 있다. 이번 겨울에도 어느 가게는 매물로 나왔고, 어느 가게는 주인이 바뀌었다. 돌아오는 봄에 엄청난 커피전문점이 들어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늘도 숱한 기대와 불안 속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 줄 위에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중심을 잡자고 매일 다짐한다. 나의 봄은 어떨까. ‘역세권 2호점’이라는 꿈이 봄에 이뤄질까. 현실적인 나는 앞서가지 않는다. 2호점을 여는 날을 기다리며 ‘한달 매출 10만원 더’ 올리는 것. 내 현실적인 목표다. 
정리=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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