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중독시대

몇년 전 청소년들 사이에서 ‘붕붕드링크’ ‘붕붕주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에너지 음료에 자양강장제, 이온 음료, 커피 가루, 숙취 해소 음료 등을 섞어 만든 일종의 각성제다. “마시면 붕붕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당연히 카페인 과다 섭취 논란이 일었고, 에너지 음료시장은 급격하게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최근 이 시장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카페인에 취해가는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취재했다.

▲ 피로에 젖은 이들이 늘어갈수록 카페인음표 시장도 커지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직장인 오진서(가명)씨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커피우유를 사 마신다. 빈속을 채우고, 미처 달아나지 않은 잠을 깨우는 게 목적이다. 점심 식사 후엔 동료들과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깐이지만 수다타임을 갖는다.

커피우유와 아메리카노. 오씨가 하루에 기본으로 섭취하는 카페인은 387㎎이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커피우유(GS25 더진한커피우유 500mL)엔 237㎎,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스타벅스 355mL)엔 150㎎의 카페인이 함유돼 있다. 여기에 자양강장제(박카스 100mLㆍ카페인 함유량 30㎎)라도 한병 더 마시게 되면 성인 1일 카페인 섭취권고량(400㎎)을 넘어서게 된다.

주춤했던 에너지음료 시장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2012년 900억원대까지 성장했던 에너지음료 시장은 ‘붕붕주스’ 등 카페인 과다 섭취 논란으로 2015년 572억원대으로 내려앉았다가 2016년을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2017년엔 700억원대까지 회복했다.

 

에너지음료는 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 걸까. 그 배경엔 각종 스트레스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남녀 1250명(만 13세~59세)에게 ‘현대인의 피로도’를 물어본 결과, 전체의 86.6%가 “요즘 현대인은 누구나 피곤하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은 “이유 없이 만성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피로감을 떨쳐내고 있을까. “커피를 마신다”는 사람이 전체의 47.9%(중복응답)를 차지했고, “피로회복을 위해 에너지음료를 마셔본 적이 있다”는 사람은 84.2%나 됐다. 커피 한잔, 에너지음료 한병에 피로가 해소되길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양강장제 카페인 함유량 제한을 없애기로 결정, 논란이 일고 있다. 2017년 12월 11일 식약처는 “자양강장제 1회 복용 시 카페인 함유량을 30㎎ 이하로 제한했던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는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중독 걱정하면서 고삐 풀어

이 규칙은 1964년 제정 이후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성인 기준 1일 카페인 섭취권고량이 400㎎인데 자양강장제 함유량은 여기에 10분의 1도 안 되는 3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식약처는 “다양한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이 규칙이 제한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는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만들었다. 법제처 심사가 끝난 개정안은 시행까진 시간문제다.

식약처는 “국내 제약사들의 제품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커피ㆍ녹차ㆍ에너지음료 등으로 이미 카페인을 과다 섭취하고 있는데, 자양강장제마저 카페인 함유량 제한을 풀면 우리 사회가 더 큰 중독에 빠질 거란 지적이 대표적이다. 특히 ‘붕붕주스’로 논란을 일으켰던 청소년들이 문제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제품들은 1회 섭취만으로 청소년의 1일 카페인 섭취권고량인 125㎎(몸무게 50㎏ 기준)을 넘어선다. 이 연구원이 2017년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카페인 함유 음료 106개의 카페인 함량(1회 제공량 기준)을 조사한 결과, 커피음료와 커피우유는 적게는 30㎎, 많게는 139㎎ 카페인이 함유돼 있었다. 탄산음료와 에너지음료의 카페인 함유량은 4~149㎎, 홍차음료도 9~80㎎에 달했다. 삼성제약의 야(YA)는 162.4㎎으로 한캔만 마셔도 청소년 섭취권고량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청소년이 과하게 섭취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놓고 있긴 하다. 식약처는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을 근거로 카페인 음료 판매와 광고를 제한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학교 및 우수판매업소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판매하지 못한다. 오후 5~7시에는 에너지음료의 TV광고는 전파를 탈 수 없다.

허술한 안전장치

하지만 이 역시 흐름을 읽지 못한 낡은 장치라는 지적이다. 청소년들이 학교 매점, 우수판매업소만 이용할 리 만무한 데다 방과후학습과 학원 탓에 오후 5~7시 시간대에는 TV를 볼 일이 거의 없어서다. 더군다나 TV가 아니라도 광고를 접할 경로는 널렸다. 안전장치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식약처 관계자는 “카페인 권고량을 고려해 향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시행은 코앞인데, 일단 풀어준 다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 그러는 사이 피로에 지친 사회는 점점 더 카페인에 중독될지도 모른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