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시장의 민낯

창업시장에 녹색불이 켜진 듯하다. 정부가 ‘창업 국가’를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그런데 창업자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꽁꽁 얼어붙은 고용시장을 피해 왔는데, 이곳도 차갑기는 마찬가지라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창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 고용절벽에 내몰린 많은 청년들이 창업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3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 신화” “고졸에서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대기업 투자 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헤드라인이다. 솔깃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고용절벽 앞에 선 청년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통계청의 ‘2017년 연간 고용동향’을 보자. 2017년 청년실업률은 9.9%, 전체 실업자 수는 102만8000명에 달했다. 지금 기준으로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청년실업률만 불명예 기록을 경신한 게 아니다. 취업자 증가 숫자는 2017년 12월 25만명에 머물러 세달 연속으로 20만명대에 그쳤다. 취업자 수가 3개월 연속 20만명대로 떨어진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2007년 8월~2010년 3월 고용 한파寒波 이후 7년9개월만에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업무가 ‘일자리 상황판 설치’였던 걸 떠올리면 초라한 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국내 고용 환경이 나빴다. 취업 시장의 ‘큰손’ 대기업은 채용문을 점점 좁혀가는 추세다. 채용 일정과 규모 등을 확정 짓지 못하기 일쑤였다. 경기침체, 구조조정 등 이유도 다양했다. 81만개가 늘어난다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다를까. 2017년 말 9급 공무원 추가채용 경쟁률은 무려 302대 1. 늘어난 공급이 수요를 감당할 지 의문이다.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한숨이 더 깊어진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수준은 1997년 77.3%에서 2016년 62.9%로 격차가 매년 벌어졌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 창업이다. 다행히 시장 분위기는 밝다. ‘4차 산업혁명’이 활력을 불어넣는다. 기업 규모가 작더라도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통한 혁신서비스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대다. 풍부한 상상력, 두뇌의 창의성, 유연한 사고만 있으면 얼마든지 새 시장 문도 열린다. IT 융합기술,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혁신 기술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용절벽에 몰린 청년들

정부 인식도 같다. 오죽하면 중소기업청의 새 명칭이 중소기업벤처부가 됐을까. 정부가 창업 활동을 적극 밀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 중 하나가 ‘혁신성장 추진전략’인데, 첫번째로 발표한 대책이 창업 관련이다.

정부는 2017년 11월 ‘혁신창업생태계 조성방안’을 꺼냈다.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 조성과 2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기관 보증, 벤처기업 세제지원 확대 등이 골자다. 마중물 역할을 하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민간 투자를 유인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시장의 시선은 따갑다. 정부가 창업을 강조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별다른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어느 때보다 청년 창업을 강하게 추진했다. 수많은 부처가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고 ‘청년창업지원’ 정책을 펼쳤던 박근혜 정부가 시장을 활성화하지 못한 건 대표적 사례다.

생계형 창업시장도 꽁꽁 얼어붙긴 마찬가지였다.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시장에서 밀려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통계청의 ‘2016년 기준 기업생멸행정통계 결과’를 보자. 2016년 신생기업은 87만6000개로 전년 대비 6만3000개(7.8%) 증가했다. 조사가 시작된 2007년 이래 최고치다. 신생기업의 88.9%(79만개)의 종사자가 1명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생개형 창업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폐업의 길을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6년 과세당국에 폐업신고를 한 개인 및 법인사업자는 총 90만9202명. 2015년 79만50명보다 11만9152명(15.1%) 늘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폐업자 수 65만명보다 25만명 많은 수치다. 최대 폐업자를 기록했던 2011년(89만7168명)도 뛰어넘었다. 하루에 2500개에 달하는 사업체가 문을 닫은 셈이다.

 

‘죽음의 골짜기’를 어렵사리 지나면 괜찮을까. 여기서 마주하는 현실도 녹록지 않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력 빼가기, 기술 탈취 문제 등은 이들이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최근 5년간(2012~2016년)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 수는 527개나 된다. 피해 경험 비율은 상승세다. 2014~2015년 3.3%에 머물다가 2016년에는 3.5%로 높아졌다.

청년 창업가를 업신여기는 분위기도 만연하다. 한 청년 창업가는 “청년 창업 지원 사업에 어렵사리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던 중 심사위원이 노골적으로 학벌을 들먹였다”면서 “창업 시장에도 학벌과 그에 따른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 성장은 언감생심이다. 20대 창업 기업 중 정부로부터 혁신형 창업으로 인증 받은 비율이 0.3%에 불과한 이유다.

최고치 달성한 폐업률

마땅한 출구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투자하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덜컥 날아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경우, 치료할 대책도 빈약하다. 무너지면 새로 창업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폐업 기업 대표가 재창업한 건 100개 폐업기업 중 7개뿐이다. 창업 국가의 길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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